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4 DAY 알마덴 데 라 플라타(Almadén de la Plata) - 모네스테리오(Monesterio) 약 34km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뒤돌아보니 떠나오기 전부터 이미 지쳐 있었다. 바쁘게, 정신없이 쫓기듯 가방을 싸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길을 나섰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 같아 눌러 담아 두었던 시간이 결국 체력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있었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 잦아졌고, 이유 없이 가라앉는 순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갔다.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내 안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걷기 시작한 날부터 어젯밤 침낭 속에 누워서까지 머릿속의 혼돈은 멈추지 않았다. 소리 없이 내리던 가랑비가 온몸을 적셨고 무거워진 발걸음은 점점 더뎌졌다. 컨디션은 바닥이었다.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첫 번째, 두 번째 산티아고처럼 즐겁고 기쁘지 않은 이유를 끝내 찾지 못했다. 마음은 자꾸만 내려앉았고 그냥 쉬고 싶었다. 몸이 무거워지니 마음까지 함께 가라앉았다. 숙소를 도착해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비누칠을 했는데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종일 비를 맞아 차가워진 몸이 그대로 굳어버릴 것 같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좀 나아질 거라 믿었는데 작은 기대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비누칠한 몸을 대충 헹군 뒤 서둘러 침낭 속으로 몸을 숨겼다.
차가운 기운이 몸속 깊이 스며들어 위장까지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속이 편치 않아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온기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저녁도 겨우 넘겼다, 밤은 길었고 몸은 무거웠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이 왔다. 조금은, 정말 조금은 숨이 쉬어졌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다. 다행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놓아주고 있었다.
오늘은 맑음이다.
길 위에 다시 섰다.
비에 씻긴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게 열려 있었다. 참나무와 코르크나무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비어 있는 듯 가득한 풍경, 그 사이를 걷고 있었다. 가끔은 양 떼들이 보였다. 울타리를 열고 다시 닫으며 길을 걸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길은 곳곳에 물을 품고 있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을 건너야 하는 길이 있었다. 앞서가던 순례자들은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천천히 물가를 건넜다. 나는 잠시 멈춰서 길을 바라보다 ‘그냥 신고 지나가 버릴까.’ 성급한 마음이 먼저 앞섰다.
결국 신발을 벗었다.
차가운 물이 발끝을 감싸는 순간 걸음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알았다. 이 길은 서두르는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천천히 물을 건넜다.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어쩌면 이 길은 나를 늦추기 위해 물길을 만들어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멈추고 싶었던 나였는데, 오늘은 그저 한 걸음만 더 걸어보기로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나는 속도를 내려놓고 있었다.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속도로 천천히 걷는다.
모네스테리오는 스페인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하몽 이베리코(Jamón Ibérico)의 본고장이었다.
식성 좋은 나에게 이름만으로 설레는 곳이지만, 나는 그 맛을 온전히 받아낼 만큼 괜찮지 못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마저도 지금의 나였다.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다시 미소 지으며 걸을 수 있었다.
어제는 버텼고,
오늘은 조금은 웃으며 걸었다.
그런 내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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