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 인문학에 반하다

2편. 당신의 '단점'이라 불렸던 것들에 대하여 - 셰익스피어와 사주

by 덕원
때로는 가장 아픈 곳에, 나를 이해할 가장 정직한 실마리가 숨어 있다.





우리 안에는, 나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몬스터 한 마리쯤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 내 안의 몬스터와 함께 사는 법


문득 튀어나와 관계를 망쳐버리는 날카로운 말들,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잡아끄는 지독한 망설임,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다 모든 것을 재로 만드는 분노. 우리는 그 몬스터의 이름을 ‘단점’이라 부르며, 평생에 걸쳐 그 녀석을 없애거나, 최소한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가두기 위해 싸웁니다.


이 싸움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지요.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세상의 속삭임과 스스로의 채찍질 속에서 서서히 지쳐갑니다. ‘결함 없는 나’라는 신기루를 좇다가,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마저 미워하게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 시대 가장 보편적인 비극일 겁니다.


오늘 저는 당신에게 ‘그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세요!’라는 희망 고문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무책임한 긍정은 때로 더 깊은 절망을 낳는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대신, 400년 전 셰익스피어의 어두운 무대 위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추하고 뒤틀린 욕망과 결함이 어떻게 장엄한 비극을 만들어내는지를 목격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 안의 그 몬스터와 싸우는 대신, 그 녀석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102.205Z.png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은 병이 아니라, 세상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려는 영혼의 투쟁이다.


2. 햄릿의 망설임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고뇌하는 인간의 원형입니다. 그의 망설임을 ‘깊은 사유의 증거’라고 아름답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조금 솔직해져 봅시다. 그의 망설임은 그 자신을 파괴하고, 사랑하는 오필리어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주변 모두를 비극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습니다.


생각의 늪에 빠져 행동하지 못하는 것의 대가는 이토록 참혹합니다.명리학에서 인성(印星)이 지나치게 강하고 행동력을 뜻하는 식상(食傷)이 약한 사주가 바로 햄릿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이들은 머릿속에 수만 권의 책과 수백 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문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실패에 대한 공포, 불완전함에 대한 혐오가 그들의 발목에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웁니다. 인문명리학에서는 해결책으로 재성이라는 현실 참여 실천의지를 강조합니다.


이 기질은 ‘단점’이 맞습니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명백한 결함입니다. 인문명리학은 이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고통의 뿌리를 들여다보라고 말할 뿐입니다.


당신의 그 지독한 망설임은, 어쩌면 세상의 부조리와 폭력 앞에서 섣부른 답을 내놓지 않으려는, 당신 영혼의 가장 정직한 저항일지 모릅니다. 당신이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격을 바꾸려 애쓰는 대신, 나의 이 ‘햄릿적 기질’을 인정하고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령,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 하기보다 ‘일단 초고를 써보는 것’처럼, 작은 행동의 문턱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그 깊은 사유가 고여 썩지 않고, 세상으로 흘러나갈 작은 물길을 터주는 것. 그것이 당신 안의 햄릿을 닮은 몬스터와 공생하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103.150Z.png 우리는 부서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만, 조각난 나를 기꺼이 끌어안을 수는 있다.


3. 나의 ‘결함’과 화해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리어왕의 분노와 오만은 결국 그를 황야에 홀로 내버렸습니다. 맥베스의 권력욕은 수많은 피를 부르고 끝내 그 자신을 파멸시켰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들의 결함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의 ‘단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예민함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나의 고집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치게 하며, 나의 무책임함은 신뢰를 무너뜨립니다.이것을 ‘재능의 다른 얼굴’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그냥, 끔찍한 단점일 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나의 이 지독한 결함이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그 고통의 대가를 치른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변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얻게 됩니다.

리어왕이 모든 것을 잃고 폭풍우 속에서 자신의 오만을 깨달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명리학에서 비겁(比劫)이 강한 사주는 리어왕처럼 강한 자아와 고집을 가집니다. 이 기질을 가진 사람은 수많은 관계의 실패를 겪고 나서야, 자신의 세계만큼 타인의 세계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아프게 배우게 됩니다.


불같은 화(火) 기운이 강한 사람은 순간의 분노로 소중한 것을 잃어본 후에야,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절실하게 찾기 시작합니다.‘나의 결함과 화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결함이 내 삶에 남긴 상처와 폐허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이기에, 나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나의 어둠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고 그것을 다룰 힘을 얻게 됩니다.



1041.597Z.png 완벽한 지도는 없다. 그저 한 걸음씩 내딛으며 나의 길을 만들어갈 뿐.


4. 가장 위대한 서사는, 폐허 위에서 시작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모두 죽음과 파멸로 끝납니다.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 위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끔찍한 비극의 끝에서, 가장 미미한 희망의 씨앗이 발견되는 것입니다.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당신의 ‘단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당신을 괴롭히고, 때로는 당신을 넘어뜨릴 겁니다. 우리는 결코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내 안의 몬스터를 완전히 길들일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인문명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위로는, ‘완벽해질 수 있다’는 환상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결함을 알고 있기에 더 겸손해지고, 그로 인해 상처받아 보았기에 타인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내가 넘어졌던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당신 안의 몬스터와 싸우기를 멈추세요. 대신 그 녀석에게 예가체프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물어보는 겁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뭐니?


”당신의 가장 아픈 상처와 가장 지독한 결함 속에, 당신의 삶을 가장 깊고 진실하게 만들어줄 위대한 서사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폐허 위에서, 당신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려 합니다.


당신 안에 숨어 사는 몬스터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당신안에 숨어 살지도 모르는 몬스터 ^^


매거진의 이전글사주 보지 마세요, 당신의 사주를 '읽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