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다루는 4부 과학혁명에는 이런 언급이 있다. '과학혁명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에 있다' 이 단순한 문장이 과학혁명을 관통한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면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다.
대전 출신인 나는 일찍이 서울에 올라 혼자 살게 되었다. 출신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터를 잡는 행위엔 꽤나 많은 경험이 농축되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수렵 채집인의 삶을 간접 경험해 볼 기회가 엄청난 경험이다.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표현한다. 수렵 채집을 하며 여유롭게 살던 인류가 상당수 많은 시간을 농업에 빼앗긴 것을 보며 현대 인류가 직장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 사는 과정까지 빗대 아직 그것이 이어져 왔음을 표현했다. 농업을 수행하며 고된 하루에 눈물 흘리던 고대 사람들은 다시 수렵 채집인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렵채집의 세상은 세월이 많이 흘러 아예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천히 시간이 흘러 세상이 이미 변했기 때문에 이전 삶에 대한 공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아주 막연하다.
나는 인간의 숙명을 태양에너지 저장이라고 얘기하고 다닌다. 모든 재산은 태양에너지에서 온다.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를 곡식에 저장하고 곡식은 재산이 되었으며 훨씬 간편하게 저장하는 수단인 화폐까지 이어져왔다. 이런 에너지 관점에서 봤을 때 농업혁명은 사기 그 자체다. 수렵채집 시절엔 모든 생명체가 자기가 행동한 만큼(시간을 쓴 만큼) 에너지를 얻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농업혁명 이후 유일하게 인간만이 시간을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소수의 엘리트를 위해 대다수 인간은 희생되는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다수가 모은 태양에너지를 특정 우월한 인간에게 몰아주는 구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자유를 강조한다. 내가 그 에너지를 독차지할 필요는 없어도 내가 시간을 쓴 만큼보다는 태양에너지를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의 직장인들은 시간을 사용한 만큼 에너지를 얻고 있지 않다. 반드시 그 에너지 중 대다수는 사회의 소수에게 돌아간다. 그것도 자동으로 말이다.
이러한 자유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집이든 회사든 간에 농업에서 탈출하여 수렵채집하는 삶을 견뎌봐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밭을 버리기 위해선 최소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출가'한다면 그 지점은 가히 그의 인생에 혁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