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부? 졸라부자? 리스펙트! 돈만있음 킹왕짱! 뭘 더 바람?
1980년대 졸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강남 부동산을 우연히 혹은 재빠르게 사는 바람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을 폄하하는 단어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은행잔고 혹은 자산으로 보면, 특히 소비에 지출하는 금액으로만 보면 더 큰 부자인데도 부동산 졸부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다?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요즘이었다면 부럽다 못해 존경심까지 드는데 말입니다.
부자라는 단어에 이상한 옷이 입혀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자라는 단어는 돈을 얼마나 가졌는가를 기준으로 할 뿐 인품이 좋다거나 인성이 아름답거나 출신이 다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현상이 있기는 합니다. 옛날과는 달리 이젠 부자들이 모여사는 지역은 확실히 더 안전한 느낌이 듭니다. 경찰이 더 많아서 안전한 그런 안전이 아닌 자존감과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때 나타나는 현상적인 안전함입니다. 혹시 고소를 당하거나하면 잃을게 많은 사람들의 조심성이 만드는 안전함, 당연히 즉각적인 물리적 폭력은 드물어집니다. 그건 명백한 손해, 그리고 부자라면 더 많이 물어야 하는 손해로 직행하는 길이니까요. 그뿐인가요 왠지 부드럽고 매너도 잘 지켜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
결국 돈에만 초점을 맞추면 신기하고 이상한 많은 것들이 술술 풀려 답을 알려줍니다.
<졸부>하면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졸부가 생산된 곳일 것 같은 곳. 바로 일본입니다. 91년 버블이 터지기 전 일본은 졸부의 천국이었습니다. 동경 긴자 거리에서는 백만 엔을 주고 하룻밤을 즐기려는 남자들이 천만 엔을 뿌리는 남자들 앞에서 기가 죽는 일이 흔했을 정도로 졸부가 흔했던 일본.
버블 이후에도 나라는 여전히 부자였지만 국민은 가난해졌던 일본. 그런 일본을 이젠 한국이 따라잡다 못해 추월하는 지표가 나오면 미디어에서 호들갑을 떱니다. 34년 전에 버블이 터진 나라를 따라잡고 추월한다는 선진국 부자나라 한국. 다 좋은데 34년을 잃어버린 나라를 이제 따라잡았다는 사실에 신이 나기보다는 당황스러워지는 이유는 뭘까요?
만약 30년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상황이었다는 건지...
30년을 잃어버린 후에도 한국과 비슷한 부자라는 건데...
뭔가 석연치 않고 뭔가 갑갑합니다.
졸부는 폭망 하면 깡통을 차야 마땅할 것 같은데... 일본의 버블은 그럼 뭔가 바탕이 있는 버블이었던 걸까요?
하긴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나라가 폭망 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 일본은 이미 전투기는 물론 항공모함을 직접 만드는 기술력을 갖춘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지구상에서 원자폭탄을 유일하게 2번이나 맞은 일본이, 2차 대전 최대 패전국 중의 하나였던 일본이 순식간에 미국을 거의 따라잡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일본은 얼마나 오랫동안 부자였길래 1973년 G5 국가가 되고 30년을 잃어버리고도 여전히 G7에서도 중추적인 나라로 자리하고 있을까요? 신기합니다. 그런데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하고 30년을 잃어버린 지금도 세계 2위 자리를 지키는 통계가 있습니다. 바로 골프장의 개수입니다.
(일본) 인구: 1억 2천5만 명 / 골프장: 2023년 기준 2133개 / 국토의 크기: 377,973 km² / 인구밀도: 342/km²
(한국) 인구: 5천만 명 / 골프장 543개 / 국토의 크기 100,210 km² / 인구밀도 511/km²
인구는 2.5배. 국토크기는 4배. 골프장 수는 4배.
일본 골프장은 어떻게 30년을 잃어버린 나라에서 아직도 버티고 있을까요?
그들만의 생존방식을 들여다봅니다. 동경 같은 대도시와 가까운 골프장들은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골프장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특징들이 있습니다.
일본 골프장들 특히 주중에는 1부만 운영합니다. 당연히 인(in) 코스와 아웃(out) 코스 양쪽으로 출발합니다. 전반을 마치고 나면 50분 내외의 휴식을 취한 후 후반 라운드를 시작하는데요 1부만 운영하고 양쪽으로 나가는 시스템에서 최대치의 골퍼를 수용하려다 보니 만들어진 시스템 같습니다. 그리고 그린피에 점심이 아예 포함된 경우가 많고 정해진 휴식시간 동안 점심과 생맥주 한잔을 먹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너무 친숙한 모습이고 일본 골프만이 가진 각별한 매력 중의 하나입니다. 거의 풍류에 가까운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후반을 돌면 27홀 골프를 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여행과 골프가 합쳐진 것 같은 만족감도 듭니다.
1부만 운영하다 보니 자연히 티타임도 좋은 시간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골프의 최대 장점은 저렴한 그린피입니다. 점심과 카트가 포함된 주중 그린피는 싸면 5만 원 비싸도 10만 원을 넘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 노캐디 라운드가 일반화되어있다 보니 도쿄 같은 곳에서는 주중 전체 골프 비용 중에 고속도로 통행료가 제일 비싸다는 농담 같은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선진국일수록 도로나 다리 같은 인프라 사용료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 골프장의 관리 상태는 매우 훌륭합니다. 1부만 운영하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점심과 카트까지 포함한 그린피가 5만 원이란 생각을 하면 대단하고 훌륭하기도 하지만 한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의 주중 골프는 한국과 비교해 4분의 1에 불과한 비용으로 훌륭한 코스에서 맛있는 음식도 즐기며 하루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예약은 누구나 3달 전부터 할 수 있고 3일 전에 취소하면 되니 취소에 대한 부담도 없습니다. 미리 예약을 할수록 그린피도 저렴한 경우가 많습니다. 비가 오면 취소는 골퍼의 뜻이 존중됩니다. 추가 금액 없이 두 명 플레이도 가능한 곳이 많습니다. 날이 좋으면 카트는 페어웨이를 들어갈 수 있는 골프장도 많습니다.
30년을 잃어버린 나라니까 골프장은 골퍼를 존중하고 아끼고 대접해야 마땅하겠죠?
누구처럼 30년을 잃어버릴 일은 절대 없는 나라라면 30년씩이나 잃어버린 나라의 골프와는 달라야 맞을 겁니다. 앞이 창창하고 밝기만 한 나라니까, 졸부는 없고 온전히 노력으로만 일어선 나라니까, 그런 나라에 사는 골퍼다운 대접을 받는 것도 킹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 너무 킹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