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감을 내려놓자
최근에 양자역학에 빠지면서 과학책을 주로 읽는 중이다. 예전에 배웠었던 것들을 마주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그렇게 어렵고 짜증 났었던 거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과학이 그저 신기하고 재밌다. 뭐가 다를까? 지금은 이해가 안 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시험을 앞두고 교재라는 책을 볼 때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다. 어떻게든 붙들고 늘어져서 이해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책을 많이 읽은 이후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나는 학창 시절 반드시 손으로 써야만 내용이 외워졌다. 내용을 외우기 위해 날린 종이만 해도 몇 백장이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글을 읽기만 했을 뿐인데, 내용이 술술 입에서 뱉어진다. 그렇게 빽빽이를 해도 잘 안 외워졌던 것들인데, 왜 지금은 읽기만 해도 내용이 외워지는 걸까?
책, 정리하는 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뇌에는 기억을 담당하는 곳이 있는데, 이 기능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선 기억을 외주화 해야 한다고 한다. 즉, 메모를 하면 뇌가 안심하고 다른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모를 하지 않으면 계속 그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느라 오히려 뇌 능력이 떨어진다.
책 읽는 게 습관이 된 후, 나에게는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더 이상 시간의 굴레에 갇히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해가 안 되어도 나중에 다시 읽으면 되기 때문에, 뇌는 더 이상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뇌의 기능이 최대로 활성화된 것이다.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책을 읽다가 내용이 이해가 안 되어 한 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는 사람들이 있다. 학창 시절, 반드시 이해가 되어야만 넘어가는 버릇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책을 읽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좋은 책이 있다면, 저자는 그 책을 쓰기 위해 평생을 바쳤을 것이다. 몇 년을 고민하고 쓴 책인데, 어떻게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다. 지금 이해를 못 해도 책 후반부에 가서 다시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라면 다시 읽었을 때 이해할 수도 있다. 책을 읽으려면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