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개구리의 울음소리
20대 초중반이었던 것 같다. 일을 하고는 있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는 기분이었고 지금보단 열정과 아이디어가 미숙하고 따끈따끈했던 시절이었다. 한참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것이 흥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롱런하고 있는 쇼핑몰들이 자리잡기 시작할 시절이었다. 당시 항상 만나는 친구들과 익숙한 카페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인터넷 쇼핑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었다. 평소 옷과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몇 달 동안 혼자 머릿속에서 구상을 해보다가 입 밖으로 처음 말을 꺼냈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친구들이 응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뷰티와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반응은 의외였다. 내 말을 들은 친구 한 명이 바로 맞받아 쳤다.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진짜 어려워
아무나라는 말로 운을 떼더니 이어서 말들을 쏟아냈다. 스무 살 때였나 그 친구가 쇼핑몰을 하려고 잠시 준비를 하다가 말았었는데 왜 말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쇼핑몰 이름과 메인 페이지 구상, 외에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가 관뒀었다.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어렵다느니 어떻다느니 이야기를 하고는 새침하게 말을 마쳤고 다른 친구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못했으니 너도 못할 거라는 말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해졌고 그 친구에게 혼난 꼴이 된 나는 일부러 웃으며 다른 친구에게 높은 목소리로 “ 나 아무나야?” 라고 묻고 입술을 내밀었다. 평소 친구들 앞에서 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그 자리를 웃으며 끝내고 싶었다.
소신이 소나무 저리 가라인 나지만 지인들의 말에는 갈대처럼 흔들리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은 후 ‘ 역시 어렵겠지?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라고 단정 짓고 몇 달 동안 파생되었던 아이디어의 가지들을 잘라버렸다. 그때쯤엔 뭘 그렇게 하고 싶어 했는지 곧 다른 꿈을 또 꾸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활동하고 싶기도 했고 더 배우고 싶은 공부가 있어 해외 관련 학교들을 찾아보았었다. 몇 날 며칠 그곳에 매달려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주류의 공부가 아니어서 주변엔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학교 홈페이지를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결정적인 문제는 자본과 언어이기는 했지만 결국 나를 흔들리게 한건 또 다른 개구리의 참견이었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분에게 그 학교를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자신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거기 다녀왔다는데 별거 없다더라 돈만 버리고 고생만 했다더라 하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
주변 친구들에게 고민을 나눠봐도 거기 나와서 뭐할 거냐 라는 뉘앙스의 답변이 대부분이었고 자금 때문에 집에는 말할 수도 없었다. 반년 가까이를 끙끙 앓다가 사기꾼을 만나 동업을 시작했고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고 그 후에는 빚을 갚는대에만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다. 검고 검었던 암흑기가 지나고 한숨 돌릴 때쯤까지도 그때 나에게 쓴소리를 했던 사람들과 연락이 닿았다. 그 시간 동안 SNS 시장이 말도 못 하게 커져 알고 싶지 않은 지인들의 근황까지 전부 알게 되었는데 그들 중 뭔가를 이뤘다던가 큰 성공을 거뒀던가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친구라고 불렀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의 정보를 묻는 것도 사는 형태도 여전했다. 서른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고 깨달아 가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믿었었는지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고 조언을 가장한 잘난 척을 하고 싶었던 것뿐인 사람들의 말이었는데 그 말 한마디들에 나는 너무도 흔들렸다.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던 것도 한몫했다.
누군가의 삶이 더 나은지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들의 생각이 나보다 더 넓지도 깊지도 않았던 건 알게 되었다. 이젠 동네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아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그들을 보며 그제야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아직도 그때 하지 못한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또 꿈꾸는 것은 오지 않을 찬란한 미래 따위를 염원하며 시간낭비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십 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내가 나의 스무 살을 비웃듯 나의 서른을 비웃는 마흔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나를 다독인다.
내가 겁내던 세상은 생각보다 작았고 날 무시했던 사람들은 보기보다 무지했다. 어렸던 나의 경솔과 건방짐은 잘 알았고 내 한계와 가능성도 깨어지고 부서지며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 겁이라도 없어진 건지 고작 일 몇 번 실패했다고 나의 가치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는 뻔뻔한 깨달음이 어느 날 나의 우물 입구에 찾아와 나를 불렀다. 그 부름을 듣고 용기를 쥐어짜 조심스레 우물의 입구를 향해 올라가 보았다. 아득하기만 했던 입구는 출구가 되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돌담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니 경치가 기가 막혔다. 넓고 넓은 세상이 찬란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든 쉴 수 있는 우물은 어디에도 있었다. 다른 개구리들은 저 아래에서 또다시 울어댄다. 네가 여길 떠나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라죽고 말 것이라고. 이번엔 뒤도 보지 않고 세상을 향해 점프한다. 죽어도 더 넓은 세상에서 죽겠다 말하며 더 넓고 깊은 새로운 우물을 찾아 도약한다. 다른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는 멀어지고 이젠 자유로운 바람의 소리가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