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한 인종차별 이야기
아일랜드는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이지만, 쉥겐 조약을 맺은 나라는 아니다.
쉥겐 조약이 맺어져 있을 경우, 이동이 자유롭다.
그래서 브뤼셀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른 쉥겐 국가들로 여행을 갈 때에는 서울-제주 여행과 마찬가지로 탑승권과 신분증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 쉥겐국가가 아닌 아일랜드는 좀 달랐기에, 우리는 유럽 거주 신분증이 아닌 여권을 준비했고, 대한민국은 아일랜드에 단기간 무비자 여행이 가능한 국가임을 조사하고 공항에 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체크인한 탑승권을 찍고 들어가 출국 심사를 받고, 게이트 앞에서 보딩을 기다렸다.
곧 on boarding 싸인이 떴고,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줄을 섰다.
차례가 되어 여권을 보여줬더니 갑자기 승무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비자가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비자가 필요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승무원은 갑자기 모니터에 Democratic of Korea를 찾아보며, 아일랜드는 다른 나라와는 좀 다르니 기다리라고 했다.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를 북한과 착각한 자막이 있어 한창 난리가 났었는데, 이들의 무지는 우리를 또 불쾌하게 했다.
혹시 여권이 빨간색이라 북한이라 오해한 걸까? (외교관여권은 현재 빨간색이다)
무튼 그렇게 한참을 서있게 하고, 다른 곳에 전화를 하며 알아보더니 “오케이!” 하고 우리를 비행기에 태웠다.
수많은 유럽 사람 가운데 우리만 한참을 세워두고 비행기에 탑승시키지 않아 조금 불쾌했다. 하지만 유럽의 저가 항공인 라이언에어에서 워낙 아시안을 보기 힘드니 아시안 국가들의 무비자 여행 국가 목록을 모두 기억할 수 없고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아일랜드 여행을 마치고 마요르카로 향하기 위해 다시 아일랜드(더블린) 공항에 갔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 기다렸다.
on boarding 싸인이 들어와 줄을 섰다. 여권을 보여주고 타려고 하는데 승무원이 또 우리를 멈춰 서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가방에 대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라이언에어는 저가 항공이라 좌석 아래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손가방이 아닌 기내용 가방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알고 있었고, 이미 기내용 가방에 대한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의 기내용 가방이 크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이 가방을 가지고 불과 몇 시간 전에 비행기를 타서 더블린에 왔고, 기내에 문제없이 실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기네(라이언에어) 규정이 있다며 게이트 앞에 있는 박스에 우리의 기내용 가방을 넣어보라고 했다.
우리의 가방은 라이언에어가 규정한 박스 크기보다 바퀴가 튀어나와 쏙 들어가지 않았다.
바퀴가 들어가지 않아 균형이 맞지 않았고, 가방이 넘어지니 너의 가방은 규정보다 크다면서 그 자리에서 가방 1개 당 75유로를 당장 지불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방당 75유로씩, 150유로, 약 28만 원을 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 가방에 오렌지색 태그를 했다. 문제가 있는 가방 마냥 딱지가 붙었고, 들어가서 우리의 가방을 비행기 탑승구 앞에 노란색 조끼를 입은 직원에게 주라고 했다.
그런데 들어가니 노란 조끼를 입은 직원은 없었고, 우리는 아일랜드행 비행기를 탔을 때처럼 특별한 조치 없이 기내에 가방을 실었다.
기분이 나빴다.
서로 이러쿵저러쿵 실랑이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며 보고 있는 중에, 박스 안에 가방을 넣었다 뺐다.
결국 무슨 죄인처럼 붙은 오렌지색 가방 태크까지.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보다 큰 가방이 종종 보였고, 비행기에 탄 사람 중 우리 외에는 다들 백인의 유러피안이었다.
인종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기준으로 가방 크기를 검사하는 걸까?
왜 우리는 그들과 똑같이 가방을 비행기에 싣고, 28만 원을 더 내야 했던 걸까?
기분이 나빠서 구글 리뷰를 찾아보니 모두 터키쉬, 아시안 등 그들과 조금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나 같은 경험에 분노하며 쓴 리뷰가 많았다.
나는 억울함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씩씩대며, 마요르카로 향했다.
브뤼셀은 특이하게도 파리에 비해서 굉장히 유색인종이 적다.
내가 다니고 있는 프랑스어 학원에서도 총 15명 중, 나를 포함 2-3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 유러피안이다.
내 이름의 발음이 유럽사람들에게 어렵다고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국적을 외우는 게 어려운 일일까?
이미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고, 충분히 학생들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은 얼마 전 나에게 “베트남 사람이지?”라고 물어보는 실수를 했다.
그땐 뭐 처음이니깐 내가 프랑스 사람인지, 벨기에 사람인지, 핀란드 사람인지, 유럽 사람들의 국적을 외모로 구분할 수 없는 거처럼, 그녀도 그런 거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얼마 전 대중교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수업 중, 그녀는 또 한 번 내게 “베트남에는 오토바이가 많지? “ 라며 물어봤다.
“나는 베트남 사람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선생님)는, 그럼 “한국은 뭐가 달라?”라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한국엔 차가 더 많다 “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럼 베트남이랑 한국이 뭐가(왜?) 달라?”라고 다시 또 물었다.
나는 두 나라가 다름을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한국은 길이 더 넓고…”이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는 알바니아 아저씨가 끼어들어 “한국이랑 베트남은 정말 달라 “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지도 나는 내가 기분이 나쁜지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뭔가 이상하게 기분이 스멀스멀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를 베트남인으로 처음도 아니고, 두 번이나 착각한 것.
베트남이랑 한국이 뭐가 다르냐고? 그걸 두 번씩이나? 물어본다고???
‘왜 다르냐고 물어본 거지????’라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고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느꼈다.
아시아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에게 그냥 길에 지나가는 행인이 그런 것도 아니고,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럴 수 있는 것일까?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을 만나는 언어 선생님이 이럴 수 있는 것인가???
너무너무 화가 났다.
아시아에 대해 무지해서 그런 걸까? 아시안을 무시한 걸까?
무지하다 하더라도 그건 자신이 모르는 것이니, ‘미안하지만 뭐가 다른지 설명해 줄래?’라고 말하던지 해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점점 분개했다.
나는 기분 나쁨에 대해 아무 표현도 못한 채, 심지어 그 순간 내가 기분 나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당황하며 두 나라가 다름을 설명하려 했던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며칠 동안 부글부글 화남을 그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학원에 신고할까… 고민만 하다 다음번 또 그녀가 날 베트남인으로 착각한다면 그때는 정말
그 자리에서 바로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일단락했다.
유럽에 지금까지 2년 반 정도를 살면서, 인종차별을 당해서 억울한 일이 없었는데, 요새 한 1-2주 동안 마치 폭격기 마냥 저렇게 인종차별 공격을 하니, 너덜너덜해졌다.
특히 선생님에게 당한 인종차별은 벨기에라는 나라까지 미워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계속 만나야 하는 사람. 거기다 선생님인데…라는 생각에 아직도 수업시간에 그녀의 얼굴을 보면 미운 마음이 올라온다. 어떻게 해야 인종차별이 사라질까?
그들이 나에게 한 것은 무지로 인한 것일까? 무시로 인한 것일까?
내가 이렇게 해외에 나와 살기 전,
아니 이렇게 인종 차별을 당하기 전까지는 왜 다른 나라에 대해 알아야 하는지, 왜 배워야 하는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당하고 보니 무지에서 오는 실수, 무지해서 무시하게 될 수 있는 실수,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다른 나라에 꼭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태도가, 나에게 집중한다는 건데 뭐가 나빠?
괜히 남에게 오지랖 부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주변에 대한 적당한 관심은 서로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란 걸 배우게 되었다.
특히나 나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란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를 기분 나쁘게 한 그것이 의도한 것인지 의도치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