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ve to earth
겨울이 되면 더 의식적으로 샤워를 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습관적으로 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주변인 중 습관적으로 샤워를 하는 사람이 한 명을 떠올리자면 나의 오빠 H다. 그는 매일 아침과 저녁, 그러니까 하루 두 번씩 사워를 한다. 눈 뜨자마자 샤워하러 들어가는 그를 보며 ‘저렇게까지 씻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욕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그가 샤워를 즐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에게는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샤워를 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다. (우리는 대체로 아침을 거르니, 매일 하루 두 번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그래서인지 그는 나에게 더럽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실로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다. 하지만 반박의 여지는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의식적으로 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 손과 발을 씻는 일, 밥을 먹은 후 양치하는 일은 습관처럼 하면서 샤워만큼은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씻는 일에도 쉽고 어려움이 있는 걸까? 20대 중반이 된 오늘에서야 늦은 새벽 샤워를 하며 그 이유를 깨닫는다. 나의 샤워루틴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양치를 하고 몸을 씻는다. 올해 들어 비누를 사용하기 시작해서 머리와 몸을 씻을 때에는 각각의 비누를 사용한다. 비누망을 타월 삼아 손으로 거품을 내어 몸을 씻는다. 그리고 검은콩과 참숯으로 만든 샴푸바로 머리를 감는다. 비누 향기가 좋아서 머리를 감다가도 코에 손을 대고 냄새를 맡는다. 머리까지 다 감으면 클렌징 폼으로 세수를 한다. 이것이 나의 샤워 루틴이다. 이 과정으로 샤워를 한지도 벌써 9개월 정도가 되었다. 비누망으로 몸 구석구석 거품을 칠하다가, 문득 과거의 내가 샤워를 자주 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 이유는 내 몸 구석구석을 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뚱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손과 발, 양치는 원래도 내가 눈으로 인식하는 반면, 옷으로 감춰진 나의 몸뚱아리는 그렇지 않았다. 샤워는 내 몸 구석구석을 필연적으로 만져야만 한다. 그럼 뚱뚱한 나를 느껴야만 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즈음엔 거울로 나의 알몸을 보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외면을 샤워하는 것을 외면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내가 더러운 사람이었었구나!’ 속이 시원했다. 동시에 과거의 내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꼼꼼히 닦고 바디 로션을 듬뿍 바르며 과거의 나를 향해 이야기한다. 그래도 현재의 나는 뚱뚱한 몸을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단다. 말랑한 살의 촉감을 느끼고, 가지런한 발톱을 자랑스러워하고, 삐쭉빼쭉 난 다리털을 지겨워하는 사람. 아마 과거의 나는 지금보다도 더 여린 사람이라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할 것이 뻔하니, 나는 이렇게 나를 잘 바라보고 있다고 말해준다. 아, 그리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자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