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 숙론의 화두를 던지다
모처럼 또 최재천 박사님의 신간을 읽었습니다.
모범생이면서 모범생이 아닌 길을 걸어오신 분.
성공하신 분이기는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궤적과도 조금 다른 길을 가는 분이시기도 하죠.
최재천 박사님의 책은 리뷰로도 올린 적이 있기도 하고, 아이가 가야할 길과도 맞닿아 있어서 늘 관심있게 찾아보기도 하는데요.
요즘들어 박사님께서 내시는 책들 대부분은 요즘 시대상황을 에둘러 비판하시기 위한 듯 합니다. 곤충 책들보다 공부, 희망, 양심 등이 화두였거든요.
공부는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서 시험 잘 보는 비법이 담긴 공부 비법서가 아니구요.
오히려 문제집을 던져버리고, 호기심의 궤적에 따라가는 진짜 공부, 방황이 공부가 되고 경험이 되는 그런 공부를 이야기합니다. 방황은 타락의 길이 아니라 나의 관심사를 찾아서 이런 방향 저런 방향으로 공부하는 걸 방황이라고 이야기해주시기도 하죠.
그렇게 방황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은 결국 나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주어 편협되지 않고 깊은 통찰의 재료가 되고,나아가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게 박사님의 공부 지론입니다.
그러니 학원에 앉아서 받아만 먹는 공부가 대부분인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마땅히 버려져야 하고,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끝장토론처럼 경쟁 체제 기반의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디베이트(논쟁)보다 모두의 의견을 모아 정반합에 이르는 숙론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하지요
정통 엘리트 코스를 무비판적으로 밟지 않고 반골기질로 가득했던, 그 분의 궤적을 가만히 살펴보면 당연한 결론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길을 개척했고, 그런 희소성있는 경험들이 쌓여 그분의 지금을 만들어냈으니까요.
게다가 미국과 우리나라의 명문대를 모두 경험하신 분이다보니 학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남이 주는 지식을 받아먹는 무비판적인 주입식 교육의 문제를 누구보다 더 잘 느끼시는 듯합니다.
교수님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받아적어 달달 외우는 우리나라 서울대생의 모습과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수와 다른 의견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더 좋은 의견을 끌어내는 게 가능한 미국 하버드대생들의 모습을 모두 겪으셨을테니 말이지요.
최재천의 희망수업에는 대한민국의 지금 교육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으면서도 다행히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독서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합니다.
책은 빡세게 읽어야 한다며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이라고 강조하시는 박사님의 지론을 듣자니, 요즘 너무 편한 책만 본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분야도 한 권 한 권 읽다보면 어느새 용어의 낯설음을 극복하고 익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잖아요.
그러한 빡센 독서의 힘은 결국 나의 진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통섭하다보면 전문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독자적인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한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는 많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잘 이해해서 남들이 하지 못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희소성이 있으니 사회에서 독자성을 인정받기 더 수월하겠죠. 그렇게 사회에 꼭 필요한 수학능력을 가진 사람. 박사님이 몸소 걸어오신 삶의 궤적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픈 이 책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모처럼 박사님의 책을 읽으며 저의 교육 방향을 다시 확신하게 됩니다. 남들보다 뒤쳐져보일 수도 있고,
느려보일 수도 있는데요.
느리지만 탄탄하게 여러가지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잘 찾아 갈 수 있는 아이로 기르는 것.
이것이 저희 부부의 교육관이거든요.
그러니 대학 입시는 등산으로 말하면 정상이 아니라 힘들게 지나가야 하는 깔딱고개 정도가 되겠네요.
며칠 전 아이가 학교에 바둑을 챙겨 가더라구요.
초등학교 때 같이 바둑 수업을 듣던 친구가 바둑하고 싶다고 말해서라고 하더군요.
가져갔더니 같은 학년 아이들에게 소문이 순식간에 퍼진 모양입니다.
한식 좋아하고
학교에 종이 신문 가져가서 틈틈히 읽고
라디오로 경제방송 듣고
바둑을 두는 큰 아이를 본 한 친구가
자기 할아버지 같다고 말했다네요.
음...그러고 보니 옛날 저희 할아버지 모습을 보는 것 같긴 합니다.
어쩌면 그 옛날 할아버지처럼 느릿느릿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만 급급한 토끼들이 많은 세상에서 거북이처럼 옆도 보면서 느릿느릿 가도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언젠가 지친 토끼들이 하나씩 둘씩 나가떨어질 즈음...꾸준히 걷는 거북이의 진가가 나타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나가떨어진 토끼들을 하나씩 둘씩 일으켜세워 같이 걸어가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혹시나 나가떨어진 토끼들이 더 없는지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챙겨보고 말이죠.
때론 돌아가는 것도 좋겠네요.
돌아가는 경험도 지름길로 갈 땐 보이지 않는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모처럼 술술 읽히지만 주제는 묵직한 교수님 책 한 권 꼭꼭 씹어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