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 Oct 12. 2023

밥만 잘 먹더라

우리의 예술

  밥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나의 기준으로 밥은 쌀과 밀로 구성된 하나의 음식인데, 친구 C는 '과자'를 밥에 포함한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밥에 대한 기준을 가진 친구 C와는 벌써 19년째 친구이다. C와는 밥에 관한 독특하고 즐거운 추억이 있다. 이 추억은 우리가 가장 명랑했을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AM의 창민과 남성 솔로 가수 이현으로 구성된 그룹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가 대히트를 쳤던 때였다. 당시 나와 C는 C의 집 근처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같이 다녔다. 우리는 아침 8시 30분에 학교에서 만나서 저녁 5시에 헤어졌다. 학원을 가기 전까지의 시간은 대부분 C의 집에서 보냈다. C의 집은 2층 단독주택으로, 1층만 사용하고 2층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비밀스럽던 2층이 개방되고, 그곳은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퐁퐁 날리는 공간에 비염이 있는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해댔지만, 은밀한 우리만의 아지트에 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공간은 우리의 예술공간이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예술 활동을 부추겼다. 나와 C는 그곳에서 난생처음, 우리의 창작안무를 만들어냈다.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는 그 시절 모든 초등학생이 사랑했다. 이후의 <사랑을 했다>, <신호등>처럼 말이다. 우리 역시 그 시절 초딩이었기 때문에, 그 노래를 질리도록 사랑했고,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순간 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직관적인 작사에 걸맞는 직관적인 안무(율동)였다. 그렇게 한순간도 막힘없이 1절까지 안무를 만들어낸 우리는 지금까지 짠 안무를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춰보며 외우기를 반복했다. 우리만의 <밥만 잘 먹더라>를 완성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피아노 학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안무는 야속하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지는 못했다. 아지트를 떠나면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 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둘이 있을 때만 그 노래에 춤을 췄다. 단둘이 아지트에 있을 때, 단둘이 화장실에 갔을 때, 단둘이 노래방에 갔을 때 말이다.


  나와 C는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노래가 나오면 예술 활동을 시작한다. 그것이 우리의 암묵적인 룰인 셈이다. 우리는 밥에 대한 기준이 다르지만, 조금 힘들고 지치는 날에도 아무렴, 밥만 잘 먹으면 된다는 것을 안다. 밥을 잘 먹고,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지지고, 그렇게 배를 똥똥 두드리며 누워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이렇게나 단순한 행복을 누릴 줄 알아서 지금까지 친구인 거라 믿으며, 다음에 만났을 때 C와 함께 출 우리의 예술을 연습한다.


작가의 이전글 넌 특별한 밥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