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콤플렉스

관계 속 희생과 상처

by YUN

그런 관계가 있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화가 싹틀수록

한 층 더 돈독해지는 게 아닌,

어딘가 한 발짝 멀어져만 가는 그런 관계.


그러나 상황을 되짚어보면 딱히 잘못한 이는 없다.

그저 서로의 성향이 너무 달라 자꾸만 엇나갔고

또 엇나간 만큼 아프게 부딪혔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너무 달랐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학창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함께한 정 때문이었을까. 너무 다른 성향과 잦은 부딪힘에도 우린 서로를 매정히 끊어내지 못했다.


학창 시절, 급식시간에 함께 밥을 먹을 때면 그 친구는 빠르게 밥을 먹고 혼자 조용히 일어나 먼저 교실로 돌아가곤 했다.


"야, 지수 교실로 간 것 같은데?"

"어? 급식판 버리고 다시 올 줄 알았는데, 진짜 갔어? “


왁자지껄 떠들며 밥을 먹는 걸 좋아했던

나와 친구들은 모두 적잖이 당황했다.


남자애들의 경우, 거의 밥을 마시다시피 해치운 후

운동장을 차지하러 먼저 뛰어가는 광경이 익숙했지만 여자애가 친구들과 밥을 먹다 홀로 일어나는 게 당시엔 좀 낯설었다.


교실로 돌아와 나는 물었다.


"지수야, 아까 왜 먼저 간 거야?"


"어? 나 먼저 다 먹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친구의 표정과 대답에 처음엔 살짝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나는 다시 장난스레 말했다.


"보통 같이 먹으면 기다렸다가 같이 가지 않냐고ㅋㅋ 너도 특이하다 진짜"


"아... 나 밥 빨리 먹는 편이라

괜히 너희 신경 쓰일까 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


"어? 우리 진짜 괜찮은데? 기다렸다 같이 가자!"


"아냐, 급식실 붐비는데 자리 차지하고 있기도 뭐하고... 신경 쓰지 말고 너희끼리 천천히 먹고 나와. 나 진짜 괜찮아! “


'기다렸다가 얘기도 하고

같이 매점도 들렀다 가면 좋을 텐데.'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거절에는 늘 타인의 입장이 껴 있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의견을 묻는 말에

친구의 답은 한결같았다.


"상관없어, 너 편할 대로 해."


여행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일정, 맛집 리스트, 숙소 예약 대부분이 내 몫이었다. 친구는 매번 의견이 거의 없었지만 딱히 불평도 없었기에 나 역시 큰 불만이 있진 않았다.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친구가 순순히 따라오는 패턴이 반복됐다. 막힘없이 계획 세우는 것이 수월하기도 하였지만 가끔은 지나친 순응이 무관심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짚고 넘어가기엔 애매한 엇나감들의 반복.


어딘가 묘하게 불편하지만

또 불쾌까지는 아닌,


그런 사소한 감정들이 점점 쌓여갔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것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고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감정을 안고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시절 아침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야 했던 날이었다.


"헉, 야 우리 지각할 것 같은데. 둘이니까 택시 탈까?"

마음이 급했던 나는 다급히 택시를 타자고 제안했다.


"지금 택시 타봤자 지각일 텐데. 이 수업 하나 때문에 택시 타긴 좀..."


"그래도 어떡해, 준비하고 나왔는데."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는 친구였지만

이번만큼은 선뜻 물러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작은 실랑이가 계속 됐고

보다 못한 친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그냥 생결(생리결석) 쓰자. 듣는 인원 많이 없어서출석점수 꽤 중요하잖아. 너도 그게 나을걸,

이 수업 성적 잘 받아야 한다며. “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순간, 나를 들먹이며 본인 의사를 내세우는 것에 반발심이 들어서였을까?

난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야, 너같이 악용하는 애들 때문에 진짜 필요할 때

쓰는 애들이 욕먹는 거야."


나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날이 선 말투였다.

급히 후회가 들던 찰나,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

잠시 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럼 너 혼자 가던가.”


그 말에 다시 울컥 기분이 상한 나는,

역시 지지 않고 내뱉었다.


"뭐? 사실 오늘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잖아. 지각할 때마다 제대로 사과 한마디 없고 건성으로 미안 한마디 하는 게 다지? 오늘도 봐. 제시간에 왔으면 여유 있게 버스 탔을 텐데."


봇물 터지듯 한 번 터진 입은 담아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사실 지각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관계의 균열은 고작 그 일 하나로 시작된 게 아니다.

건드리기 애매한 서운함과

작디작은 불만들이 차곡차곡 쌓여간 결과였다.



친구는 짧은 한숨을 내뱉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날 밤 난 그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린 전화로 오늘 아침 일부터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가 말했다.


“지금까지 네가 하자는 대로 다 맞춰줬잖아.

네가 그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뭐? 뭘 맞춰줬다는 거야?”


어안이 벙벙한 나는 진심으로 놀라 물었다.


“네가 지금까지 의견 제시하는 거, 대부분 네 뜻대로 하게 해 줬잖아. 사실 괜찮지 않은데 그냥 너한테 맞춘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네 의견도 매번 물어봤는데."


“네가 그걸 원하는 게 너무 보였으니까."


"솔직히 말했으면 다른 방안으로 조율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땐 왜 솔직히 말 안 한 건데? 왜 이제 와서 이래?”


그다음 이어진 친구의 말에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널 배려한 거지."



... 배려? 배려라니.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했다.


배려는 '받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상황에 어울리는 건 배려를 '당했다'였다.

난 그저 속절없이 배려를 당했다.

그것도 언제 당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렇게 일방적인 배려가 있나.


‘왜 자기 의견을 똑바로 말을 안 하지?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해 놓고 그게 배려라고?

이제 와서 나만 나쁜 사람이야?

우리가 그런 말도 못 할 사이야?’


나는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을 최선을 다해 삼켜냈다. 그것들이 말로써 던져졌을 때 이어질 날 선 대화와 그 결말이 무서웠다. 더 악화되기 전 관계를 돌이키고 싶었던 나는 차오르는 마음을 꾹 누르고 말했다.


"알겠어... 미안해."


사과로 일단락된 대화.

다시 서운한 걸 풀고 예전처럼 지내자는 애석한 말들로 통화는 끝이 났고 마지못해 건넨 사과는 끝내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밤 통화를 그렇게 마무리해선 안 됐다는 후회가 든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다시 끼우면 되지만 대충 무마시킨 대화의 끝매듭은 이후 잘못된 부분을 짚고 넘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미 끝난 얘기를 다시 끄집어오는 건

생각보다 더 구차하고 번거로운 일이니까.


그 이후 더 이상 친구를 만나도 즐겁지 않았고 거슬리는 것들만 눈에 보였다.


그렇게 우리 사이는 아슬아슬 줄타기를 이어갔다. 마치 깨진 조각들을 억지로 붙여 간신히 형태만 유지한 그릇처럼,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반복되는 감정 소모로 지쳐있던 나는 서서히 연락을 끊었고 이후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당연하게도 우린 멀어졌다.

우스웠다. 겨우 이런 관계였다니.




그 이후에도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배려... 배려라...


나를 위했다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 친구만의 배려.

오히려 나를 너무 혼란스럽게 했던 그 의미 없던 배려.


곰곰이 생각하면 친구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래... 그 애 성격에

상대에게 맞춰줌으로써 불편함을 피하고 싶었겠지.

원래 거절이나 싫은 소리 잘 못하기도 하고.'


의견에 반대함으로써 대립되는 상황의 불편함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수 있는 불편함


그 모든 불편함을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그 친구가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이자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건


그 배려를 받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

배려는 받는 이 없이 아무도 몰라줄 희생이 되어 변질되었다는 것.

그렇게 배려로 포장된 희생은 돌고 돌아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


이내 나는 다시 생각했다.


'... 정말 배려였을까?'


문득 내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배려라는 말을 남용하던,

'배려하고 맞춰주는 나'에 심취한 채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 했었던 부끄러운 과거가 말이다.


상대는 배려를 받아놓고 고마운 줄도 모르는

나쁜 사람이었고 나는 배려하고도 좋은 소리 한 번 못 듣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말 어이없게도

나 역시 그 당시엔 그게 배려인 줄 알았다.


거울치료를 당하고 별로였던 과거가 스쳐간 동시에

내 머릿속에 단순한 진리가 떠올랐다.


배려는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위해'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


배려가 나를 위해 탄생하는 순간 그 존재 의미는 변질된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무기로서 휘두르며 비겁해진다. 그것도 꽤나 당당하게. ‘너를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나의 모든 행위에 면죄부를 씌우면서.


하지만 정말 그것이 상대를 위한 거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의 부정적 감정을 상대를 위해서였다는 말로

희석시켜 모든 상황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시키고있진 않은지.


내가 주장하는 배려가 정말 배려인지,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픈 회피인지,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지.


어쩌면 배려조차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사용하고 있진 않은지.



하여 나 역시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며

습관적으로 되새기려 한다.


...



'아까 그 말, 그 행동 온전히 상대를 위한 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