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스님 중광의 파격적이기에 더 거룩한 퍼포먼스
모두가 '보석'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이 피로한 시대에, 스스로 '걸레'가 되기를 자처했던 한 남자의 파격적인 자유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괜히 왔다 간다."
이 짧은 묘비명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멍해진다. 허무인가? 해탈인가? 아니면 우주를 향해 날리는 통쾌한 농담인가. 중광(重光). 그는 승려였으나 계율을 비웃었고, 화가였으나 화단을 조롱했으며, 인간이었으나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 불렀고, 그는 자신을 '걸레'라 불렀다.
하지만 21세기의 시선으로 다시 본 중광은 단순한 기인(奇人)이 아니다. 그는 엄숙주의라는 감옥에 갇힌 한국 사회를 향해 온몸으로 '자유'라는 기호를 수행했던 전위적인 아티스트이자, 명리학적 운명을 가장 파격적으로 비틀어버린 혁명가였다.
그의 삶은 거대한 연극이었다. 주디스 버틀러가 말했듯, 정체성은 본질이 아니라 반복된 행위(수행)를 통해 구성된다. 중광은 '고승(高僧)'이라는 사회적 각본을 찢어버리고, 스스로 '광승(狂僧)'이라는 배역을 무대 위에 올렸다.
그는 왜 미쳐야 했는가? 명리학적으로 그의 내면에는 '상관(傷官)'의 에너지가 용암처럼 끓고 있었다. 상관은 기존의 질서와 권위(官)를 깨부수는 힘이다. 유교적 엄숙함과 군사 정권의 경직성이 지배하던 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이 거대한 파괴의 에너지를 가진 자가 숨 쉴 곳은 없었다.
그는 질식하지 않기 위해 '광기'를 입었다. 그가 대낮에 나체로 춤을 추고, 성기(性器)로 그림을 그리고, 막걸리를 들이켠 것은 타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희가 믿는 도덕과 권위가 얼마나 가식적인가"를 폭로하는 가장 정치적이고 전복적인 '바디 퍼포먼스'였다.
그는 미친 사람이라는 가면을 씀으로써 비로소 검열받지 않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궁정 광대'의 자유를 획득했다. 그의 광기는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미친 세상에서 제정신을 지키기 위한 고도의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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