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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Oct 17. 2022

나의 친애하는 정신과 의사에게

프롤로그

처음 정신과 진료를 받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때의 치료는 그리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약 2분 간 대강의 안부를 묻고 답하고 한 달치의 약을 받아 나오던 그것을 '치료'라고 부를 수 있을지 전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고등학교 3년 내내 전 비정상적으로 쏟아지는 잠에 시달려야 했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었죠.

정신과에 가게 된 것은 자해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서른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저는 아주 가끔, 자살이나 자해를 하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립니다. 마치 연중행사처럼 제게 일어나는 일이에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사라지지 않은 채로 지속되는 걸지도 모르죠.


어쨌든 제가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고 첫 번째 치료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물여섯이 되었을 때, 아마 제가 첫 뮤지컬 쇼케이스를 했던 해일 거예요. 그 해 여름에 저는 새로운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의에 의해서였고 나름 서치를 통해 찾아낸 의사였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던 때, 한 교수님이 제게 '정신분석'을 받는 것이 어떠냐 제안했고 그 제안을 기억하고 있던 저는 '정신분석'을 받을 수 있는 의사를 찾았습니다. 집과도 적당히 거리가 있는 곳으로요.


그가 진정으로 제게는 첫 번째 의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저는 그가 아닌 새로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제가 몇 달간 유럽을 갔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 일어나는 교감, 환자의 입장에서 쓸 수밖에 없지만, 또 저는 그들의 마음을 영영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제가 느꼈던 마음들을 뱉어보려 해요. 그래야만 그때의 저도, 지금의 저도 한결 정리가 될 것 같거든요. 의사에 대한 분석이 될 수는 없겠지만 환자로서 제가 만난 의사에 대한 생각들을 남길 수는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만난 의사 중 한 선생님은 아주 많이 사랑하고, 아주 많이 미워했습니다. 또 다른 선생님은 아주 옅은 기쁨과 고통 속에서 차분히 만나고 있고요. 그 시절의 제가 불타올라 그랬을지도 모르죠.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어쩌면 이 시리즈의 이름은 '친애하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친애하던' 정신과 의사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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