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별에서, 우리는

우주에서 태어난 인어공주

by Plum



저기 저 먼 우주에 인어의 별이 있다. 화성보단 멀고 명왕성보단 가까운 그 어딘가에 인어의 별이 있다. 인어의 별은 멀리서 보면 지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는 지구의 반의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깊고 깊은 바다가 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인어들이 저 멀리 태양이 지는 것을 구경할 때 사용하는 육지가 아주 작게 별을 이루고 있다. 그 넓고 깊은 바다에 왕국이 있는데 인어들의 왕국에는 여섯의 공주가 있다. 모두 풍성한 머릿결과 아름다운 꼬리를 가졌지만 막내 공주는 용기까지 가진 소녀였다. 언니들의 비해 호기심이 많아 자주 별 밖으로 나가 우주 도적떼를 만난 적도 있고, 다른 별에서 다리가 있는 친구를 아버지 몰래 만들기도 했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인어의 꼬리는 사람의 다리보다 훨씬 유용했다. 두 다리로 걷듯이 움직이는 것보단 긴 꼬리로 수영하듯 무중력을 헤엄치는 것이 훨씬 빨랐다. 덕분에 막내 공주는 우주에서 유명한 호기심 많은 소녀였다.



" 70년 전이었어.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우주에 온 적이 있었지, 그들은 이상한 고철덩어리에 탄 채로 자기 몸보다도 훨씬 커다란 옷을 입고 있었어.. "



막내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중 '인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막내 공주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아주 멀리 살아서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머리부터 허리까지는 인어와 같은 형상이지만 다리라고 하는 두 개의 꼬리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막내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 몰래 사귄 죽은 자 들의 별에 있는 친구를 떠올렸다. 그 친구도 두 개의 꼬리로 걸었고 머리부터 허리까지는 인어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 별의 종족들은 '탄생'이라는 것이 없었다. 막내나 언니들과 다르게 태어난 날도 태어난 시간도 몰랐다. 그저 눈을 뜨니 이곳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악한 종족은 아니었지만 죽은 자 들의 별까지 가는 길엔 망각의 블랙홀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막내가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막내 공주의 열다섯의 생일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저 멀리 태양이 수면에 닿았을 시간부터 깊고 깊은 왕국은 들썩였다.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춤을 췄고 언니들은 막내를 위해 온갖 산호와 조개, 그리고 육지의 붉은 꽃까지 가지고 와서 막내의 화관과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다. 파티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막내 공주는 지쳤다. 모두들 취해있는 틈을 타 잠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우주를 유영하며 언니들이 만들어 준 목걸이를 바라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저 멀리 별 하나가 반짝였다. 막내는 오랜만에 '별의 탄생'을 보는 것인 줄 알고 설레었다. 그런데 별이 점점 다가왔고 가까이에서 보자 커다랗고 차가운 고철덩어리였다. 막내는 생전 처음 보는 물체에 목걸이만 꼭 쥐었지만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반짝이는 꼬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도적떼들의 배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하게 생긴 물체였다. 막내는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 커다란 눈을 굴려 여기저기 기웃거렸고, 고철덩어리 안에는 죽은 자 들의 별에서 보았던 친구와 비슷하게 생긴 생물체가 있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달랐다. 그 친구에게선 느껴지지 않는 생기를 느꼈다.



"와, 인간이구나!"



막내는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이야기하던 고철을 탄 인간이었다. 그 인간은 다리가 있었고 잠에 든 듯이 무중력 위에 누워있었다. 막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얀 고철덩어리를 여기저기 둘러보았고 문을 찾아냈다. 용기 내서 문을 열어 고철덩어리 안으로 들어갔다. 고철덩어리의 안은 규칙적인 소음이 들렸고 인간은 여전히 누워있었다. 막내는 인간에게 다가가 인간의 뺨에 차가운 손을 가져다 댔다. 따듯했다. 살아있는 인간은 온기를 품고 있었다. 막내는 한번 더 인간의 반대쪽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때 인간이 눈을 떴다. 막내를 본 인간은 눈이 동그래진 채 놀라움을 표현했고 막내는 재빠르게 의자 뒤로 숨었다. 인간은 어설프게 몸을 뒤집어 조종석으로 가 이런저런 버튼들을 눌렀고 곧 소음은 멎었다. 인간은 무중력 상태에 있던 몸이 내려와 바닥에 발이 닿았고 막내는 몸이 무거워졌다.



“.. 안녕?”



인간이 말했다. 막내는 여전히 목걸이만 꼭 쥔 채 의자 뒤에 숨어있었고 대답이 없는 막내를 바라보던 인간은 자신은 지구에서 왔다며 저 멀리 우주에 사는 인어의 전설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막내는 인간이 인어를 알고 있다는 것이 반가워 웃어 보였다.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에게 어쩌다 이곳에 왔냐고 물었다. 인간은 지구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그만 작은 행성을 피하려다 방향을 잃은 것 같다고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 고마워, 네가 깨우지 않았으면 나는 그대로 죽었을 거야. 사실 아까 눈을 떴을 때 널 보고 이미 내가 죽은 줄 알았어 “



둘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인간에게 들은 지구는 너무도 흥미로웠다. 인어의 별과 마찬가지로 바다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인어의 별과는 다르게 ‘공기’라는 것이 있었다. 날아가는 새라던가 네발로 걷는 사자 같은 이야기는 호기심 많은 막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인어의 별이 한 바퀴를 돌아 내일이 온 것도 모른 채 막내는 인간과 이야기했다. 우주에선 오늘과 내일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생각나 내일 다시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인간은 고개를 끄덕였고 내일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막내는 그 손위에 자신의 손을 맞대어 보았다. 인간에게 인사를 배웠다.



내일도 그 내일도 막내는 매일 인간을 찾아갔다. 인간은 멋진 꼬리는 없었지만 근사한 미소를 가졌고 무중력을 헤엄치진 못해도 다정한 인사를 할 줄 알았다. 막내는 인간이 좋았다. 언니들을 생각할 때 보다 가슴이 뜨거웠고 죽은 자 들의 별의 친구를 생각할 때보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인간도 자주 귀를 붉혔다. 막내가 집에 가야 하는 내일이 오면 아쉬워졌다. 그렇게 매일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새로운 날이 밝자마자 막내가 인간에게 선물할 산호목걸이를 만들어 그에게 찾아갔다. 직접 바다를 헤엄치며 가장 예쁜 조개껍데기와 산호들을 주워 정성껏 엮은 것이었다. 인간은 근사한 미소로 고마움을 전하고 자신도 보답하겠다며 조종석을 뒤적여 은색의 작은 쇠막대기 같은 것을 주었다. 막내가 무엇이냐고 묻자 ‘펜’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펜을 들어 옆에 있던 ‘종이’에 글씨를 썼다. 막내에게 펜과 함께 종이를 건네주었다. 자신의 이름이라고 했다. 막내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 나 이제 지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우주선에 남은 산소가 많지 않아 “



인간은 슬픈 얼굴로 막내에게 이별을 고했다. 막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알고 있었다고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인간은 내일 떠난다고 했다. 미안하다고도 이야기했다. 막내는 그날 밤 잠에 들 수 없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비칠 때부터 인간을 찾아가서 그의 곁에 있었다. 노을이 질 때쯤 인간은 정말 가야겠다고 했고 막내는 죽은 자 들의 별까지 배웅했다. 인간은 산호목걸이를, 막내는 펜을 가지고 둘은 헤어졌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지구는 너무 멀었고 인간은 빨리 죽는다. 막내는 인간에게 입맞췄다. 인어의 키스는 기억을 지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망각을 선물하고 집으로 오는 길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막내의 눈물이 사라지지 않고 반짝여 죽은 자 들의 별을 맴도는 작은 위성들이 되었다.



수많은 밤들이 지났다. 막내의 아흔아홉 번째 생일이 되었다. 인어의 별은 지구보다 크기가 작고 작아 시간이 두배나 빠르다. 그렇지만 인어의 생은 아주 길고 길다. 여전히 막내의 목걸이에는 펜이 걸려있고 그 안에는 인간이 적어준 그의 ‘이름’이 있다. 막내는 죽은 자 들의 별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생일마다 ‘그’를 닮은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망각의 블랙홀을 지날 때였다. 끝이 안 보이는 블랙홀의 한가운데에서 화이트홀이 생기며 새로운 인간이 걸어 나왔다. 막내는 이제 안다. 착한 인간은 죽으면 망각의 블랙홀을 건너 우주로 온다. 새로운 인간은 이상했다. 막내가 열다섯에 어설프게 만들었던 산호목걸이를 하고 막내를 바라보았다. 기억을 잃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눈을 했다. 첫번째 망각은 인간에게 레테의 강이, 두 번째 망각은 인간에게 므네모시네의 강이 되었다. 두 번의 망각을 겪은 인간이 막내를 보고 웃었다. 잊을 수 없는 근사한 그 미소였다. 막내는 목걸이에서 얼룩진 종이를 꺼냈다. 인간에게 너의 이름이 맞냐고 물었다. 인간이 말했다.



“이건 네 이름이야. 내가 사랑이라고 써놓았거든”


죽은 자 들의 별을 맴돌던 막내의 눈물로 만들어진 작은 위성들이 둘에게 다가와 주위를 빙빙 돌았다. 아주 밝게 오랫동안 빛을 내며 그 둘을 맴돌아 아마 언젠가 지구에서도 그 별을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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