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이야기의 시작

by mogifilm 박경목

김대우는 작가란 글을 쓴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쓸 게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작가는 직업이 아니라 어떤 신분 같은 거다.

글을 쓰지 않아도 글을 썼다면 신분이 유지가 된다.


글을 쓰려면 궁금한 게 있어야 한다.

화딱지라도 나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걸 김대우는 화두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

[음란서생] 에서 처럼

내 마음 속에서 간질간질 하거나

울화통 터지거나

뭔가 올라오거나…

아님 [변호인]의 송우석 처럼

“이건 아니 잖아요.” 같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 있어야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할 이야기가 없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면

영화나 이야기가 공허하다.

돈을 벌려고 만드는 영화라 하더라도

최소한 이야기의 씨앗은 필요하다.

화두.

그것은 이야기의 기획의도가 되기도 하고

1막이 끝나고 본격적인 2막에서 질문이기도 하고

클라이막스가 끝난 후 답을 얻은 것에서 해소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나 감독은 자기 마음 속에 균열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뭔가 체한 게 있는 사람이다.

고름 같은 것이 있다.

머리 속에 가시 같은 게 박혀서 자꾸 찌른다.

자고 있어도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고

계속 뒷간에 갔다와서 제대로 안 닦은 것 같은 게 있다.

암세포 같은 거다.


봉준호에게 그것은 고등학교 때 봤다고 생각한 괴물이고

그것은 계속 찜찜하게 남아 있다가 점점 혹 처럼 커진다.

비로소 그것을 떼내서 눈 앞에 보고 그 실체를 확인하고

그것을 만들어서 버려야

뇌 속에서 그 이미지를 버릴 수 있다.

어떤 순간에는 상처였을 수 있고

강렬한 어떤 만남 이었을 수 있고

잊지 못한 옛 사랑의 집착일 수 있고

가족의 아픈 역사 이기도 하고,

존재의 더러운 피 이기도 하다.


정신과 상담을 하면 계속 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상처나 트라우마 등을 내놓고

자꾸 보게 만든다.

그렇게 보다가 보고 그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게

상담의 효과이다.

우리의 창작도 그런 거다.

머리 속에 박혀 있던 가시가 되었던 혹이든

그것을 꺼내서 세상에 내놓고 실체를 확인해야

나를 짓누르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드디어 내 등 뒤에 누가 없음을 안다.


이것은 극에서 주인공의 목적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하고

주인공이 회복하고자 하는 세계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하고

잃어버린 것 이기도 하고,

시대와 만나면 시대정신, 결핍 이기도 하고

우리가 원하는 감정이기도 하고

혹은 그것 조차도 숨겨놓고 어떤 하나의 코드나 장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말임씨를 부탁해를 만들면서 요양보호사 미선이 버스 안에서 몰래 송편을 먹는 장면을 넣었다. 그 캐릭터가 처한 곤궁한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잠시 짝이 되었던 친구에 대한 혹 같은 것을 떼내고 싶었다.

그 친구는 시골에서 전학을 와서 임시 짝이 되었다. 당시에 대구와 경북간 전학이 마지막으로 허용되던 시기여서 대거 시골에 있던 친구들이 전학을 왔었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은 안 계시거나 딸을 조부모에게 맡겨두고 돈을 벌러 나갔을 것이다.

그 친구는 밥도 제때 챙겨 먹지 못하고 와서 도시락도 못 싸와서 과일이나 밤이나 생고구마를 싸왔다. 수업 시간에 사과를 꺼내서 허벅지에 슥슥 닦고는 한 입 베어 물고 선생님이 볼까봐 베어 문 사과를 책상 안에 넣어 두었다. 까무잡잡한 그 친구가 어릴 때는 두려웠었다. 사과를 어그적 베어물고 남은 것을 베어 물었던 그 광경이 오랫동안 박혀 있었고, 그게 더러워 보여서 그 친구를 괴롭히기도 했다. 한 달간 임시 짝이 되었던 그 친구는 그렇게 다른 반으로 갔고, 그 때 그 기억은 나의 죄책감으로 남았고 그 친구의 이름을 잊지 못했다. 그 때의 일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장면을 넣었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혼자 눈물이 나왔다. 그제서야 나는 그 기억을 편안히 흘려 보냈다.


영화에서 화두는 더 깊고 핵심적인 것 일 수 있지만

영화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이렇게 사적일 수 있다.

나의 암덩어리를 떼내서 강물에 흘려 보내는 것

그게 이야기를 만드는 시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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