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저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요즘 들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하지요.
엘리트들이 단체로 몰락해가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자면, 성적 지상주의 우리나라 교육의 후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역사를 바라보는 70년대생 80년대생 부모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얼마전 아이들과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아이가 차에서 잠든 덕분에 큰 아이는 큰아이대로 저는 저대로 각자의 책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었지요.
그리고 서점에서 나오면서 큰아이가 고른 비룡소 클래식 시리즈 '15소년 표류기'를 한 권 사주었습니다. 아이가 도톰한 그 책을 집에 와서도 늦은 시간까지 다 읽고서야 잠드는 걸 보로는 내친 김에 다음날 도서관에서 같은 비룡소 시리즈인 '톰소여의 모험', '해저 2만리', 그리고 이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빌려왔습니다.
톨스토이 단편선은 어렸을 적 부모님이 도서전에서 사주셨던 처음이자 마지막 문학전집을 통해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엔 우리나라 동화보다 러시아 민화 중심의 외국 동화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학 전집도 외국 동화나 민담 번역본이었으니까요.
하나님의 어릿광대 라는 책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네요. 그림책이었는데, 늙어가는 어릿광대와 국수가락이 흘러흘러가는 독특한 그림은 여전히 기억이 뚜렷합니다.
종교가 없었는데도 말이죠.
이야기가 잠시 곁가지로 흘렀는데요. 어찌되었든 그래서 이반 이라는 이름도, 일리야 같은 러시아 이름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죠..종교적 색채가 강했음에도 거부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이 될 때 즈음부터는 토지, 혼불 같은 대하소설이나 소피의 세계 같은 당시 꽤나 유행했던 철학서 위주로 읽느라 잊혀져갔는데요. 이번에 책을 빌리면서 '바보 이반'이라는 제목을 보곤 문득 지난날을 떠올리게 되었던 거죠.
그 땐 그냥 이야기가 재미있어 읽었을 뿐이었는데요.
불혹의 나이를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감정과는 너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책을 읽다보니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자 같은 이야기들이 특히 인상에 남네요. 그런데, 이번에 특히나 더 마음에 닿았던 이야기는, '사람에게는 땅이 많이 필요한가.'였어요.
이 이야기는 철학이나 에세이 관련 책들에서 많이 인용되곤 하는데요. 인용되는 내용으로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략 알고 있으실 겁니다. 저도 줄거리 정도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원문을 읽은 건 처음인 것 같아요.(읽었을 수는 있습니다. 기억을 못할 뿐.)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역시나 이야기 '줄거리를 안다'가 '그 책을 읽었다.' 와 동의어가 될 수 없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주인공 파홈은 하루만에 걸어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든 땅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말에 천루블을 지불합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나서지요.
갈수록 좋은 땅이 보이니 욕심이 든 파홈은 다소 무리를 하면서 걸어갑니다. 나름 머릿 속으로는 철저히 시간을 계산하는 듯 하지만, 좋은 땅이 나타나니 쉬이 돌아서지 못하고 무리를 했던 거지요. 마침내 해가 질 무렵, 파홈은 출발점에 해가 지기 전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온 힘을 다해 뛰지요.
마침내 마지막 해가 떨어지고 정확하게 파홈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정말 장하군요! 참 많이도 차지했습니다."라며 깔깔거리는 이장 앞에서 파홈은 제자리를 찍자마자 입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버리고 말지요.
파홈의 일꾼이 긁개로 파홈의 무덤을 판 다음 그를 묻었는데 그가 차지한 땅은 정확히 3아르신(210cm)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등바등 평생을 땅을 넓히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던 파홈이지만, 결국 죽을 땐 자신의 한 몸 뉘일 관 크기 정도만 필요했다.....는 울림 있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문득 얼마전 돌아가신 할머니, 관 속에 곱게 화장하고 누워계셨던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죽을 땐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고, 내 한 몸 뉘일 관 크기 정도의 작은 땅이면 족한데, 난 왜 아직도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가. 나 죽으면 슬퍼해줄 이 있을까.
주변 사람들을 챙기면서 사랑만 주고 가도 아쉬울 하나 뿐인 인생인데 난 왜 주변을 내 뜻대로 조종하려 하면서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원망하고, 미워했던 걸까요.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내 처지를 한탄하기도 하고 말이죠.
당장 오늘 아침엔 제가 복직하고 '몇 달동안' 번 월급, 설상여, 각종 수당을 다 끌어모아 제법 두둑해졌다며 남편한테 한껏 자랑했던 '통장 잔액'이 고작 남편의 '딱 한 번의 설 상여 액수보다 적다'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좌절했는지요.(남편은 신의 직장에 다니는 상류계층(?) 아니구요. 아주 지극히 평범한 K-회사원입니다.
휴복직을 반복하면서 제 나이 또래보다 적게 벌고 있는 건 알았는데요. 휴직으로 내지 못한 4대보험료를 분할 납부해야 하기도 하고, 단축 근무로 바뀌면서 그나마 적은 월급마저 반타작이 되어버렸기에 평범한 남편 급여보다 월등히 적은 건 아주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긴 합니다. 남들보다 근무시간이 짧으니 최저임금보다 낮은 것 같은...아르바이트생 수준의 급여로 만족해야 하는데 저만 인정을 못할 뿐인 거지요.휴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할머니 입관식 때 들었던 스님들의 염불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 하네요.
아등바등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는 하루의 마무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집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글과 행동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은 귀한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덧붙이는 글) 12.3 내란의 주역이신 그 분께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늘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 정치인일수록 아집에서 벗어나 폭넓은 사고를 하기 위해서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