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스르는 히피 자본가

리처드 브랜슨의 '해피 라이엇(Happy Riot)'

by 덕원

자본주의는 본래 차갑고 계산적이다. 숫자가 지배하고, 효율이 신으로 추앙받는 세계다. 그런데 이 엄숙한 성전에 헝클어진 머리에 가죽 재킷을 입고 난입하여, "재미없으면 왜 해?"라고 묻는 남자가 있다. 리처드 브랜슨. 그는 기업가라기보다 락스타에 가깝고, CEO라기보다 모험가에 가깝다.


많은 이들이 그의 성공 비결을 '창의성'이나 '도전정신' 같은 도덕 교과서적인 단어로 포장하려 한다. 하지만 인문명리학의 렌즈로 그를 들여다보면, 그를 움직이는 진짜 동력은 훨씬 더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에너지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의 폭주'다.


1. 갑인(甲寅)의 직립보행 - 뚫고 나가는 힘


그의 사주 명식을 펼치면, 거대한 숲이 보인다. 그는 '갑인(甲寅)일주'다. 천간과 지지가 모두 나무(木)로 된 이른바 '간여지동(干與支同)'이다. 이것은 화분에 심긴 얌전한 난초가 아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가로수 뿌리이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잭의 콩나무다.


명리학에서 '갑목(甲木)'은 굽히지 않는 직진성이다. 타협? 그건 덩굴식물이나 하는 짓이다. 갑목은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다. 브랜슨이 기존의 항공 산업, 통신 산업, 금융 산업의 카르텔을 그토록 거침없이 깨부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고개 숙이는 법'을 모르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태어난 해인 '경인(庚寅)'을 주목해야 한다. 나무 위에 도끼(庚金)가 놓여 있고, 그 밑에는 호랑이(寅)가 웅크리고 있다. 이를 '백호살(白虎煞)'이라 부른다. 보통 사람에게 이는 사고나 재앙을 의미하지만, 브랜슨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거물에게는 이 도끼가 오히려 가지치기용 전지가위가 된다.


그는 열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이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아니라, 자신의 강한 목기(생명력)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금기(죽음의 위협)와 충돌해 보는 '극단적 생존 놀이'다.



0991.png 그는 성장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에게 멈춤은 곧 죽음이다.


2. 난독증과 정동(Affect)의 경제학 - 텍스트를 거부하고 느낌을 팔다


브랜슨의 성공은 '정동적 전환(Affective Turn)'의 승리다. 그는 난독증을 앓았다. 텍스트(Text)를 읽지 못한다는 것은, 근대 교육 시스템과 관료주의적 질서에서 추방당함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좌절했겠지만, 이 괴짜 나무(갑목)는 텍스트를 우회하여 '이미지'와 '느낌(Feeling)'의 세계로 직진했다.


그는 복잡한 계약서나 보고서를 읽는 대신, 사람의 눈빛을 읽고 대중의 기분을 읽었다. 버진(Virgin) 그룹이 파는 것은 항공권이나 콜라가 아니다. 그들이 파는 것은 '쿨함', '반항', '즐거움'이라는 정동이다. 그는 자신의 난독증 덕분에, 논리가 아닌 감각으로 소통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게 돈이 될까?"가 아니라 "이게 가슴을 뛰게 하나?"가 그의 판단 기준이 된 것은 필연적이다.


그는 '행복의 의무(The Duty of Happiness)'를 기업 경영에 도입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것은 강요된 미소가 아니다. 그의 사주에 흐르는 '식상(표현욕구)'의 에너지는 억지로 참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가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쇼맨십이기도 하지만, 목(경직된 권위)을 조르는 행위에 대한 본능적 거부 반응이다. 그는 자본주의라는 딱딱한 기계에 '유머'라는 윤활유를 들이부어, 그 기계가 춤추게 만들었다.



0992.png 규칙은 지루하다. 재미는 혁명이다. 그는 지루함을 죄악으로 규정했다.



3. 신왕재왕(身旺財旺)의 딜레마 - 영원한 소년의 그림자


명리학적으로 그는 '신왕재왕(身旺財旺)'형의 명조이다. 내 힘(身)도 세고, 내가 다룰 수 있는 재물(財)의 밭(未土)도 넓다. 이것은 재벌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지만, 동시에 영원히 만족을 모르는 저주이기도 하다.


그의 사주에서 '토(土/재성)'는 그가 뿌리내려야 할 땅이다. 하지만 그의 나무(갑목)는 너무 크고 거대해서 지구라는 땅조차 좁게 느껴진다. 그가 기어이 우주로 나가려는 것(버진 갤럭틱)은 단순히 기술적 투자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팽창하는 에너지를 감당할 더 넓은 대지를 찾아 떠나는 '식민지 개척 본능'의 발현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림자가 있다. 피터팬은 늙지 않지만, 네버랜드의 다른 아이들은 늙는다. 그의 '즐거운 경영' 뒤에는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직원들의 고충이나, 실패한 수많은 프로젝트(버진 콜라, 버진 브라이드 등)의 잔해들이 있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는가?" 브랜슨의 '해피 바이러스'는 강력하지만, 그 바이러스에 면역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피로감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이지만, 그 소년의 놀이터를 유지하기 위해 세상은 꽤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0993.png 지구는 그에게 너무 좁은 화분이었다. 그러나 우주는 그를 안아줄까?



4. 유쾌한 돌연변이의 진화


리처드 브랜슨은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매력적인 '돌연변이(Mutation)'다.


전통적인 자본가가 '축적'을 위해 살았다면, 그는 '발산'을 위해 산다.

전통적인 리더가 '통제'를 통해 권위를 세웠다면, 그는 '파격'을 통해 팬덤을 만든다.


그의 사주에 있는 '갑인(甲寅)'의 에너지는 타협하지 않는 순수함이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아이처럼 웃으며 위험한 도전을 즐긴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태어났다. 그의 삶은 "인생은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거대한 퍼포먼스다.


우리는 그를 통해 배운다. 단점(난독증)은 다른 길을 찾으라는 신호이고, 위험(모험)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축제일 수 있음을. 비록 우리가 모두 그처럼 우주로 날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인생이라는 작은 화분에서 어떤 나무를 키울지는 결정할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좀 더 제멋대로 자라나도 괜찮아. 가지치기를 두려워하기엔, 너라는 나무는 너무 아름다우니까."




[Final Insight]

"그는 억만장자가 되기 위해 사업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거대한 에너지를 쏟아낼 놀이터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돈은 그가 신나게 놀다 보니 쌓인 입장료 같은 것이었죠. 이것이 바로 브랜슨 식 '놀이의 역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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