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일본 지역경영이 성공하는 이유

재원·주체·운영에서 발견되는 세 가지 공통 구조

by 김영기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의 여러 지역경영 사례들은 서로 다른 도시에서 등장했다. 도쿄의 마루노우치,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 오사카의 센바, 그리고 후쿠오카의 텐진과 하카타까지. 도시의 규모도 다르고 상권의 성격도 다르다. 어떤 곳은 대형 디벨로퍼가 중심이 되고, 어떤 곳은 소규모 상점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느슨한 연대 구조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들 사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구조가 있다. 도시의 조건은 달라도 지역경영이 성공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그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누가 운영하는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는가?, 그리고 누가 지속적으로 관리하는가?


1. 첫 번째 원리 : 건물 소유주가 중심이 되는 민간 거버넌스

일본 지역경영 사례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특징은 건물 소유주와 민간 기업의 강한 참여다.

지역경영의 목표는 단순한 상권 활성화가 아니다. 지역 전체의 자산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주체가 참여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전략이 작동하기 어렵다.

도쿄 마루노우치와 오테마치 일대에서는 대형 디벨로퍼가 중심이 되어 도시 운영 전략을 설계한다. 반면 오사카 센바처럼 대형 기업이 없는 지역에서는 건물주와 상인, 사업자들이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역 운영에 참여한다.

후쿠오카 텐진·하카타 역시 규제 완화 이후 건물주들이 개발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민간 중심의 거버넌스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지역경영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행정이 아니라 자산 보유자가 지역의 미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움직일 때 도시 경영이 시작된다.

민간이 중심이 되면 의사결정 과정도 단순해진다. 공공 정책에는 정치적 고려와 행정 절차가 개입하지만, 민간 중심 구조에서는 목표가 비교적 명확하다. 공간의 가치 상승, 상권 경쟁력 강화, 방문객 경험 개선 같은 요소가 지역 운영의 핵심 기준이 된다.


2. 두 번째 원리 : 공공 보조금이 아닌 자립형 재원 구조

일본 지역경영 모델의 두 번째 공통점은 민간 중심의 재원 구조다.

많은 지역경영 조직은 공공 보조금이 아니라 자체 재원을 통해 운영된다. 재원 구성 방식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몇 가지 공통된 방식이 있다.

대형 디벨로퍼가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기업의 투자와 건물 임대 수익이 주요 재원이 된다. 여러 건물주가 참여하는 지역에서는 회비나 공동 기금 형태로 운영비가 조성된다. 여기에 더해 공간 운영 수익과 시설 운영 수익이 중요한 재원으로 활용된다.

광장이나 거리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 프로그램 대관, 상업시설 운영 수익 등은 단순한 이벤트 수익이 아니라 지역 운영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지면 공공 예산에 의존할 때 나타나는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예산 편성 일정에 따라 사업이 중단되거나 단년 사업 중심으로 운영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민간 재원이 기반이 되면 지역경영 조직은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다. 3년, 5년, 10년 단위의 전략을 세우고 공간 운영과 브랜드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결국 재원의 구조는 지역경영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3. 세 번째 원리 : 지역을 관리하는 상시 운영 조직

세 번째 공통 구조는 전문적인 상시 운영 조직의 존재다.

일본의 지역경영 사례들은 모두 지역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을 가지고 있다. 이 조직은 단순한 상인회가 아니라 전문 인력을 갖춘 운영 기구다.

이 조직은 도시 공간을 관리하고, 지역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방문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상권의 브랜드 전략을 설계하는 역할을 한다. 이벤트 기획과 마케팅 활동 역시 장기 전략 속에서 진행된다.

도쿄 마루노우치에서는 전담 조직이 거리 공간 관리와 이벤트 운영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미나토미라이 역시 지역 운영 기구가 공간 관리와 프로그램 기획을 담당한다. 센바 지역에서는 상점과 주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운영 네트워크가 지역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조직이 상시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담당자가 바뀌거나 행정 정책이 변경되더라도 지역 운영 자체는 중단되지 않는다.

도시 공간은 단기간의 프로젝트로 관리될 수 없다. 지속적인 관리와 기획이 이루어져야 지역의 브랜드와 경쟁력이 유지된다. 상시 운영 조직은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한다.


4. 지역경영 성공 사례에서 반복되는 구조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의 여러 사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공통 구조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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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구조가 결합될 때 지역경영은 단기 사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운영 체계로 작동한다.


5. 한국 상권 정책이 풀어야 할 과제

이러한 구조를 한국의 상권 정책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한국의 많은 상권 사업은 공공 예산 중심으로 진행된다. 건물 소유주가 정책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한 전문 운영 조직이 상시적으로 유지되는 경우도 드물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사업이 끝나면 운영이 중단되거나 성과가 지속되지 않는 문제가 반복된다.

일본 사례는 상권 정책이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운영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민간 주체의 참여, 자립적인 재원 구조, 그리고 전문적인 운영 조직이 결합될 때 지역 상권은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다.


6. 지역경영은 사업이 아니라 구조다.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후쿠오카의 사례는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전한다.

상권은 단순한 점포 집합이 아니다.
도시는 스스로 운영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질 때 지속적인 활력을 유지한다.

지역경영의 핵심은 시설 개선이나 행사 운영이 아니라 누가 책임지고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그 답은 대부분 민간 참여, 자립적 재원, 전문 조직이라는 세 가지 구조 속에서 발견된다.

앞으로 한국의 자율상권구역 정책이나 지역 상권 정책 역시 이러한 구조적 관점에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도시의 경쟁력은 단기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인 운영 시스템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의 지역경영 사례들은 도시 규모나 상권의 형태가 달라도 일정한 구조적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간 주체의 참여, 자립적인 재원 구조, 그리고 전문적인 상시 운영 조직이 결합될 때 상권은 단기 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최근 한국에서 도입되고 있는 자율상권구역 제도와도 깊이 연결된다. 앞으로 한국 상권 정책이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본 사례에서 어떤 요소를 참고하고, 어떤 부분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 자율상권구역이 일본 지역경영 사례에서 반드시 이해해야 할 구조적 시사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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