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갤러리 산책 - 3월의 막차탄 전시 (1)
첼시의 갤러리 숲을 걷다 보면 'A Hug From the Art World'라는 다정한 이름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3층짜리 아담한 타운하우스 전체가 갤러리인 이곳은,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의 집 거실에 초대받은 듯한 묘한 안도감을 준다. 특히 햇살이 쏟아지는 2층 주방 옆에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전시장인지 감각 있는 친구의 집인지 헷갈릴 정도다.
첼시의 수많은 갤러리들 중, 빼놓지 않고 꼭 들르는 이곳에서 영국출신 브루클린 베이스 아티스트인 '낙서 예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존 버거맨의 뉴욕 첫 개인전 막차를 타기 위해 들렀다. 이번 전시는 3년간의 신작 20여 점을 모아 선보인다.
버거맨의 작품을 처음 보면 일단 총천연색 컬러에 기분이 좋아진다. 거기에 댕그란 눈을 가진 피자, 핫도그 풍선, 포동포동한 동물들, 형광빛 크리처들 등은 20세기 애니메이션과 팝아트를 닮은 비주얼 문법을 사용하는 버거맨 특유의 작품들이다. 보는 사람 누구나 일단 입꼬리가 올라간다.
근데 좀 더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하다. 그림 속 캐릭터들은 전부 서로 껴안고 있다. 다독이고, 기대고, 꼭 붙어 있다. 그런데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모두가 서로를 안고 있지만, 정작 서로를 보고 있지 않다. 큐레이터는 이 지점에서 버거맨의 '멜랑콜리'를 읽어낸다. 화려한 컬러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안겨 있으면서도 동시에 '진짜 관계'를 갈망하며 각자의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단잠을 꾸는 듯 아득한 스프레이 페인트의 질감이 그 아스라한 정서를 더 깊게 만드는 것 같다.
버거맨은 예전부터 "내 작품이 갤러리에서만 아니라 기프트숍에서도 사랑받길 원한다"라고 말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삼성, 크록스, CASETiFY, 뉴욕타임스, 뉴욕의 아이스크림 브랜드 Van Leeuwen까지 협업 리스트가 화려하다. 누군가의 폰케이스로, 티셔츠로, 아이스크림 커버로 '일상 속 예술'로 살아 숨 쉬며 일상을 창의적으로 바꾸는 것. 이걸 단순히 '상업화'라고 부르면 좀 억울한 프레임이다.
일본에는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란 개념이 있다. 예술이든 장난감이든, 얼마나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졌느가 대상의 위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철학이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루이뷔통 백으로, 나라 요시모토가 봉제인형으로 번역되어도 그 가치가 예술품과 동등한 취급을 받는 것처럼, 버거맨의 캐릭터들도 어떤 오브제에 올라타든 그 자체로 완성된 세계다.
Hold on, it won't last long. 처음엔 그냥 밝은 응원처럼 들렸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서 다시 읽으니, 조금 달리 들린다. '버텨, 곧 끝날 테니까' 인지, '붙잡아, 오래 안 가니까'인지. 어느 쪽으로 읽든, 캔버스 위에서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껴안고 있는 그 캐릭터들이랑 자꾸 겹쳐 보인다. 요즘의 우리처럼. 뭐가 됐든 서로 꼭 안아주는 작품으로 담요가 나온다면, 꼭 하나 쟁여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