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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Dec 16. 2021

엄마와 싸우기 위해 떠난 제주살이

엄마와 두 아이와 제주 한 달 살이

휴직이 시작된 올해 6월엔 두 아이와 친정엄마를 모시고 제주도 한 달 살이를 다녀왔다. 어디에서건 한 달 살이를 해보자 마음먹은 이레 비교적 빨리 찾아온 기회였다. 숙소를 알아보고 교통을 해결하고 나니, 모든 준비를 마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주에서 한 달을 보낼 집에 도착해 D시장에서 사 온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남편과, 엄마, 두 아이가 잠들었을 무렵 불이 꺼진 거실에서 노트북 전원을 켰다. 애월의 밤바람과 바닷바람 냄새를 품고 있는 집이었고, 동남아 풍의 장식품들은 집주인이 어디를 다녀왔고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를 보여 주었다. 거실의 통 창문에서는 잔디 마당이 고스란히 보였고, 마당 앞으로 펼쳐진 깊은 어둠 속에는 크고 낮은 건물의 불빛과 애월의 바다가 꽁꽁 숨어 있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밤이 찾아오니 비로소 떠나옴의 안도가 밀려왔지만, 낭만을 찾기엔 지나친 현실감의 압도가 더 큰 인상을 남긴 첫날밤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뜸 화장실 청소부터 했던 것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비교하고 분석하고 계획하여 수립하는 것에 치밀함도, 탁월함도 의지도 없어 방 2개, 화장실 2개, 마당 있는 집, 공항과 멀지 않은 곳만 체크하고 대번 선택한 숙소였다.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하지 말자 다짐이 무색하게 섣부른 선택의 결과는 예상 밖의 일들로 머무는 내내 툭툭 튀어나왔었다. 장소만 바뀐 조금 특별해진 일상을 사는 거라고 읊조리며 제주에서의 아침이 쌓일 때마다 지워지려는 마음에 더욱 밑줄을 진하게 그었다.


제주에서의 한 달은 지금까지 와의 여행과는 색깔이 많이 달랐다. 엄마와 함께한 긴 여행이기도 했지만 사실 '여행' 보다는 '삶'에 더 가까웠다. 제주를 떠올리면 기대감과 설렘이 잔뜩 낀 여행보다는 일상의 매듭을 풀지 않은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사는 일이 줄줄이 엮여 있는- 그래서 여행을 하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삶을 엿보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파도에 위치한 소담한 '낭꾸러기'가 가고 싶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나무를 깎아 만드는 삶을 또다시 엿보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제주집에서 두 아이와 친정엄마와 내내 싸웠다. 고작 1학년인 아이와 싸우면 친정엄마와의 싸움으로 번졌고, 급기야는 차를 세워 놓고 거리 한복판에서도 싸우며 반나절의 기분을 망쳤다. 두 아이와 잘 지내고 친정엄마를 더 이해하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지- 애초에 마음먹었던 다짐과 기대는 점점 사그라들고 가족에게만 보이는 내 한계를 금세 드러내고 날을 세우고 말았다. 내 안의 문제가 무엇인지,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내가 엄마한테 갖는 감정과 서러움, 서운함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나는 엄마를 어떤 얼굴로 보고 있는지 여과 없이 나타나고 보였다.


나는 제주에서 '엄마'에게 싸움을 걸며 내 안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골이 얼마나 나를 갉아먹고 있는지, 한꺼번에 경험하고 직시했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다가도 엄마는 끝내 절대 양보할 마음도 멈출 마음도 없는 나에게 금세 미안하다고 엄마 잘못이라고 했다. 고개를 돌린 채 울음 섞인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늙어 버린 얼굴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떠오르면 나는 방금 전 내가 쏟아 놓은 말과 토하듯 퍼붓던 감정을 급하게 후회했고, 매 번 이런 식인 내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


해소하고 소모되는 감정도 있어야 했다. 오랫동안 묵혀둔 감정이 결국엔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울분과 마음들이라 여기기로 했다. 다 소모되고 나면 괜찮아질 거란 막연한 희망을 품고. 매일 아침 새로운 얼굴로 엄마를 맞았다. 그렇게 싸워도 나는 엄마 딸이고 엄마는 내 엄마란 사실은 변함이 없고 어제 일은 어제 일로 버려둘 수 있다는 것은 엄마와 내가 동시에 딱 맞춘 마음이었다는 듯 어제 일을 되짚지 않았다.  


서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항상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이 눈앞에 있었다. 또, 이기지 못하고 져버린 마음에 석양빛은 완벽히 잠잠한 위로였다. 아무리 그러지 말자, 애를 써도 나는 엄마 앞에서 싸우자고 달려들었다. 제주에서 매일 마주하니 매일 싸우자고 달려드는 몸집만 큰 어린 사자 같았다.


제주에서 쌓여 갔던 하루를 건너다보며 오늘도 참지 못하고 엄마와 싸운 하루를 끼적이고 나니 그 글들은 모두 엄마를 이해하고자 하는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더 이상 불쌍한 엄마를 원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전히 아픈 마음도 모른 척할 수 없어 나는 싸우면서 마음에 텁텁한 먼지를 걷어내고 있었다. 엄마 앞에서 아이를 나무랄 때도 엄마는 많이 괴로웠을 테다. 잠식된 고통은 타인의 행동과 장면을 통해 전이돼 떠오르는 것이기도 하니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간 시절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고

엄마가 돼서는 엄마의 삶도 이해 못 한 다는 소리를 일부러 피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니까 네가 이해해야지, 누가 이해해? 소리를 들어도, 억지로 노력하고 싶지 않아서

지나간 대로 버려두면 언젠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에 의지하고 싶지 않아서

진심으로 엄마를 위로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나는 엄마에게 싸움을 걸었고, '잘못'이라는 단어를 썼고 눈치 보며 비굴한 '인생'이기도 했다고 엄마 앞에서 힘주어 이야기했다.


엄마도 나도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눈물을 꾹꾹 누르며 따뜻한 차를 마셨다. 6월의 제주는 봄이기도 했고 여름이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기도 했고, 서로를 깊이 미워하기도 했다.


제주 살이는 그런 하루하루가 포개졌다. 지날수록 피곤이 쌓이고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엄마랑 싸울  있어  한계를 알았고  문제를 직시했으며 그다지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틈틈이 웃었고, 많은 사진을 남기고, 엄마가 내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든든함인지 싸우면서도 하루하루 무심하게 느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집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매일 같은 시간 마당에서 보였던 평범한 석양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깔들을 오래도록 볼 수 있어서 그 집은 나의 불만을 다행히 잠재웠다. 도착 첫, 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종일 바다를 보고 맥주 한잔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하루의 스케줄을 잡고 점심 메뉴를 힘겹게 고르고, 겨우 커피를 먹고 나면 제주의 하루는 금방 저물었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오면 하늘이 서서히 붉은 기운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 석양을 보고 있으면 그제야 내 여행이 시작되는 거 같았다.  


한 참을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엄마든 동생이든 남편이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이렇게도 피곤한 거였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엄마와 갈 건가요?

(조금 생각해 볼게요. 씩-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안 간다고 할 거 같아요!)

   

 




매 년 해외여행 티켓을 끊어도 제주행 티켓은 늘 미뤄두었었다. 시간의 틈이 생기면 공백을 메우러 제주에게 시간을 내어 주고 싶지는 않았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다정한 품 같기도 해서. 팬데믹 시대만 아니었으면 다른 장소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제주에 설렘과 환상만을 품기에는 제주가 품은 삶들이 너무 슬프고 치열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우리나라의 유일무이 한 아름다운 섬임은 분명했다. 다시, 제주에 간다면 판포의 냄새를 맡고 하도 해변을 보고, 우도에 가파도에 종일 머물고 한라산의 겨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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