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사람들은 대개 if를 좋아한다.
오지 않은 그날을 고대하며
찾아온 오늘을 애써 돌보지 않는다.
한때 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당장 일을 벌이곤 했다.
돈, 여유, 안정감이 생긴
오지 않은 그 언젠가를 인내하고 기다릴 만큼
의지가 그리 좋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추진력이 좋았고
돌려 말하면 참을성이 없었다.
호기심과 흥미에는 늘 유통기한이 있었기에
꽂히는 게 있다면 주저 없이 도전했다.
욕구가 태어나 내게 던져지면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이 지어졌다.
수십 개의 공모전, 유튜브, 웹디자인, 인스타
드럼, 블로그, 책 출간, 작사... 등
내 안에서 태어난 작은 꿈들은
관심을 먹고 자랐고 행동으로 빚어졌다.
무엇을 원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일단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하지만 그럴듯한 결과물은 없다는
사실이 나를 공허하게 만들곤 했다.
'왜 이렇게 실속이 없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를 짓눌렀다.
하루는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공부도 잘했고 어릴 적부터 목표가 확실한 친구였다.
그 친구가 부러웠다.
"너는 어릴 적부터 꿈이 확고하잖아. 그게 정말 부러워. 지금도 그 꿈에 계속 다가가고 있고."
친구는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네가 부러운데? 나는 내가 잘하는 게 이것뿐이라 그래. 오히려 너는 이것저것 다 도전해 보면서 부딪혀 보잖아. “
그리고 이내 덧붙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네가 제일 후회 없이 사는 것 같아.
나도 용기만 있다면 너처럼 살고 싶어."
우리는 서로 멋쩍은 듯 웃었다.
원하는 게 확고했던 친구는
다방면에 경험을 쌓는 나를,
여기저기 얕게 발을 디뎌봤던 나는
한 분야에 깊이 있던 그 친구를,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부러워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릴 적 난
이렇게 사는 걸 소망했다.
누구의 간섭 없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그것을 즐기면서
그냥 그렇게만 살아도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은 언젠가 기다렸던 것이
막상 찾아와도 눈치채지 못한다던데
난 언젠가부터 중심을 잃은 채
오늘을 살아내고 있지 못했다.
생각에 잠긴 난 문득 대학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침 1교시,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당시 나는 겨우 지각을 면한 채 밀려오는 피로를 내쫓고 있었다.
늘 열정이 넘치던 교수님은 언제나처럼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수업의 열기를 더해나가셨다.
그러나 그 열정이 무색하게 축 처져있는 학생들의 얼굴, 절간 같은 수업 분위기가 강의실을 적적하게 감돌았다.
오늘따라 유독 심하다고 느껴질 때쯤,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졌다.
평소 수업에만 열중하시던 분이 뜬금없이 왜 이런 질문을 하나, 의아함이 듦과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교수님은 명문대에 나오셨고,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는 위치잖아. 아무리 젊음이 좋다지만 나라면 절대 안 바꾸지.‘
하지만 예상과 달리 교수님은 의외의 답을 내놓으셨다.
"전 정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여러분의 나이와 바꿀 거예요. 지금 가진 모든 것을 잃은, 무엇도 준비되지 않은 두렵고 막연한 젊음으로요."
멍하니 교수님을 바라봤다.
존경하는 멋진 사람이
내가 가진 젊음과 청춘을 탐한다는 것.
그 답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마음을 읽은 듯 교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조금 감이 오나요?
당시 교수님은 말씀은 삶에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던 내게 큰 울림을 줬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것을 잊고 산다는 말,
비단 젊음에만 한정된 말은 아닐 것이다.
젊음이든, 내 곁의 사람이든, 일상의 순간이든
언제나 소중함은 한때고 무지는 긴 법이니까.
우린 매일 무언가를 기대하며, 욕망한다.
뭔가에 쫓기듯 살고
또 다른 뭔가를 쫓으며 살아간다.
당연하다는 듯 내일을 기대하고
평생을 살 것처럼 오늘을 대한다.
하지만 훗날 오래도록 기억될 것은
성취를 거머쥔 순간이 아닌
그것을 향해 달려가던 열정과 그 과정이지 않을까?
내가 애정 어리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 순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나 자신
그리고 내게 주어진 오늘이 아닐까?
어쩌면 내게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은
모든 걸 이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그 언젠가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미래로 달려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
오늘 주어진 작은 기쁨을
정성껏 품 속으로 주워 담는 것.
우연은 순간이고 인연은 노력이란 말이 있다.
결국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치 있는 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나는 이 사실을 가슴에 매일 새겨 넣는다.
방심하는 순간 잊히기 때문이다.
부디
오늘을 확고히 누리며 살아가기를
무지에 더는 익숙해지지 말기를.
여전히 아쉬운 게 많은 이 밤
나는 또 간절히 바래본다.
다음은 영화 <소울>의 한 장면이다.
뮤지션의 꿈을 이루기 직전인
주인공의 낯빛이 좋지 않다.
여자는 그의 얼굴을 보고 묻는다.
“뭐가 문제야?”
남자가 공허한 표정으로 답한다.
“평생 오늘 같은 날을 기다려 왔었거든요.
근데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여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네. “
한 젊은 물고기가 늙은 물고기에게 물었지.
“바다라 부르는 걸 찾고 있어요.”
늙은 물고기가 말했어.
“바다? 네가 지금 있는 곳이 바다야.”
그러자 젊은 물고기가 답했지.
“여기 가요? 여긴 물이잖아요.
제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요! “
...
당신은 지금 물 속인가 바다인가?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순전히 스스로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