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 파리스, 신들의 장난인가 인간의 탐욕인가
여러분, 혹시 ‘사과’ 좋아하시나요? 인류의 역사에는 아주 유명한 사과가 세 개 있다고 하죠.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사과입니다.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할 것 같지만, 실은 거대한 도시 국가 하나를 통째로 잿더미로 만든 역사상 가장 비싼 사과, 바로 ‘파리스의 황금 사과’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스캔들,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된 파리스와 헬렌의 사랑 이야기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흔히들 “사랑에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에는 국경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책’이 없었습니다.
신화는 이 모든 게 신들의 장난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명리학이라는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신의 뜻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욕망과 겁재(劫財)의 심리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습니다. 자, 그 뜨거운 불꽃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이야기의 발단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 사과 한 알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 때문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자존심을 건 싸움을 벌이죠. 제우스는 이 골치 아픈 심판을 트로이의 왕자이자 당시에는 목동으로 살고 있던 파리스에게 떠넘깁니다.
자, 여기서 파리스의 사주(운명)를 한번 상상해 볼까요? 그는 왕자로 태어났으나 버려져 목동이 되었고, 다시 왕자로 귀환하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삽니다. 명리학적으로 볼 때 파리스는 강력한 도화살(桃花殺)을 가진 인물입니다. 도화는 ‘복숭아꽃’처럼 사람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매력입니다. 아름다움을 탐하고, 감성에 예민하며, 이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기운이죠.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각기 다른 뇌물을 제안합니다.
헤라는 ‘세계를 지배할 권력(관성)’을, 아테나는 ‘전쟁의 승리와 지혜(인성)’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재성/도화)’을 주겠다고 했죠.
여러분이 파리스라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권력? 지혜?
하지만 ‘도화’가 가득한 파리스의 눈에는 권력도, 지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아프로디테의 손을 잡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얻겠다는 욕망, 즉 오직 눈앞의 즐거움과 감각적 쾌락을 쫓는 식상(食傷, 본능적 표현)의 에너지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 겁니다. 이 선택이 바로 트로이 멸망의 카운트다운 버튼을 누른 셈이 되었습니다.
아프로디테의 약속대로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을 만납니다. 헬렌이 누구입니까? 제우스의 딸이자, 그리스 최고의 미녀입니다. 문제는 그녀가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즉 ‘유부녀’였다는 사실이죠.
여기서 우리는 인문명리학의 아주 중요한 개념인 ‘겁재(劫財)’를 만나게 됩니다. 겁재란 문자 그대로 ‘재물(財)을 위협(劫)하고 빼앗는다’는 뜻입니다. 남자에게 재성(財星)은 재물인 동시에 ‘여자’를 상징합니다. 즉, 겁재가 발동하면 ‘남의 여자를 탐하거나, 내 여자를 뺏기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손님으로 초대받아 간 자리에서 헬렌과 눈이 맞은 사건. 이것은 명백한 ‘겁재의 난(亂)’입니다. 손님으로 왔으면 예의(관성)를 지켜야 하는데, 파리스는 그 관(官)을 깨버리고 주인의 보물을 훔친 겁니다.
헬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또한 파리스 못지않은 도화살의 소유자였겠죠. 남편이 베푼 호의와 왕비로서의 도덕(정관)보다는, 낯선 이방인이 주는 짜릿한 설렘(상관)에 몸을 실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하늘의 천간(天干)에서는 사랑이었을지 몰라도, 현실의 지지(地支)에서는 도덕과 신의를 배신한 형살(刑殺, 배반과 모략)이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야반도주를 감행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랑의 도피가 아닙니다. 스파르타 왕의 자존심을 짓밟고, 국가 간의 신의를 깨뜨린 도발이었습니다. 겁재의 특징이 바로 이렇습니다. "내가 갖고 싶으면 뺏는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한다." 경쟁심과 투쟁심, 그리고 무모함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이죠.
이 사랑의 결말은 우리 모두가 아는 비극, 트로이 전쟁입니다.
형 메넬라오스의 분노에 공감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을 필두로 그리스 연합군이 결성됩니다.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같은 숱한 영웅들의 죽음, 그리고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
명리학적으로 이 상황을 해석하면, 파리스와 헬렌의 사주에 있던 도화의 불꽃(火)이 통제되지 못하고 번져나가, 결국 트로이라는 거대한 흙(土)의 터전을 초토화시킨 형국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도 이들의 사랑을 두고 '신의 뜻(불가항력)'이냐 '인간의 책임(자유의지)'이냐를 두고 논쟁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파리스는 "여신이 시켰다"고 변명하고 싶었겠지만,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명백한 성숙하지 못한 자아의 폭주입니다.
그들은 사랑을 ‘권리’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담보로 하는 사랑, 사회적 약속을 파괴하면서 얻는 사랑은 명리학에서 말하는 ‘귀인(貴人)’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살(殺, 나쁜 기운)’일 뿐입니다. 그 살이 뻗쳐서 죄 없는 백성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사랑은 둘이 했는데, 죗값은 도시 전체가 치른 셈이죠.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파리스’와 ‘헬렌’이 존재합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치던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감정의 진실성을 앞세워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종종 봅니다.
하지만 역사가 주는 교훈, 그리고 인문명리가 전하는 통찰은 분명합니다.
겁재(劫財)로 얻은 사랑은 반드시 비겁(比劫, 경쟁자)들에 의해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고 얻은 사랑이 내 눈에 웃음을 줄 수 있을까요? 파리스는 결국 전쟁터에서 독화살을 맞고 고통 속에 죽어갔고, 헬렌은 다시 남편에게 끌려가거나 혹은 평생을 ‘재앙의 씨앗’이라는 손가락질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유지되려면 ‘관(官, 책임과 절제)’이라는 울타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울타리 없는 도화(꽃)는 누구나 꺾어갈 수 있고, 결국엔 짓밟히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지금 혹시 위험한 사랑에 당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나요? 혹은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고 싶은 충동이 드나요? 그때 기억하십시오. 파리스가 선택한 그 황금 사과, 겉은 번쩍였지만 그 속에는 ‘파멸’이라는 독이 들어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쟁취’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켜주는 ‘보호’여야 합니다. 불꽃처럼 타오르기만 하는 사랑보다는, 따뜻한 온돌처럼 서로의 일상을 데워주는 그런 사랑을 하시길 바랍니다. 트로이의 잿더미가 우리에게 보내는 서늘한 경고를 기억하면서 말이죠.
"신은 무대를 만들었으나 비극을 연기한 것은 인간이었다.
욕망을 선택의 핑계로 삼지 말라. 사랑에도 윤리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