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 & 로버트 더들리, 사랑을 삼키고 제국을 토해내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우리는 이 문장을 엘리자베스 1세의 숭고한 결단으로 배운다. 하지만 그 이면에 한 남자를 향한 지독한 갈망과, 살기 위해 사랑을 거세해야 했던 한 인간의 비명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녀가 평생을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라는 가면 뒤에 숨겼던 남자, 로버트 더들리.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남녀의 사랑에 대한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이라는 본능과 '권력'이라는 마약, 그리고 '운명'이라는 족쇄가 뒤엉킨 튜더 왕조의 가장 은밀한 야사(野史)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화려한 궁정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가 서린 런던 탑에서 시작되었다. 피의 메리(Mary I) 시절, 반역 혐의로 갇힌 20대의 엘리자베스와 로버트 더들리는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했다. 이때 맺어진 '전우애'는 훗날 사랑보다 더 질긴 끈이 된다.
여왕으로 즉위한 엘리자베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더들리를 주마관(Master of the Horse)으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여왕의 말을 관리하며 늘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자리. 그것은 공식적으로 연인을 곁에 두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에게 '부부'의 연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들리의 아내 에이미 로브사트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의문의 사건은, 두 사람을 스캔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여왕과 결혼하려는 더들리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소문은 들불처럼 번졌고, 정치적 입지가 불안했던 엘리자베스에게 결혼은 곧 파멸을 의미했다.
결국 그녀는 결단한다. 여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신화가 되기로. 그녀는 흰 납 가루를 얼굴에 칠해 표정을 지우고, 화려한 진주로 몸을 감아 '처녀 여왕'이라는 갑옷을 입었다. 그리고 더들리에게는 평생 자신의 곁을 지키는 '충신'이자 '비밀 정부'의 자리를 내어준다. 이것은 사랑을 지키기 위한 이별이자, 권력을 지키기 위한 잔인한 타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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