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명리 코드의 비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내 안의 모순과 화해하는 법

by 덕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작가를 추모하며...>

이보다 더 솔직하고, 그래서 더 아프게 마음을 찌르는 제목이 또 있을까. 지독한 무기력에 잠식당하면서도, 동시에 혀끝을 자극하는 짜고 매운 떡볶이의 맛을 갈망하는 마음. 이 기이한 조합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과 같다.


나는 백세희 작가의 명조를 몰랐다. 그녀의 책을 통한 백세희 작가에 대한 내 느낌은 그녀의 삶이 水기운을 닮아 있다는 것. 그리고 관살(官殺)의 폐해와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식상(食傷)이라는 애처러운 몸짓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슬픔으로 마음에 저며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일부러 그녀의 생일을 찾아보았다. 죽음이라는 영역은 명리학이 다룰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평소 내 소신이다. 그러나 그녀가 떠나버린 세상 속에 존재하는 내 마음이 그녀의 명조를 살펴보게 만들었다. 백세희 작가의 명조에는 수기운 그리고 관살과 식상의 기운이 작용하고 있었음에 난 적잖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운명이라는 단어로 치부 하기엔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211.png 죽고 싶은 마음과 떡볶이를 갈망하는 마음, 우리 시대의 가장 솔직한 모순.


백세희 작가의 이 책은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증이 지속되는 상태)’를 앓는 저자가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내용을 기록한, 지극히 사적인 분투의 기록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작가의 어깨너머로 의사의 질문에 함께 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쓸까?", "왜 나는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관계가 두려울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이처럼 모순된 감정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연대감일 것이다. 그리고 인문명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모순이야말로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죽고 싶은 마음과 떡볶이 먹고 싶은 마음 : ‘편관(偏官)’과 ‘식신(食神)’의 동거


작가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공격한다. '나는 부족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그녀를 끝없는 우울의 심연으로 끌어내린다. 이것은 명리학에서 말하는 '편관(偏官)', 혹은 '칠살(七殺)'이라는 에너지 작용의 다른 모습이다.


'편관(偏官)'이란 나를 공격하고 통제하는 스트레스이자, 외부의 위협이며, 내면의 강박이다. 작가를 짓누르는 타인의 시선,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가혹한 자기 비판.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는 '편관'의 날카로운 칼날이다.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이 칼날에 베이다 못한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다.



'편관'의 날카로운 공격과 '식신'의 작은 생명의 빛.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정반대의 욕망이 불쑥 고개를 든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 이것은 명리학에서 '식신(食神)'이라 부르는, 가장 순수하고 본능적인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향한 에너지다.


'식신(食神)'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나를 표현하며, 소소한 행복을 통해 삶의 만족을 느끼는 힘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 창의적인 활동. 이 모든 것이 '식신'의 영역이다. '편관'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우리의 영혼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식신'의 작은 기쁨이라도 붙잡으려 애쓴다.


213.png 삶의 가장 순수하고 본능적인 기쁨, 명리학적 '식신'의 영역.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은, 바로 이 한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편관'과 '식신'의 위태로운 동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를 죽이려는 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작은 기쁨이라도 누리고 싶어 하는 힘. 이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라는 것을 책은 담담히 보여준다.


애매한 걸 견디지 못하는 마음 : 흑백논리의 감옥, ‘비겁(比劫)’


작가는 상담 과정에서 자신이 "애매한 걸 견디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나를 완전히 좋아하거나, 아니면 싫어하거나', '완벽하게 잘하거나, 아니면 아예 못 하거나'. 이처럼 세상을 흑과 백, 내 편과 적,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것은 '비겁(比劫)'이라는 에너지의 그림자와 관련이 깊다.



214.png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 '비겁'의 그림자가 만든 흑백논리의 감옥.


'비겁'은 '나 자신'을 의미하는 에너지이자,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료 혹은 경쟁자를 뜻한다. 이 기운이 건강하게 발현될 때는 '주체성'과 '자존감'이 되지만, 균형을 잃으면 세상을 '나'와 '나 아닌 것'으로 나누는 경직된 사고로 흐르기 쉽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나의 가치를 확인하려 하고, 관계에서 미세한 거절의 신호만 보여도 '나를 싫어하는구나'라고 단정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상담 과정은 바로 이 흑백논리의 감옥('비겁'의 그림자)에 '회색지대'를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정신과 의사는 작가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꼭 완벽해야만 괜찮은 건가요?",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과,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다른 문제 아닐까요?"


이 질문들은 작가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에서 벗어나, "조금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나", "때로는 갈등하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은 경쟁적 '비겁'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건강한 '비견(比肩)'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나를 알아가는 여정 : 상담, 그리고 ‘인성(印星)’의 회복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우울증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상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를 한 걸음씩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를 소중하게 보여준다.

이 '알아감의 과정'이야말로 명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치유의 힘, 바로 '인성(印星)'의 회복이다.


215.png 흩어진 감정의 조각들을 모아 '아, 내가 그래서 아팠구나'라고 이해하는 '인성'의 치유.


'인성'은 나를 수용하고, 이해하며, 나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다. 상담은 흩어져 있던 나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의 조각들을 모아, '아, 내가 그래서 아팠구나'라고 이해하게 만드는 '인성'의 작업이다.


'편관'의 공격으로 상처 입은 나를 보듬어주고,

'식신'의 작은 욕망을 "괜찮다"고 허락해주며,

'비겁'의 흑백논리에 지친 나에게 "그럴 수도 있다"는 쉼터를 제공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인성'의 역할이다.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작가의 경험에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바로 이 '인성'의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마치며. 나의 떡볶이는 무엇인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을 죽고 싶게 만드는 '편관'의 칼날 속에서도, 당신을 살고 싶게 만드는 아주 작은 '식신'의 기쁨은 무엇이냐고.


그것은 퇴근길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일 수도,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듣는 순간일 수도, 푹신한 이불 속에서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는 감촉일 수도 있다. 거창한 삶의 목표가 아니어도 좋다. 이 작고 소중한 ‘나의 떡볶이’들을 알아차리고 기꺼이 허락해주는 것.


216.png 당신을 살고 싶게 만드는 작은 기쁨, 오늘 당신의 '떡볶이'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내 안의 지독한 모순과 화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는, 우리 모두를 위한 가장 따뜻한 처방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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