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ner courage
Feb 05. 2024
항암치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퇴근한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달 방콕 학회인데 같이 갈래? 붙여서 휴가 내서 좀 쉬고 오자. 맛있는 것도 먹고”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복통으로 거의 먹지 못했고 결국 막바지에는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그때는 몸 안의 에너지를 모두 끌어올려도 아이들 밥만 겨우 챙겨줄 수 있었다. 그러다 치료가 끝나자 조금씩 더 먹을 수 있었고 간단한 집안일도 가능했으며 머리카락도 까맣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여행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여행가방을 싸다 태국의 무더운 날씨가 떠올랐다. 지난 여름내내 나를 괴롭히던 모자 속의 후덥지근한 습기, 가발 아래로 흐르던 땀이 기억나 인상이 찌푸려졌다. ‘방콕에선 아무도 나를 모를 거야.’ 불현듯 솟아난 용기에 모자와 가발은 멀리 던져 버렸다.
공항으로 가는 길,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다. 짧은 머리가 어색해 손가락으로 빗어보지만 너무 짧아 손가락 사이에 잡히지도 않는다. 요리조리 살펴보니 선글라스에 짧은 머리, 스카프까지 두른 모습이 ‘사연 있는 예술가’ 같다. 그렇저렇 맘에 들어 씩 웃어 보았다.
게이트 앞은 엄청 붐볐는데 희한하게도 익숙한 얼굴은 눈에 쏙 들어오나 보다. 남편과 전공이 같은 대학동기이다. 부풀었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쭈그러들었다. 아직 날 못 본 것 같아 최대한 피해보려고 느지막이 탑승장에 들어섰지만 통로 끝에 동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가보다. 그의 눈이 내 밤송이 머리에 머물렀다 황급히 나와 눈을 맞춘다. 안쓰러움과 당황함이 담긴 표정으로 병의 상태와 치료 경과에 대해 물어본다. 나를 만나려고 일부러 기다린 동기에게 미안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다행히도 방콕에서는 누구도 나를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이나 식당, 수영장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그곳의 누구도 암환자를 치료하다 암환자가 된 나를 알지 못했기에 안 괜찮아도 늘 괜찮아야 했던 나를 잊어버리고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울 수 있었다.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은 바로 얽매였던 규칙을 깨뜨리는 것이다. 모자와 가발을 벗어 던지자 두피의 자유를 맛볼 수 있었다. 심지어 “너 스타일 멋져”라는 옆자리 사람에게 “항암치료 덕분이야” 라고 웃으며 대답할 수도 있었다.
이렇듯 매력적인 여행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기한이 정해져 있다. 일시적이기에 더 치명적으로 매력적이다.
그해 가을 나는 ‘일시적 일탈’을 통해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요즘도 틈만 나면 여행을 꿈꾸는데 치명적 매력에 무릎을 꿇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