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명리 코드의 비밀

1장. 『아무튼, 술』에 담긴 우리들의 페르소나

by 덕원

들어가는 글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을 읽는 밤이면,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 끝에서 얼큰한 짬뽕 국물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왁자지껄한 술자리의 소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고, 잊고 있던 옛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이 책이 가진 마력은 단순히 ‘술’이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책의 모든 문장이 우리의 희로애락이 담긴 구체적인 어느 날 밤의 풍경을 정확히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명리학은 한 사람의 마음 안에 열 가지의 서로 다른 성향, 즉 '십성(十星)'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열 가지 마음은 마치 칵테일을 만드는 재료처럼, 어떤 것이 더 많이 들어가고 어떤 것들이 서로 섞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고유한 '삶의 맛'을 결정한다.


오늘은 『아무튼, 술』이라는 맛있는 텍스트를 안주 삼아,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열 가지 마음, 즉 십성의 페르소나들을 한 잔씩 음미해보고자 한다. 아마 당신은 이 술잔들 속에서 유독 익숙한 당신의 얼굴을 결국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술잔에는 술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그날의 공기, 함께한 사람, 차마 뱉지 못한 마음까지 담긴다.



첫 번째 잔 : 상관(傷官)의 술, "그냥! 일단 마셔!"


“술을 마시는 데는 다 나름의 명분과 이유가 있지만 사실 ‘그냥’이라는 명분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아무튼, 술』의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페르소나는 단연코 상관(傷官)*이다. 상관은 기존의 규칙(官)을 깨고(傷)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즐기려는 자유로운 영혼, 즉 예술가적 마인드이다. ‘술을 마셔야만 하는 이유’ 따위의 정해진 관습을 가볍게 무시하고, ‘그냥’이라는 가장 순수한 욕망으로 술잔을 채우는 태도. 이것이 바로 상관의 음주관이다.


내 안의 상관이 깨어나는 밤, 우리는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라는 이성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선택한다. 예측 불가능한 취중 대화와 즉흥적인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술자리, 그곳은 상관의 영혼들이 가장 빛나는 무대다. 당신의 삶에도 그런 '아무튼, 그냥' 마셨던, 그래서 더 완벽했던 밤이 있지 않은가!



가장 완벽한 명분은, 때로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잔 : 식신(食神)의 술, "이 안주엔 이 술이지, 암."


“안주가 부실하면 주흥이 깨진다. ... 우리는 고작 5천 원짜리 안주에도 목숨을 거는 진지한 애주가들이었다.”


식신(食神)은 삶의 기쁨을 오롯이 즐길 줄 아는 미식가의 마음이다. 상관이 '왜?'를 묻는 반항아라면, 식신은 '어떻게?'를 묻는 향유자다. 기왕 마실 거, 가장 맛있고 즐겁게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돼지껍데기에는 소주를, 눅진한 치즈에는 와인을 페어링하며 완벽한 ‘맛의 합’을 찾아내는 집요함. 그것이 식신의 즐거움이다.


내 안의 식신이 발동하면, 우리는 술 그 자체보다 술과 함께하는 ‘경험의 질’에 집중하게 된다. 좋은 사람, 맛있는 음식, 편안한 분위기.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 식신은 비로소 깊은 만족의 콧바람을 내분다. 당신의 휴대폰 사진첩에 유독 술과 안주 사진이 가득하다면, 당신은 당신의 식신을 잘 돌보고 있다는 빼박 증거다.



경험의 질은 디테일에 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의 조화는 그날의 기억을 완성시킨다.



세 번째 잔 : 편재(偏財)의 술, "오늘은 내가 쏜다! 다들 마셔~~"


“나는 술자리에서 돈 계산을 하는 사람이 몹시 싫다. ... 술값은 N분의 1로 나누는 순간 그 흥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편재(偏財)는 나의 즐거움을 사람들과 나누고, 그 관계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통큰 플렉스가 된다. ‘내 공간’, ‘내 사람’이라는 영역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만큼은 아낌없이 베풀며 즐거움을 극대화하려는 욕망.


“오늘은 내가 살게!”라는 말 한마디로 술자리의 모든 시선을 장악하는 짜릿함, 그것이 편재의 행복이다.


내 안의 편재가 목소리를 높이는 날, 우리는 쪼잔한 계산기를 치우고 통 큰 즐거움을 택한다. 술값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이 즐거운 ‘판’에 대한 입장료이자, 관계를 확인하는 징표가 된다. 누군가에게 술 한잔을 사며 마음의 빚을 갚았던 기억, 당신에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술값은 관계의 온도를 재는 가장 따뜻한 화폐일지 모른다.



네 번째 잔 : 정인(正印)의 술, "이 술엔 이야기가 담겨 있어."


“아빠의 소주는 언제나 고된 노동의 끝에, 그러니까 이를테면 아빠의 역사와 함께 있었다.”


정인(正印)은 모든 것에서 의미와 근원을 찾으려는 연구자의 마음이다. 그냥 마시는 법이 없다. 이 술이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이 술과 얽힌 나의 추억은 무엇인지, 그 배경과 서사를 알아야 비로소 술맛이 깊어진다.


아버지의 소주에서 고된 노동의 역사를 읽어내고, 친구와 마시는 맥주 한 잔에서 우리의 빛나던 청춘을 발견하는 시선. 그것이 정인의 시선이다.


내 안의 정인이 깨어나면, 술은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라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과거를 복원하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상상한다. 할머니가 담가주신 매실주 한 잔에 담긴 사랑을 마시는 순간, 우리는 정인의 따뜻한 위로에 취한다.



든 술에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그 이야기와 함께 시간을 마신다.



다섯 번째 잔 : 비견(比肩)의 술, "짠! 우리 끝까지 함께 가는 거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마시는 술. ... 그런 밤이면 우리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비견(比肩)은 동료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라는 연대감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전우의 마음이다. 혼술보다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마실 때 더 큰 힘을 얻는다. 힘든 일을 겪은 친구 곁을 말없이 지키며 함께 잔을 기울여주는 마음,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료와 회포를 푸는 밤. 그곳에서 비견의 영혼은 더없이 충만해진다.


내 안의 비견이 간절해질 때, 우리는 술을 통해 나의 편, 나의 친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너와 나는 같은 편”이라는 무언의 확인. 그 끈끈한 유대감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안주보다 더 든든한 최고의 안주가 된다.


우리는 매일 밤, 이 다섯 가지 마음을 비롯한 열 가지의 마음 사이를 오가며 술잔을 채운다. 어떤 날은 자유로운 상관처럼, 어떤 날은 따뜻한 비견처럼.


『아무튼, 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이 모든 모습이 결국 ‘나’라는 것을 따뜻하게 긍정해준다는 점이다. 규칙을 깨고 싶은 나도, 맛있는 것을 즐기고 싶은 나도,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나도, 의미를 찾고 싶은 나도, 모두 소중한 나 자신이라고.



늘 당신의 잔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나요?



오늘 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잔을 채우고 싶은가? 당신의 그 술잔에 담긴 이야기가, 바로 당신의 삶이 지금까지 써 내려온 가장 진솔한 한 페이지가 아닌가! 지금 당신은 어떤 술잔 속에 담긴 서사로 마음을 적시고 싶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