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 인문학에 반하다

3편. 호르몬과 명리학 - 당신의 분노는 팔자인가, 화학작용인가?

by 덕원

하루는 지인이 엄청 유명하다는 역술인에게 사주를 상담하고 온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저도 동종업계 종사자지만 일단 들어봤습니다.


그 역술가께서 대뜸 "사주에 불바다라 성질이 급하고 한번 터지면 무섭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에는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아 다소 충동적일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겁니다.


이거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한쪽은 수천 년 된 동양 철학의 언어로, 다른 한쪽은 최첨단 현대 의학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데, 가리키는 현상은 기묘하게도 똑같습니다. 그 것이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요?


저도 명리학을 가르치고 상담도 하는 사람이지만 제가 지금부터 사주명리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려는 게 결코 아닙니다. 제3자적 관점에서도 이건 하나의 흥미로운 '지적 유희'가 될 수 있다고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프레임(Frame)'을 가지고 '인간'이라는 똑같은 텍스트를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거죠. 자, 한번 따져보죠.


운명의 설계도인가, 뇌의 화학 지도인가? 인류는 오랜 시간 다른 언어로 ‘나’를 탐구해왔다.


1. 불(火)의 사주와 테스토스테론의 역학


먼저 명리학에서 말하는 '불의 기운'이 강한 사람입니다. 사주 여덟 글자에 병화(丙火)니 정화(丁火)니 하는 글자가 많다는 거죠.


이런 분들의 특징으로 흔히 정열, 추진력, 리더십 같은 걸 꼽습니다. 시원시원하고 뒤끝 없지만, 한번 화가 나면 맹렬하게 타오른다고도 하죠. 삼국지의 장비 같은 캐릭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자, 이 장비 같은 분을 21세기 과학의 실험실로 한번 데려와 보죠. 혈액을 채취해서 분석해보면 아마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평균보다 높게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호르몬은 우리 몸의 자신감과 경쟁심, 성취욕을 관장하는 일종의 '액셀러레이터'입니다. 중요한 승부를 앞둔 운동선수나 거대 기업의 CEO에게서 많이 분비되죠.



002.102Z.png 폭발적인 에너지의 근원은 사주에 새겨진 불(火)일까, 혈관을 흐르는 테스토스테론일까.


그런데 이 액셀러레이터를 너무 세게 밟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격성이 높아지고, 충동을 제어하기 어려워집니다. 명리학에서 "불이 너무 강하면 주변을 태우고 자신마저 해친다"고 경고하는 것과 그 결과가 너무나 흡사합니다. 이거 참 묘하게 들어맞는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2. 흙(土)의 사주와 옥시토신의 화학


이야기를 바꿔서, 이번에는 '흙의 기운', 그중에서도 포용력을 상징하는 '기토(己土)'가 중심이 된 사주를 보겠습니다.


명리학에서는 이런 분들을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땅'에 비유합니다. 안정적이고, 신뢰를 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관계를 중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하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공동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입니다.



003.059Z.png 만물을 길러내는 대지의 포용력. 그 온기는 어쩌면 옥시토신이라는 ‘신뢰의 화학물질’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이 '대지의 어머니' 같은 분의 내면을 들여다볼까요? 아마 그분의 뇌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을 겁니다.


'사랑의 호르몬', '신뢰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사회적 유대감과 공감 능력을 담당합니다. 우리가 타인과 따뜻한 스킨십을 하거나 진솔한 대화를 나눌 때 분비되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죠.


흙의 기운이 가진 ‘포용’과 ‘양육’의 서사와 옥시토신이 만들어내는 ‘신뢰’와 ‘유대’의 화학작용.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아 보입니다.


3. 물(水)의 사주와 세로토닌의 광합성


마지막으로 물(水) 기운이 아주 강한 사주입니다. 특히 사주 전체가 춥고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한 경우, 명리학에서는 깊은 사색에 잠긴 철학자에 비유합니다.


지혜롭고 통찰력이 있지만, 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이 강해 우울감이나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하죠.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처방은 바로 '태양', 즉 불(火)의 기운입니다.



004.802Z.png 깊은 사색의 시간. 명리학의 ‘태양(火)’은 뇌과학의 ‘세로토닌’을 깨우는 가장 오래된 처방일지 모른다.


이건 현대 뇌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아주 명쾌해집니다. 우리의 기분과 안정감을 조절하는 핵심 호르몬은 '세로토닌'입니다. 이 세로토닌은 햇볕을 쬐어야 체내에서 잘 합성됩니다.


일조량이 부족한 겨울에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차가운 물의 사주는 따뜻한 햇볕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수천 년 전의 명리학적 처방이, "우울감이 느껴지면 밖에 나가 햇볕을 쬐세요"라는 정신과 의사의 현대적 조언과 정확히 포개지는 지점입니다. 명리학에 혹하게 되지 않나요?



005.899Z.png 지도는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 어떤 지도를 참고하여 어떤 길을 오를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결론: 다른 지도, 같은 산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사주팔자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숙명론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주팔자를 숙명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저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인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고대의 현자들은 자연의 변화와 인간사를 관찰하며 '음양오행'이라는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틀을 만들었습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인체를 해부하고 화학 반응을 분석하며 '호르몬'이라는 물질적이고 분석적인 틀을 만들었죠.


두 개의 지도는 사용하는 기호도, 제작 방식도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지도가 가리키는 산의 등고선과 계곡의 모양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의 보편적인 기질과 성향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내 성격이 불 같다고 해서 "나는 원래 이런 팔자야"라고 체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대신 "아, 내 몸은 테스토스테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구나.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조절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태도 아니겠습니까?


결국 다른 언어로 된 두 개의 지도를 모두 펼쳐볼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산을 오르는 가장 현명한 등산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인 인문명리학이 왜 필요한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가 이런 사유 속에 정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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