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화에 새긴 지독한 사랑

이중섭 & 이남덕, 전쟁이 찢어발긴 우주를 선(線)으로 꿰매다

by 덕원

1956년 가을, 서울 적십자병원의 싸늘한 영안실. 핏기가 가신 채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마흔 살의 사내가 쓸쓸히 누워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그 흔한 가족의 울음소리도, 화려한 조화도 없었다. 무연고자 처리 명단에 이름을 올릴 뻔했던 이 고독한 사내의 이름은 이중섭.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천재적이었으나 가장 처절하게 찢겨 나갔던, 이른바 '소의 화가'였다.


역사는 승자의 시선으로 쓰인다고 했던가. 그러나 진정한 역사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면서도 끝내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지켜내려 했던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 속에 깃들어 있다.


오늘 우리는 제국주의와 이데올로기라는 야만의 시대 속에서, 국경을 넘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살점을 깎아냈던 이중섭과 그의 아내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이것은 명리학의 가장 잔혹한 흉살과 텅빈 심연을 뛰어넘은 위대한 승화의 기록이다.


1. 시대의 역마(驛馬), 식민지와 국경을 넘은 사랑


1930년대 후반, 일본의 문화학원. 식민지 조선에서 온 훤칠하고 과묵한 청년 이중섭과, 일본인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가 만났다. 두 사람은 국적과 식민지라는 거대한 장벽을 훌쩍 뛰어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절정에 달했을 때 마사코는 죽음을 무릅쓰고 대한해협을 건너 원산으로 향했다. '이남덕(李南德)'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개명한 그녀는 그렇게 이중섭의 세계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나 명리학의 냉엄한 기운은 이들의 평온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이들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잔혹한 코드는 '역마(驛馬)'였다. 명리학에서 역마는 이동과 변화를 뜻하지만, 이중섭 부부에게 부여된 역마는 낭만적인 유람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라는 외부의 거대한 폭력이 가하는 '강제적 유랑'이었다. 원산에서 부산으로, 다시 제주도의 1.4평짜리 단칸방으로. 그들은 시대를 덮친 역마살에 등 떠밀려 끝없이 피난길을 헤매야 했다.


결국 지독한 가난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두 아이와 아내를 살리기 위해, 1952년 이중섭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가족을 일본의 처가로 떠나보낸다. 생존을 위해 사랑을 분쇄해야만 했던, 시대가 개인에게 가한 참혹한 폭력이었다.


2. 공망(空亡)의 여백, 텅 빈 방을 채운 식신(食神)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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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의 인문명리학입니다.. 저는 30년간 명리학계에 종사해온 베테랑으로서 명리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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