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고 빛이 없을까?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리뷰

by orch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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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적인 개념을 빌자면 실현 가망성이 없는 ‘공상’에 비해 ‘상상’은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현실을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다. 대도시가 그렇듯 꿈을 이루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넘쳐나는 뭄바이에는 "23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집 같지 않다. 언젠간 떠나야 할 것 같다”는 한 등장 인물의 대사처럼 거주 목적과 종교 그리고 언어가 뒤섞인 이방인들이 부대끼며 살아간다. 나만의 문제만으로도 버거우니 네가 누군지 네가 무엇이 힘든지 살필 여력일랑 이곳에선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삭막한 현실을 위로하듯 파얄 카파디아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빛을 담아낸다. 영화의 초반부 간호원들이 병원 영화관에 모여 함께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다. 무엇을 보게 될까하는 설레임만으로도 들뜨는 그녀들은 스크린에 담긴 누군가가 만든 빛의 반사를 보며 잠시나마 현실 너머의 삶으로 순간 이동하여 고달픔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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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뭄바이가 암흑천지는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 그곳에도 빛은 있다. 배경인 병원에 넘쳐나는 환자들, 어깨가 부딪히는 지하철 통로, 현란한 색감과 소란이 뒤섞인 시장통 속에서 몽환적이기까지 한 인공적 빛은 꿈의 지향인 동시에 삶을 고갈시키는 뭄바이의 속성을 함축한다. 소란스러운 축제와 춤 그리고 환호하는 불꽃놀이가 끝나면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더 깊은 쓸쓸함과 어둠일지도 모른다.


주로 평민들이 찾는 뭄바이 병원에서 일하는 세 여성은 각기 다른 현실적 문제로 힘겹다. 속내가 깊으면서도 말이 적은 간호원 프라바(카니 쿠스루티)는 부모의 강압으로 상대의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했다. 그런데 독일로 일하러 간 남편은 일년째 무소식이다. 기다림이 미덕이고 정상인 사회에서 외로움의 그늘이 그녀에게서 배어난다. 경제적인 이유일 터이지만 함께 사는 룸메이터인 아누(디브야 프라바)는 프라바와는 대조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사랑을 밀고 나가려는 적극적 성격의 여성이다. 집안의 결혼 성화에도 아누는 힌두교와는 적대적인 무슬림 남성인 시아즈(흐리두 하룬)와 사랑을 나누고자 외지고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세 여성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병원의 조리사인 파르바티(차야 카담)는 남편의 죽음으로 20년째 살아온 터에서 강제 퇴거의 위기에 처해있다. 남편의 소유를 증명할 서류가 없기 때문이다. 부부라고는 하지만 여성은 주거권을 지킬 권리조차 없는 것이 인도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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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가 기거하는 작은 방은 늘 어둡다. 어쩌면 그것은 삶에 찌들린 프라바의 현실일것이다. 그나마 핸드폰의 작은 불빛이 있어 그녀를 내심 짝사랑하는 의사가 건넨 작은 수첩에 적힌 사랑의 시를 한밤중 읽는다. 그의 은근한 구애를 결혼이라는 계약 때문에 거절한 날, 발신인이 모호한 커다란 전기 밥솥이 프라바에게 도착한다. 독일산인 그 밥솥은 독일에서 일하는 남편이 보냈음직 하지만 정작 프라바가 듣고 싶은 목소리나 몇자의 소식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기계 덩어리에 불과하다. 허기진 영혼 앞에 놓인 배부른 밥그릇은 생각만으로도 서글픈 블랙코미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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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중에 파라바티는 무너져가는 초라한 집터에 대신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에 돌을 던지며 화를 풀어 보지만 대안이 막막하니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나마 그곳에는 파라바티의 거처가 있고 이웃들의 도움으로 직업을 얻을 수도 있다. 파리바티의 귀향길에 프라바와 아나가 동행하기로 한다. 달리는 버스 밖의 풍경이 점차 밝아진다. 좋은 징조이다. 상상의 빛을 찾아 나선 여행의 시작이다. 어둠과 대칭되는 빛이 영화 2부에 스며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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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비록 누추하지만 프라바, 아누가 파르바티의 집에 들어선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 번질거리던 경박한 불빛, 사람들로 넘쳐나던 뭄바이 시장 대신 몇 마리의 생선 좌판을 앞에 놓은 두 여인이 바닷가에 앉아있다. 자연이 내어준 빛으로 환한 이 공간에서 여성들만의 해방의 축제가 시작된다. 이삿짐에 끼어 있었던 술 한병을 나눠마신 세 여성이 취중 호기가 발동한듯 아무런 거리낌없이 맘껏 웃음을 웃으며 신나게 춤을 춘다. 자유로운 기운이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외진 시골에도 카페가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이는 이어폰을 꽂고 저만이 듣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몰아에 가까운 군중들의 땀에 절은 춤과 시장 밴드의 소음이 사라진 공간 대신 나만이 행복한 무아의 춤. 밤이 되면 형형색색의 작은 알전구들이 이곳에서도 축제처럼 반짝인다. 짚어보면 먹고, 자고, 춤추고, 시장을 들르는 일상은 어디나 같다. 그러나 이 한적한 곳에서의 삶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락하는 넉넉한 여유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그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사이 핑계를 대고 살짝 빠져있던 아누는 몰래 데리고 온 시아즈와 주변을 돌아본다. 비밀 데이트이다. 그들은 호기심에 바닷가에 난 동굴을 들어가보지만 어두운 그곳으로부터 아내 빛을 찾아 밖으로 나온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굳이 사람들을 피할 으슥한 공간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그들은 환하게 빛나는 나무 숲 아래에서 거리낄 것 없는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영화는 주인공인 프라바에게 바톤을 넘긴다.


갑자기 바닷가가 부산해진다. 한 남자가 익사 직전 바다에서 이끌려 내어졌다. 그때 간호사인 프라바가 심폐 소생술로 남자의 생명을 구한다. 허리를 구부려 입술을 맞대었던 인공호흡의 순간이 왠지 관능적이기조차 하다. 그리곤 어두운 마을 의사의 집으로 옮겨진 남자. 묘하게 원초적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의 검은 몸에 난 상처를 세심하게 씻기는 프라바의 손길이 천천히 화면에 클로즈업 된다. 정신이 든 남자가 이전의 기억을 잃었다고 하며 그리된 연유를 묻지만 어찌 알았는지 프라바의 이름을 부르며 “나랑 같이 가요”라며 손을 내민다. 그토록 기다렸던 남편의 현현(顯現)이 아닌가? 그러나 미소 대신 눈물이 프라바의 얼굴에 흐른다. 그리고는 대답한다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현실이 아니라 꿈인 듯 상상인 듯 이별의 제식을 치러내자 비로소 프라바가 스스로 어둠을 걷어낸다. 너무도 익숙해서 어둠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던 그녀가 빛의 세상에서 우뚝 선다.


그리고 이제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갈 날이 되기 전, 파르바티와 모인 카페에서 프라바가 비밀이 아닌 비밀이었던 아누의 남자 친구를 테이블로 부르게 한다. 친구의 우정이 아누에게 더 이상 숨는 사랑이 아니라 인정받을 수 있는 떳떳한 사랑을 선물한다. 프라바가 곧 그곳에 나타난 시아즈의 고향과 그들이 쓰는 고유 언어를 묻고 소통하는 사이 남자는 숨어야 할 이방인이 아닌 또렷한 개체로 인정받는다. 그렇게 여성들이 지친 사랑에 빛을 안긴다. 환자의 등에 대었던 의사의 청진기를 자신의 머리에 대어보았던 아누의 뜬금없는 행동이 이제사 떠올려진다. 지친 영혼의 치유는 약이 아니라 상상의 빛을 일으켜주는 관심과 공감의 연대에 있었다. 그러니 ‘홀로 또 같이’, 세상은 그렇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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