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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쟁이글쟁이 Mar 30. 2024

지하철 풍경 천태만상

진상천지

임산부석에 40대 초반 가량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껏 멋 부리고 뽐낸 타입이다.

눈에 확 뜨이는 베이지주황색  무늬가 섞인

 칼라 양말에 로펌 단화에, 베이지색 바지에   스트라이프 셔츠와 밤색 슈트차림이 큰 키와 비례해 제법 잘 어울렸다.

뽐내고 멋 낸 것에 비해 건들건들 반 건달끼도 묻어났다.

근데 임산부석이 웬 일이람.옷차림이 무색하구나 .

그냥 앉은 것도 아니고  한쪽 다리꼬은 상태에서

큰 키 탓인지  반쯤은 내려앉은 자세라  바닥 경계선  발이 훨씬 앞으로 나와 있었다.

자릴 지나는 누군가가 자칫 발에 걸려 자빠질 수도 있는 그런 상태였다.

다들 한 번씩  쳐다만 보고  은근 눈총주는 듯 했지만

선뜻 아무도 뭐라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임산부야?  젊은 사람이 왜 거기 앉아  있어?

아무리 에누리해 줘도 80은 훨씬 넘었을 듯한 할머니가 케리어를 앞세워 타자 마자 큰 소리로 꾸짖었다.

"거긴 임산부 자리야,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니라고"

근데 왜 거기 앉았는 거야,

다짜고짜  반말에 큰소리로 떠들어대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뻘쭘해진 남자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민망했던지

꼬았던 다리를 슬그머니 내리며 깐족거렸다.

눈치 보며  얼떨결에 다리를  슬쩍 내리는 동작에서는  

나름대로의 공손함이 느껴졌다.

방비 상태에서  예고편도 없이  당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함이었는지  남자의 입에서는  전혀 아무도 예상 못한 뜻밖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잇, 할머니가 앉으려고 그러는 거조,?

차라리 그냥  조용히 일어나는 게 덜 쪽 팔리고

더 좋았을 것을 장난끼도 살짝 섞어 툭 내뱉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질문은 뭐람..

좋은 구경거리생겼다는 듯이  웅성거리며 큭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케리어 할머니가  백발백중 두 번째 어퍼컷을 날렸다..

"아  이 사람아 ,  내가  두 다리 멀쩡한데 거길 왜 앉어.

말 같지도 않 소릴 하고 그래.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는지  이번에는 말투에서도  공손함이 묻어났다.

"에이,... 할머니, 제가 다리가 아파서 잠깐 앉았어요"

나름의 변명을  띤 그 한마디에 살짝 빈정거림과

못 본 척 그냥 넘어가지 웬  참견이냐..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같았다.

"나 할머니 아녀, 어따 대고 할머니래.


노인들 특징;

.한눈에 척  봐도 노인인데 나 노인네 아녀...

절대 노인이 아니라고  벅벅 우기며  부정하는 현실...


마른 체형만큼 꼬장꼬장하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할머니가 계속 멍멍이 꾸짖듯 말을 이었다.

이 할머니 또한  치렁치렁 요란 뻑적지근한  차림새를 보아하니  절대 예사 노인네는 아니지 었다.

자연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퀼트조각  롱 스커트에

너풀거리는  초록색 스카프를 목에 휘 휘 두르고는

속이 반 쯤. 휑~한  라면  뽀글 머리에 대형 리본으로 포인트를 살렸다.

거기다 깔 맞춤한 듯  초록색  통굽  쓰레빠를 발판 삼아 둥둥  떠 있는 작은 섬 같았다.


빠른 입을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높은 통굽의

부자연스러움에 눈길이 한번 더 가는 존재였다.

진짜  미국 공기를 마셔  미국에서는 말야..훈계조인지 어쩐 지는  잘 모르겠고  아주 살짝 정신줄 놓쳐 아무한테나, 아무 데서나  큰소리치는 그쪽에 한표 , 내기를 걸고 싶었다.

대형케리어를 쑤셔 넣다시피  탑승할 때부터 첫 눈에 살짝 맛이 가신, 그런 노인처럼 보였다.

노인네 아니라고  우기던 노인네가 임산부 자리를 향해

나머지 꾸짖음을 강행했다.

"그리고  미국에선 말야  임산부석에 절대 아무도  

안 앉어. 그 자린 당연히 비워 놔야 하는 자리라고,..

임산부들 앉으라고 있는 자리에  왜 아무나 앉어

그건 잘못된 거야..

그런  훈계 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남자는  굳건하게 앉아 있었다.  주구장창 시선을 피하면서도 전혀 일어날

 맘이 없어 보였다.

다리가 아파 앉았노라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이미 했던  터라 섣불리 일어나지도 못할 꺼란 예상을 하며

나 또한 매의 눈으로 시를 했다.

진짜 다리가 아픈 건지, 개뻥인지 내 꼭 확인하고 말리라는 혼자만의 결심을 굳혔다.

첨엔  그 자리를  빼앗으려는 무대뽀 노인쯤으로 생각했다가, 그 담엔 그냥 남  참견하는 할 일 없는 노인으로 간주했다가, 하도 당당하게  큰소리로  떠드니 기가 좀 꺾인 것 같아 보였다.

미국에선 어쩌구  저쩌구.. 미국 물을 좀 드신 할머니라니   반기를 들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졸지에  주위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처지이다  보니

껄렁대는 자세나 건들거리는 말투도 전혀 통하지

을 것 같았다. 

많은 인파와 더불어 둘의 실랑이를  함께 태운 전철이

숭실대 입구역에  정차하는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남자는 튕기 듯  멀쩡한 두 다리로 튀어나갔고 할머니의 눈은 문밖으로 향해 있았다.

저것 봐라 , 다리가 아프긴  뭔 개소리,  미친 놈...

하는 표정이었다.

열림과 동시에  뛰어내리는 남자를 보며  나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미친  놈 .   치더니  튀냐..


내 느낌엔  60 후반 층  배 나온 남자들이 임산부석에  앉아 있을 때 젤 거북해 였다.

배  부른 거로 치자면 거의. 막달 수준이긴 하지만

그 배와 (진짜 임산부) 그 배는 (노년의 인품 )엄연히 다른 것인데도 핑크자리에 떡 하니 앉아 있는 걸 보면 민망함은 내 몫이었다.

2~30대는 (특히 남자는)서서 갈  망정  절대 앉지 않았고, 40대 여자들은 들쑤시고. 비집고  앉았다가 임신부가 오면 비켜주겠다는  지 멋대로의  야무진 계획으로 종종 버텼다. .6~70 대 할매들이야 뭐 두말하면 잔소리, 입만 아프다는..

니 꺼도 내꺼,  내꺼도 내꺼 결론은  다 내꺼.

슈퍼 울트라 파워  급 무법천지에 나이 자체가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강력한 무기였다.

어떤 땐 진짜  임산부힘들게 서 있는데도  젊은 할매들이 자리 차지하는 건 다반사였다.

배려 같은 건 이미 접어둔 지 오래,

나잇대가 무기인 뻔뻔함은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이번역은~~림...

70은 훨씬 넘어 보이는 할배 셋이  탔다.

엿들을래서 들은 게 아니라 어찌나 목소리 우렁차게들

떠드는지 전철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나이 들면 귀가 안 좋아져 목소리만 더 커진다더니

맞는 얘기 같았다.

단골 유흥업소에서 오는 문자인지 서로  보여 주며  자랑삼아 공유를 했다.'

바로 옆자리에 있다 보니 눈동자만 살짝 굴려도

큰 글씨  체가 훤히 보였다.

 오빠, 언제 와요.

 미국 친구랑 가는 중..

셋이 나란히 앉은  맨 오른쪽이 미국에서 온 친구인 듯 했다.   어랏,  이 팀도 미국이네...

미국서 온 친구는  애써 짧은 다리를 무리해 가며 포개느라 옆사람 발로 까고  까인 아가씨는 눈 흘기며 투덜투덜, 혼자 보기 아까웠다.

미안하다는 사과 같은 건 애초에  할 맘 조차도

없어 보였다.

까인 아가씨가 혼자 성질부리며 지 종아리를 찰싹찰싹 소리 내어  두어 번 휘갈겼다.

눈은 여전히 미국친구를 향해 흘기는 중 이었다.

눈총 받느니  미안하다 소리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


남 듣거나 말거나 대화내용이  맨 술 얘기, 술집얘기,

프 얘기..차림도 고급지고 있는 집 노인들 같았다.

하지만 주위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게

껄끄러웠다. 

잖고 품위 있게 나이 들 수도 있을 텐데 결코  맘 처럼

쉬운 일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점잖게 늙고 싶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더만  원래 밥 사는 건  취미이고 입 ~

 특기이니 거칠게 없으려나.

일 년 365일도 입 다물고 살 자신이 다.

입에 곰팡이가 필 망정 입다무는데는 일인자였다.

고3. 땐가...무슨 일로 얽혔는지 1호랑  거의 3년여를 말 한마디 안하고 지냈었다.

자매들이 한 방 쓰면서 드나드는 시간이 다르니 덜 부딪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의도으로 피하고

 입을 닫았다.  처음엔  맞닥뜨리면  화나고  꼴 보기 싫다가도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점 점 무덤덤해지다가

그냥 투명인간 취급단계까지 가는 것 같았다.

1호가 결혼식 며칠 앞두고 얘기 좀 하자고  해 앙금을 푸는 계기가 되었으나  그 뒤로 어지간해선 비위를 건들지 않았다.

드러운 년, 질긴 년..혼자 벼르거나 말거나였다.

내 하기 싫은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안했다.

맘에 없는 소리나 농담 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허튼 소리나 허튼 짓 따위는  언감생심!


웃고 떠들던 노인 셋이 내리니 이번엔 뚱뚱한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가 타는 통에 자리를 엄청

많이  차지했다.

자리마다 투명 막으로 된 칸막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1점5배나 자리를 차지한다는 건 거의

민폐 수준이었다. 진상 옆자리는 짜증 나고 피곤함을 가중시켰다.

어느 순간 퍼 자는가 싶더니 조금만 닿아도 팔꿈치로

 툭 툭 치는 게 느껴졌다. 지 풀에 지가 닿고는 옆자릴 밀어내는 기분이 들어 속으로 혼자 별별 욕을 다 하며 벼르는 중이었다.

이런 미친 개또라이 뚱띠 년..

오른쪽 자리의 신입은 50대 정도 아저씨가 앉았다.

맘 놓고, 까놓고 기대어 졸기 시작하는데 왼쪽에서 팔꿈치에  까인 것을 오른쪽으로 갚아주며 인내심을 시험하는 중 이었다.

기대는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가만히 버티고 있다가 의도적으로 어깨를 확 빼버렸다

등 뒤로 쓰러지듯 움찔하더니 혼자 흠흠 ...거리며 또 다시 기대어 자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왼쪽에선 스치기만 해도 뚱띠가 팍팍 치며 눈치를 주지,

오른쪽에선  허락도 없이 어깨에 기대어 처 졸지

좌 , 우  진상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확 일어나 버렸다.

빈자리에 쓰러지듯 기댔던 우측 진상은 졸지 않은 척,

기대지 않은 척 버티고 앉았는데 눈꺼플은 여전히

밀려오는 잠을 떨쳐내지 못했다.

좌측진상은 언제 졸았던가 하는 말끔한 얼굴로 핸폰을

들여다보기 바빴다.

내리기 전 까지  불편했던 그 둘을  째려보느라 뱁새눈이 되어버린 하루였다.

눈이 피곤하니 만사가 귀찮아 아무것도 하기싫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다 못해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는 생각조차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이럴 땐 퍼 자는 게 최고 최고다!

누가 그랬지? 어차피 죽으면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들 텐데  자는 시간조차도 아깝다고.

그래도 잠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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