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유 끌로델 & 오귀스트 로댕, 권력에 잡아먹힌 흙과 불의 서사
1943년 프랑스 남부의 몽드베르그 정신병원. 깡마른 일흔아홉의 노파가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30년이다. 무려 30년 동안 그녀는 단 한 줌의 흙도 만지지 못한 채 철창 속에 갇혀 있었다. 장례식에는 가족조차 오지 않았고, 시신은 이름 없는 무연고 묘지에 던져졌다.
이 참혹하고도 쓸쓸한 죽음의 주인공은 까미유 끌로델. 한때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이자, 예술적 성취로 그를 능가할 뻔했던 세기의 천재 조각가다.
이것은 낭만적인 파리의 예술가 로맨스가 아니다. 천재성이 권위라는 괴물에게 어떻게 도륙당하고 착취당했는지를 보여주는 핏빛 스릴러다. 오늘 우리는 명리학과 심리학의 냉철한 메스를 들고, 부서진 조각상의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명리학의 눈으로 볼 때, 까미유에게 로댕은 끔찍할 만큼 거대한 편관(偏官)이었다. 편관은 나를 무자비하게 극(剋)하는 칠살(七殺)이자, 숨통을 짓누르는 권위와 법규를 뜻한다. 1883년, 열아홉 살의 까미유가 마흔세 살의 거장 로댕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운명의 덫은 이미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까미유는 솟구치는 창조적 에너지, 즉 식상(食傷)의 화신이었다. 흙을 빚어 생명을 불어넣는 그녀의 야성적인 재능은 스승인 로댕마저 전율하게 만들었다. 로댕은 그녀를 연인으로 삼았지만, 심리학적으로 그는 철저한 '자기애적 약탈자(Narcissistic Predator)'였다.
그는 까미유의 젊음과 영감, 심지어 그녀의 조각 기술까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로댕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지옥의 문>과 <입맞춤>의 가장 관능적인 손과 발은 까미유의 손끝에서 빚어졌다. 로댕에게 까미유는 동등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피와 살을 내어주는 최고급 부품이자 영감의 제물에 불과했다.
강력한 식상은 발산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로댕이라는 거대한 편관은 까미유의 식상을 적절히 제어한 것이 아니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으깨어버리는 파(破)의 작용을 가했다. 까미유의 위대한 작품들은 '로댕의 아류'로 취급받았고, 그녀의 이름은 거인의 그림자 밑에서 철저히 소거당했다.
까미유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의 천재성(식상)이 권위자(편관)에게 철저히 흡혈당하고(설기, 洩氣)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로댕의 곁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명리학에서 이를 상관견관(傷官見官)이라 한다. 나의 예리한 칼날(상관)로 낡은 권위와 억압(정관/편관)의 심장을 들이받는 격렬한 항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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