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에게 가려진 비운의 예술가 까미유 끌로델의 비극적 서사
때로 세상의 규격에 맞지 않아 튕겨 나갔다고 느낄 때, 나의 진심이 곡해받을 때, 그리고 차가운 벽 속에 홀로 유배된 기분이 들 때, 떠오르는 이름 까미유 끌로델. 그녀는 시공간을 넘어 우리 곁에 서 있는 가장 슬픈 위로자입니다.
1913년 3월의 어느 새벽, 파리의 공기는 젖은 양털처럼 무겁고 축축했다.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마차의 덜컹거림은 마치 관 뚜껑에 못을 박는 소리처럼 들렸다. 까미유 끌로델. 로댕의 연인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불기둥이었던 여자가 세상의 끝으로 유배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명리학에서 말하는 수화기제(水火既濟)의 균형이 파괴되고, 거대한 수기(水氣)가 마지막 남은 촛불을 덮쳐버리는 '수화상쟁(水火相爭)'의 비극적 풍경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권력의 비정함을 해부하듯 그녀의 몰락을 추적해보면, 그 기저에는 19세기라는 거대한 남성 권력(官)과, 그에 맞서 자신의 재능(傷官)을 뽐내려 했던 한 여성의 처절한 투쟁이 깔려 있다.
그녀는 본래 병화(丙火)와 같은 여자였다. 태양처럼 강렬하고,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을 자신의 빛으로 장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존재였다. 로댕의 작업실은 그녀에게 있어 거대한 용광로였다. 흙을 만지고 돌을 깎을 때, 그녀의 손끝에서는 문명의 예의범절을 비웃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지옥의 문'을 함께 조각하며 나누었던 육체적 탐닉이자, 예술적 교감이라는 이름의 위험한 불장난이었다.
그러나 불꽃은 영원할 수 없다. 오르한 파묵이 이스탄불의 겨울을 묘사할 때 쓰는 그 짙은 '휘준(Hüzün, 우울)'의 정서가 그녀의 중년을 덮쳤다. 로댕은 비겁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본처라는 안전한 대지(Earth) 위로 도망쳤다. 홀로 남겨진 까미유에게 세상은 더 이상 무대가 아니라 감옥이었다.
그녀의 대표작 <중년(L'Age Mûr)>을 보라. 늙은 여자에게 끌려가는 남성과, 그를 붙잡으려 무릎 꿇고 애원하는 젊은 여성. 이것은 단순한 치정극의 묘사가 아니다. 명리학적으로 해석하자면, 이것은 관살(官殺)이라 불리는 운명적 억압이 개인의 식신(食神), 즉 생명력을 짓밟고 끌고 가는 공포스러운 형상이다.
그녀는 돌을 깎아 자신의 비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 처절한 기록을 '피해망상'이라는 병리학적 언어로 번역해버렸다.
가족들, 특히 그녀의 동생 폴 끌로델은 그녀를 '정신병원'이라는 냉동실에 가두었다. 30년. 무려 30년 동안 그녀는 흙을 만지지 못했다. 조각가에게 흙을 빼앗는다는 것은, 새의 날개를 자르는 것보다 잔인한 형벌이다. 병원의 차가운 벽 안에서 그녀의 뜨거웠던 화기(Fire)는 갈 곳을 잃고 내면으로 파고들어 스스로를 태우는 독이 되었다.
몽드베르그의 겨울은 길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습니다." 이 문장은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금수쌍청(金水雙淸), 즉 차가운 금과 물의 기운만이 가득한 병동에서 온기를 잃어가는 생명의 물리적 호소였다. 철학자 푸코가 말했듯, 광기란 어쩌면 이성이 침묵시킨 타자의 언어일지 모른다. 세상은 그녀의 언어(예술)가 너무 뜨겁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침묵의 바다에 수장시켰다.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단지 세상의 온도가 그녀를 감당하기엔 너무 낮았을 뿐이다. 그녀는 로댕의 그림자가 아니라, 로댕보다 더 투명하고 예리한 빛이었다. 하지만 명리학의 섭리대로, 너무 밝은 빛은 주변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든다. 그녀의 재능은 그녀를 태우는 연료였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재능이라는 화형대 위에서 30년을 서서히 타들어 갔다.
1943년, 그녀가 숨을 거두었을 때, 그녀의 시신은 가족에게 인도되지 못하고 무연고 묘지에 묻혔다. 이름 없는 번호판 하나만이 그녀의 묘비를 대신했다. 이것은 완벽한 소멸이자, 가장 차가운 결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 갇힌 그녀의 청동 조각들을 본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 금속 덩어리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차가운 청동의 표면 아래에는, 100년 전 파리의 작업실에서 땀 흘리며 흙을 빚던 한 여자의 뜨거운 지문이, 그 맹렬했던 상관(傷官)의 불꽃이 영원히 화석처럼 박혀 있다는 것을.
까미유 끌로델. 그녀는 실패한 예술가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비극이라는 장르의 걸작이 된 여자다. 싸늘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 몽드베르그의 잿빛 하늘 아래 홀로 서 있었을 그녀의 고독을 생각한다. 불은 꺼졌으나, 그 온기는 여전히 우리를 화상 입힐 듯 생생하다.
"세상은 그녀의 압도적인 솔직함을 '광기'라 명명하며 유배시켰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감정에 위선적인 가면을 씌우지 않았던 가장 이성적인 영혼이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속도와 온도를 가졌다는 이유로 우리의 존엄한 야성을 '병(病)'으로 취급하여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