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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연두색 유리 모자이크 타일

애틋함이 담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야기

by Soul two

"I think I'm mushy."

(난 좀 감상적인 사람인가봐)


밝은 연두색 셰이드의 유리모자이크 타일 조각들을 붙여 코스터를 만들면서 쌔미가 말했다. 네모난 판 위에 타일을 접착제로 붙이고 마감하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옻칠을 한 밥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에 계속 묻어나는 접착제와 씨름하던 쌔미와 올리비아가 열두개의 코스터를 만드는데 족히 한 시간은 넘게 걸린 것 같았다. 이제 마지막 손질을 하기 전에 타일 사이 사이를 채운 접착제가 마르기를 기다려야 했다. 어떤 일이든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몇배의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문제의 연두색 타일은 2011년에 집을 지으면서 헬렌이 고른 것이다. 부엌 백스플래시에 붙일 타일을 논현동 타일가게에 직접 가서 골랐었다. 헬렌이 연두색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건 주변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나는 그녀의 생일이 St. Patrick's day와 겹친데서 그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믿고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세상을 온통 연두색으로 물들이는 3월 17일의 축제! 헬렌은 생일이 그날과 겹친다는 것 말고는 아일랜드와 어떤 연결점도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연두색을 사랑한다.


헬렌이 연두색타일을 고른 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타일을 고르고, 방마다 각각 다른 색의 페인트로 석고보드벽을 마감한 집을 짓는데 1년 남짓 걸렸다. 집을 지을 곳이 교통소음이 심해서 고민하다가 패시브하우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터넷에서 패시브하우스 전문 설계사무소를 검색해서 무작정 전화를 걸었던게 2011년 2월이었다. 집을 짓는동안 살던 아파트 전세 빠지는 날짜가 늦춰지는 바람에 공교롭게 이사날짜가 2012년 3월 17일이 되어 헬렌에게는 마흔두번째 생일선물이 되기도 한 집이었다. 집안 곳곳에 연두색 타일을 붙인 집에서 우리는 7년을 함께 살았다.


전월세와 양가 부모님댁 더부살이를 전전하다가 어렵게 마련한 집이었다. 그때 형편으로는 당연히 팔았어야 하는 땅에 내가 울며불며 고집을 부려 무리해서 큰 빚을 지고 집을 지었다. 애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자라 떠나고 나서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우리를 만나러 돌아올 집일거라고 생각했다. 건축비를 너무 아껴서 그랬는지 끊임없이 여기저기 깨지고 망가지고 물이 샜지만 돈이 조금 모이면 이리저리 고치고 다듬어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손바닥만한 뒷뜰에 심었던 대추나무가 쑥쑥 자라서 나중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지를 치고 대추를 따줘야 했다. 그런 집을 7년만에 팔겠다고 결심하고 사흘 동안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었던 것 같다.


헬렌과 올리비아는 처가가 있는 토론토로 떠나고, 쌔미는 캘리포니아에서 학교를 다녔다. 나는 혼자 판교에서 월세를 구해 살며 직장에 다녔다.


집을 지을 때 사용하고 남은 자재를 지하 보일러실 한켠에 쌓아두었었는데, 이사를 나오면서 연두색 타일 박스를 기념으로 챙겨나왔다. 10년을 써서 여기저기 긁힌 원목테이블을 월셋집으로 가져다가 상판에 타일을 깔고 강화유리를 덮어 리폼했다. 생각보다 타일이 모자라서 채우지 못한 빈 자리로 줄무늬가 생겼지만 그래도 전에 살던 집의 한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다.


타일이든 책상이든 자동차든 어떤 물건에 대해 애틋함을 느끼고 애착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돌가루이거나 나뭇조각이거나 쇳덩어리일 뿐이다. 그들은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 하지도 않고 나와 헤어진다고 해서 나를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물건일 뿐이다. 그럼에도 손때묻은 물건들과 헤어지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돌가루이거나 나뭇조각이거나 쇳덩어리일 뿐인 것들에게서 애틋함을 느끼는 건 그들과 함께 지냈던 과거의 우리들 때문일 것이다. 맞벌이하며 아이들 키우느라 늘 지쳐있던 헬렌과 나. 겨우 기어다니는 아기였던 올리비아, 초등학생에서 사춘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어버린 쌔미. 영원히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과거의 우리들이 연두색 유리 모자이크 타일에 아른아른 비춰보이기 때문일거다.


그렇게 5년을 흩어져 살다가 올해 내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월셋집을 정리하고 토론토로 이사하기로 했다. 여름에 온가족이 한국에 들어와 이삿짐 정리를 도왔다. 두꺼운 옷가지들과 모아둔 책들 정도만 박스에 넣어 선편으로 토론토에 부쳤다. 아직 쓸만한 가구나 전자제품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넘기고 나니 10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와 마대자루를 몇개썼는지 모를만큼 버릴 물건이 많이 나왔다. 식탁으로 쓰던 원목 테이블도 결국 원하는 사람이 없어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서 내놓기로 했는데, 그때 쌔미가 연두색 타일을 따로 챙기겠다고 했다.


챙겨둔 타일은 토론토로 가져다 두라고 헬렌에게 신신당부를 했고, 그렇게 토론토에 도착한 타일로 코스터를 만드는 것은 쌔미가 9월말의 토론토 2주 방문기간 중에 꼭 해야할 일이었던 모양이다. 쌔미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기 전 일요일 오후에 온가족을 끌고 미술공예 용품들을 파는 마이클스에 가서 이것 저것 재료들을 사왔고 올리비아를 끌어들여 네모난 코스터를 만들기 시작했던 거다.


타일 접착제가 다 마르고 해야 할 마무리 작업을 미처 마치지 못한 채 쌔미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완성되지 못한 코스터는 쌔미 방 침대 밑에 고스란히 모셔 두었다. 크리스마스에 쌔미가 토론토 집에 오면 같이 마무리작업을 하고 코스터를 완성하게 될거다. 쌔미 덕분에 우리는 연두색 타일 코스터를 보며 과거의 우리와 좀 더 자주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Thank you Sam, I think I'm mushy, too" ㅇㅓ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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