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북이 우리 모두를 더 넓은 세계로 데려가 줄테니까.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 lower east side는 날 것의 감성이 넘치는 그래피티가 범람하는 동시에 인플루언서들이 즐겨 찾는 화려한 루프탑바들이 공존하는 동네다. 이 곳에 동네와 위화감없이 어우러지는 작은 아트서점 “번지 스페이스 Bungee space” 가 있다. 오픈한지 1년 반 밖에 안된 뉴스팟 이지만, 이미지 연구와 비평에 집중한 아트북들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개성 넘치는 패션 아이템들, 일본 티마스터가 내려주는 말차라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등 말그대로 다양한 장르의 융합이 이뤄지고 있는 곳. MZ세대 오너 “시시 황 Shisi Huang”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검색으로 독립 출판사와 신진 아티스트를 찾아, 이들을 위한 판을 벌인다. 그녀에게 이 모든 일들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의 합이자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이다.
크지 않은 공간에 다양한 비지니스가 있다. ‘번지 스페이스’는 정확히 어떤 곳인가?
아트북 스토어가 중심인 건 확실하다. 여기에 커피도 내리고,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과 쥬얼리도 선보이고, 상업 갤러리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가들의 전시도 진행한다. 새 책이 출간되면 북콘서트도 연다. 한마디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뉴욕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이 동네를 선택한 이유는?
이 동네로 오기 전 2년 동안 이스트빌리지에서 북스토어를 운영했다. 이곳의 2/3 정도 되는 곳에서 혼자 일하며 고생도 많았지만 뉴욕에 연고도 없던 내가 드디어 이 도시에 감을 찾기 시작한 계기였다. 그러다 팬데믹으로 가게의 문을 닫고, 평소 좋아하던 로어 맨해튼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바버숍으로 쓰이던 이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대로변도 아니고 너무 조용한 구역이 아닌가 싶었지만, 건물주도 친절하고 동네 분위기도 괜찮았다. 페인트칠부터 책 선반까지 하나하나 내손으로 만들어 나갔다. 옷들이 걸려있는 대형 행거는 폐업하는 빨래방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다. 어떻게 떠올리게 된 건지?
안 그래도 이름에 대해선 모든 사람이 물어본다. (웃음) 번지점프 그리고 번지코드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신축성 있으면서도 특수직조로 강도가 있는 번지코드는 죽음에 닿을 수 있는 순간을 일생일대의 경험으로 반전시키는 안전장치다. 극과 극의 연결고리라는 점에 마음이 끌린 달까? 처음 오픈했을 때는 번지코드로 만든 테이블을 놓기도, 공간 곳곳에 힌트처럼 숨겨 놓기도 했다. 또, 베이징에 돌아갈까 고민하던 때 이 도시에 있을 이유를 만들어준 개인 프로젝트 ‘Bungee Project in Canal street’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한달간 하루에 한명씩, 다양한 아티스트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전시, 대담, 공연 그 무엇이든 그들의 작업을 쇼케이스하는 이벤트였다.
사자 형상의 로고도 흥미롭다.
현재 전시 중인 작가 딜런 존스 Dylan Jones에게 부탁한 것이다. 오랜 인터넷 친구였는데, 그의 몽환적이면서도 카오스적인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번지스페이스에서 하려는 일들을 설명을 했다. 그렇게 받은 로고는 좀 기괴하지만 우리 스타일이었다. 사자도 개도 아닌 상상 속 괴물이 또다른 얼굴을 낳는 모습. 정형화되지 않음과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나간다는 점이 우리와 딱 맞아떨어졌다.
번지스페이스를 오픈한 주체이며, 당신이 속해 있기도 한 ‘3 standard stoppage studio’ (이하 3SS)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셸 뒤상의 동명의 작품 제목을 팀 이름으로 인용한3SS는2016년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San Francisco Art Institute 대학원에서 스튜디오 아트를 전공한 두명의 친구들과 함께 런칭한 곳이라고 들었다. 이들과는 어떤 계기로 의기투합했고,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셋 다 중국 유학생에 1980년대 후반의 비슷한 나잇대, 또 같은 전공이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지게 됐다. 나는 사진과 설치, 낸시 nanxi는 비디오아트와 다큐멘터리, 샤오 Xiao는 사진과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만나면 졸업 후 진로 얘기보다는 책, 디자인, 사진 등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트북도 소개하고 신진 디자이너의 피스도 바잉하면서 전시도 기획하는 아트 스튜디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년정도 작은 북스토어도 운영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이 몰려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물가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고, 방문객들도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비록 우리의 단골이 애플의 아트 디렉터, 다른 테크기업의 크리에이티브들, 아트스쿨 교수와 학생들 등 양질의 고객들이었지만(웃음), 고객군이 항상 비슷하다보니 더이상 비지니스가 성장하긴 힘들단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혼란스럽지만 다양성이 있는 도시를 선택해, 두 친구는 베이징으로 떠나 2019년 4월에 ‘포스트포스트 postpost’를, 나는 뉴욕으로 와서 여러 시도 끝에 ‘번지 스페이스’를 열게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각자의 도시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셀렉션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전체적인 운영과 북큐레이팅, 뉴스레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눈다.
웹사이트도 굉장히 현대미술스럽던데, 누가 디자인했나?
처음엔 셋이 같이 디자인했다. 우리 모두 텀블러, 인스타그램 등 이미지에 익숙한 세대이다보니, 사이트도 이미지 중심으로 만들게 됐다. 뭔가 완성이 덜 된 듯, 또 각각의 개성이 돋보이는 모습이 초창기 인터넷 시대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요즘은 각각의 콘텐츠에 맞는 로고를 각각 다른 디자이너에게 맡긴다. 공도 많이 들고 인내심도 요하지만, 전형적인 디자인은 커피메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웃음)
다양한 장르 중에서도, 이미지 연구 및 비평 (Image studies & criticism)에 집중한 아트북 큐레이션을 선보인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진은 나의 순수한 관심사이기도 했고, 독립 아트 출판사란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매체이기도 했다. 음식, 건축, 음악 등 무엇이든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 연구와 비평에 들어서면 객체에 대한 리서치와 발견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의 등대를 찍은 사진첩이 있다고 하자. 여기에 각 나라 등대의 역사와 쓰임, 유사점과 차이점 등을 비교분석한 컨텍스트가 들어가면 이미지 연구 비평인 것이다. 또는 화분과 폭탄처럼 전혀 다른 오브제의 유사점까지 찾아낼 수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엮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이미지란 카테고리 외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정 기준이 있는지?
일단 공간 규모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책 선정과 디스플레이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엄청 까다롭다. 최신작 혹은 베스트셀러라고 우선순위에 올랐던 적은 한번도 없다. 설령 많이 팔리는 책은 아닐지라도, 직접 읽고 좋았던 혹은 관심 가는 책을 먼저 고른다. 그 중에서도 우리 셋 다 시사성을 던지는 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중국과 홍콩의 분쟁이 한창 발발했을 땐 중국 공산당에 관한 책, 홍콩 우산 시위자의 글, 19세에 일어난 벨기에의 아프리카 식민지 리포트 등 독재주의로 인한 폐해를 다룬 전세계의 다양한 책들을 소개했다. 모두 현상에 대한 비평인 동시에 이미지가 메인인 책들이다. 중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지만 저널리즘이 존재할 수 없는 체재에 실망한 나의 울분을 책 소개로 푸는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이런 주옥 같은 책들은 어디서 찾나?
샌프란시스코의 학교 도서관이 시작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에겐 거의 아지트였다. 그곳의 사서분이 절판도서, 초판본 등을 거리낌없이 보여주곤 하기도 하고, 교수님들로부터도 다양한 출판사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거기서부터 더 깊이 리서치를 하면서, 7년간 전세계의 독립출판사들을 리스트업 할 수 있었다.
아트북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자유. 누구든지 어떤 소재로든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이미지와 함께 출판할 수 있는 자유인 것 같다. 전통적인 출판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이용해도 되니까.
이곳에 처음인 이에게 한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한권만은 너무 어려운데 (웃음). 일본의 공중화장실들의 외관을 사진으로 다큐멘팅한 <Toilets a go go!>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책이고, 물부족 국가인 스페인의 2만개가 넘는 공중수영장들을 사진과 도형으로 아카이브한 <Una Piscina Geopolítica (지정학적 수영장)>도 물음표를 던진다. 또 교도소 형태로 설계된 한국 홍천의 수련원에 초대된 작가들이 쓴 글을 모은 <독방>도 흥미롭다.
아트북은 어쩌면 예술작품 컬렉팅의 좋은 대체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아끼는 아트북이나 어떤 작가의 어떤 책이 있다면?
대부분의 아트북은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익성이 좋아져 컬렉팅하는데 동기부여를 준다. 미술품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투자의 관점에선 아트북 컬렉팅에 비판적이다. 책을 보고 순수하게 얻는 즐거움, 영감, 아이디어 등이 있다면 그것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있는 모든 책이 다 소중하지만 <Tarantismo: Odyssey of an Italian ritual>를 꼽고 싶다. 남부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선 검은 거미에 물리면 미친듯이 춤을 추게 되는 미스테리한 병이 퍼지는데, 이때 특정 음악을 연주하면 회복한다는 지역 미신/의식에 대한 기록이다. 책과 함께 음악이 담긴 LP가 한세트라 소장가치도 높다.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주로 찾나? 요즘 MZ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예술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다양한 층위의 예술이 넘실대는 뉴욕 한복판에선 실제 어떻게 느끼는지?
딱히 젊은 세대들이 더 관심이 많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워낙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사람들이 들르기도 하고 나이가 좀 있으신 어른들, 교수님들 등이 우리의 주요 고객층이자 실구매자이기 때문에. (웃음) 근처 건축사무소의 건축가들, 사진에 관심이 많은 로스쿨 학생, 인스타그램으로 우리를 우연히 발견한 아트북에 관심 많은 캐나다 공무원 혹은 커피만 픽업하러 오는 단골 등 뉴욕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이유로 관심을 보이는데, 굉장히 감사하고 신나는 일이다.
번지스페이스는 다양한 장르를 아트로 포용하고 소개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트’란 무엇이고 그것에서 무엇을 얻는다고 생각하나?
아트란 나를 계속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매개체인 것 같다. 이곳의 일이 너무 많아서 요즘은 전시나 이벤트 보러 갈 시간이 거의 없지만. 가장 최근 보고나서 너무 우울했던 영화는 <Tory and Lokita>인데,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망명하기 위해 온 남매가 받는 끔찍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통상적인 아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우리가 전개하는 담론이나 이슈와도 연결돼 한번 더 생각해보게 했다.
이 공간을 운영하는 일 외에, 당신만의 예술 향유법이 있다면?
번지 스페이스에 모든 걸 쏟아붓기때문에(웃음) 딱히 블로그에 글을 쓴다던가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친구들과 그때그때 이야기를 한다.
뉴욕에는 존재 자체로 역사가 되는 수많은 아트서점들이 존재한다. 오픈한지 얼마 안된 번지 스페이스는 어떤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일단, 우리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커피도 있고 패션 아이템도 있고 아트북 아카이브도 있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곳이다. 또 이러한 다양한 일들을 진행해 번 돈으로, 계속 좋은 책을 발견해내고 투자하는데 쓸 생각이니 믿고 찾아와도 된다.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는지.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책 한두권을 파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닌, 책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생각과 담론이 만들어지는 그런 곳 말이다. 또 인종과 나이, 출신, 학력에 관계없이 누구든 편하게 들를 수 있으면 좋겠다. 더불어 책에 관심없던 사람이 이 공간을 통해 책에 관심을 갖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고!
Bungee Space @bungee.space
Editor @_formiro
Photographer @andrewchalence
This Interview is for <SERIES> magazine spring/summ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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