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사업처럼 커플상담을 받았다. 최근 다툼, 갈등이 있을 때마다 커플상담을 마음에 떠올리곤 했다. 파트너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자곤 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어영부영 미루다가 그는 나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우리 사이에서 헤어지자는 말은 갈등의 언어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말하는 쪽은 그쪽, 듣는 쪽은 이쪽. 그러나 왠지 이번만큼은 '헤어짐'이 진심 같았다. 정말 헤어질 것 같았다. 내 마음 속에도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니고 있던 듯하다.
늘 그랬듯 내가 잡았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관계 하나 끝내지 못하는 나. 상대방의 잘못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 나를 아껴주지 않는 나. 헤어짐이 두려운 나. 모든 것이 다 나 같았고, 그런 내가 가엾기도 한심하기도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솔직한 것. 자존심을 버리고 내가 잡았다. 아직 내가 많이 좋아한다고.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네가 좋다고. 이렇게 좋은데 왜 헤어져야 하냐고. 그렇게 붙잡았고 그는 붙잡혔다.
커플상담을 받기로 했다. 숙원사업처럼,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전 질문지에 '지속 가능한 관계'를 고민한다고 그가 썼다. '같은 문제에서 늘 넘어지고 있습니다'라고 내가 적었다. 반복되는 문제를 상대의 선한 의지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 같았다. 정말 지속 가능한 관계를 모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게 안 된다면, 건강한 이별을 하게 되는 것도 커플상담의 의의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보단 관계 개선이 주된 목적이긴 했다.
개인상담을 4년째 받고 있는 나로선, 상담이란 게 짧은 시간에 큰 효과를 기대하면 실망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커플상담은 좀 다르지 않나 생각했다.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의 가시적인(?) 문제를 가지고서 진행하는 것이라는 점, 어떤 커플의 존폐(?)가 당장 결정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나야 상담이 생소하지 않지만 파트너는 생소할 수 있다고 봤고, 어쩌면 한번의 경험이 앞으로의 상담에 대한 인상을 좌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상담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면 앞으로 상담은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됐든 관계가 좋은 커플은 상담이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편한 마음으로 상담을 해보자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통제하지 말아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의외로(아닌가 예상했던대로인가) 80분은 빨리 갔다. 상담선생님의 질문이 특별하진 않았지만, 어느 때보다 충분히 말할 수 있었고 입 닫고 들을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할 때면 늘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내 말을 잘 듣고 있는 것 같지 않고, 자꾸 말들이 튕겨 나온다는 느낌이었는데, 누군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오히려 파트너 또한 내 말에 더 귀기울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나도 그렇게 되더라. 평소에 내가 "답답해"라고 말하면 그는 "나도 답답해"라고 말하곤 했고, 나는 그 대화마저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답답해"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그의 "답답해"에 귀기울여보는 시간이었다. 맞아, 그도 많이 답답했을 텐데. 내 답답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의 답답함을 긍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에겐 그런 여유가 없었다. 마지막, 상담선생님은 우리에게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목표 하나씩 말해보자고 했다. 나는 '상대방이 우회해서 전달하는 의사방식을 꼬아듣지 않고, 배려는 배려로 받겠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많이 말하고, 감정을 충분히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늘 지킬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 앞에서 서로에게 약속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나는 적어도 네 번은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 한 달에 한 번. 우리 관계를 체크한다는 느낌으로. 9월에 받았으니 10월, 11월, 12월까지 한번씩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내가 돈 낼 테니까 받자! 말하고 싶었으나 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상담은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니까. 일단 파트너는 한번 더 받아보자고 말했다. 만족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도중 걸려온 그의 전화. 오늘 상담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전했다.
1 - 돈이 조금 아깝다. 우리가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이야기할 수 있는 말들일 텐데 돈을 내고 하나? 생각했다.
2 - 그러나 그럴 순 없겠구나. 상담자(공정한 제3자)가 앞에 있으니까 우리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듯했다.
3 - 그냥 '말'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겠구나
1, 2, 3 상담에 대한 그의 감상을 듣고 마음이 좋았다. 한번의 상담으로 꽤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았다.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기에 나는 커플상담을 지속해보고 싶다. 좌절하겠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 "내가 좋아하니까 너를 만날 거야!" 외에 또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아주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