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재원·거버넌스의 삼중 제약과 가시 상승의 역설
"당신이 상권 활성화를 위해 땀 흘릴수록, 당신의 자리는 위태로워집니다."
이 잔인한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상인들이 단합하고, 거리가 예뻐지고,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왜 정작 상권의 주인공들은 더 불행해질까요? 그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애초에 협력하면 손해를 보게끔 설계된 상권의 시스템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상권이 자립 경영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견고한 설계 결함들을 해부합니다.
상권이 살아나지 않는 이유를 상인들의 의지 부족이나 공무원의 무관심에서 찾는 것은 단편적인 접근이다. 현장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개개인은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지만, 그들이 올라탄 상권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애초에 협력과 자율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권의 자율성이 늘 구호에 그치고 성과가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이유는 상권의 심장부에서 작동하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상권 현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자율성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상권은 제도적 경직성, 재원의 외부 의존, 파편화된 거버넌스라는 세 가지 벽에 갇혀 있다. 공공 예산을 투입하는 순간, 상권의 의사결정은 상권에 진정으로 필요한 일이 아니라 행정 지침에 어긋나지 않는 일에 매몰된다. 규정된 예산 비목과 까다로운 행정 절차는 상권의 유연한 대응력을 앗아간다. 결과적으로 상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결정권은 사라진 채, 주어진 예산을 매뉴얼대로 소모하는 집행권만 남게 된다.
처음에는 마중물 역할을 기대했던 공공 예산이 시간이 흐르며 상권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왜곡시킨다. 외부 지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될수록 상권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기금을 마련하거나 공동 투자를 이끌어낼 유인은 사라진다. 나랏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고착화되면서 상권은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비즈니스 감각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공공 의존 구조의 고착화는 상권이 자립을 꿈꾸기보다 공공의 사업 주기에 모든 일정을 맞추게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
지금의 상권 운영 방식에서는 성과를 누가 책임지는가에 대한 답이 모호하다.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배정한 공무원은 순환보직 시스템에 따라 짧은 기간 내에 자리를 떠나고, 실무를 맡은 컨설팅 업체나 코디네이터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철수한다. 결국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한 시설물과 복잡한 시스템을 떠안는 것은 고스란히 상인들의 몫이 된다. 권한과 성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상권 활성화 사업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닌 예산 소진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한다.
상권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은 자산을 소유한 임대인과 가치를 창출하는 상인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권이 활성화되어 명성이 높아지면 임대인은 지가 상승과 임대료 증액이라는 확실한 이익을 얻지만, 상인은 오히려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치명적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이 심리적, 경제적 괴리는 상권 전체를 위한 협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상인의 노력이 결국 자신의 퇴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존재하는 한, 주체 간의 진정한 파트너십은 기대하기 어렵다.
상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수록 역설적으로 상권 내부의 갈등은 더 깊어진다.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고 방문객이 늘어날수록 그 결실을 누가, 얼마만큼 가져갈 것인가를 두고 이해관계가 격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가치 상승의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거나 상권 내부의 공공 서비스를 위해 재투자하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사업은 상권을 공동체가 아닌 각자도생의 각축장으로 만든다. 활성화의 성공이 곧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하는 가치 상승의 역설이다.
결국 자율성이 없는 곳에 책임이 따를 수 없다. 지금까지의 상권 정책은 주체들에게 실질적인 결정권은 주지 않으면서 자생력만 강조하는 모순을 보여왔다. 이러한 구조적 결핍은 상권의 장기적 경쟁력을 갉아먹고 정책에 대한 불신만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권이 스스로의 가치를 정의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모든 지원은 일시적인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제 질문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쓸까라는 고민은 이제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하면 상권이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고 재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개별 주체들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견고한 시스템의 결함이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 상권에서 협력 기반의 중간조직이 자리 잡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보고, 이러한 협력 시스템의 부재가 상권의 자립 경영을 어떻게 차단하고 있는지 그 연결고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분의 상권에서는 가치 상승의 역설을 어떻게 경험하고 계신가요?
열심히 홍보해서 맛집이 되었더니 임대료가 올라 떠나야 했던 적이 있나요?
상권 활성화 사업이 끝난 후, 남겨진 시설물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보셨나요?
임대인과 상인이 상권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협력해 본 경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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