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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May 28. 2024

이대로라면 마지막일 것 같았던 제주도 골프여행

안녕하세요 류캉입니다.


이대로라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제주도 골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혹시나'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예정대로 제주도에 두고 다녔던 골프백을 가져왔습니다. 6일간의 여정에서 골퍼로서 느꼈던 것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여행. 어디를 가도 신나고 기쁘죠. 다만 저는 어쩌다 보니 그간 비행기를 너무 많이 탔고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비행기 타는 것이고 두 번째 싫은 게 공항입니다. 세 번째 싫은 건 교통체증일까요? 그래서 웬만하면 해외여행을 가고 싶지 않고 만약 간다면 가능한 한 작은 규모의 공항으로 입국하는 걸 선호합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골프 여행을 갈 때 만은 비행기와 번잡함에 더해 뭔가 허락을 구하고 지시를 따라야 하는 공항을 나름 잘 견뎌냅니다. 제가 지내는 곳은 용인 수지인데 골프장을 다닐 때, 차 막힘이 덜하고 수도권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을 찾다 결정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대중교통을 타고 김포공항까지 가려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대략 2시간이 걸립니다. 직접 운전을 해서 가도 1시간 30분은 걸리고요. 이번에는 제주도에 두고 온 골프백 2개를 가져와야 하니 차를 가져갔습니다.


즐겁기 위해 가는 여행.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 싶었습니다. 비행기 출발 시간보다 4시간 일찍 10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혹시 모를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시간 40분 후 공항 근처 마곡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택시를 타고 집을 나선 지 2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연착으로 30분 늦게 출발한 비행기 덕분에 결국 집을 나선 지 5시간 40분 만에 제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내임에도 불구하고 제주공항에서 맞이하는 공기와 바람, 햇살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렌터카 버스를 기다린 렌터카를 몰고 나오는 데까지 30분이 더 걸렸으니, 총 6시간 만에 제주도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차창을 열고 숙소가 있는 서귀포 쪽으로 달리는데 코끝이 달달해지더니 순간 달콤한 꽃향기가 세상을 꽉 채우더군요. 밀려드는 바람결 사이사이로 선명한 향기는 귤꽃 향기였습니다. 처음 맡아본 귤꽃 향기는 치자꽃과 아카시아꽃 향기가 섞인 느낌이었습니다. 열흘 정도만 피고 지는 귤꽃이 피었을 때 제주는 처음이었습니다. 역시 제주도였습니다.  


둘째 날, 골프장 설계자 카토 슌스케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던 터라 잔뜩 기대를 하고 간 타미우스 CC. 납득할 수 없는 코스 상태와 스타트 에어리어 주변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빈 음료수캔과 담뱃갑들. 한두 홀이 아름다움을 뽐냈지만 3부까지 돌리는 코스가 건강하기는 어렵다는 평범한 사실만 확인했습니다. 라운드를 마치니 아쉬움이 밀려들며 첫날 귤꽃 향기에 취했던 마음이 타미우스의 사막 같은 티박스처럼 거칠어지더군요.


셋째 날, 듬뿍 정성을 먹고 자란 나무와 풀, 꽃들이 그득한 엘리시안 CC. 에어레이션 이후라 그린 스피드는 그닥이었지만 눈으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코스였습니다. 타미우스에서 난 마음의 상처에 엘리시안이 반창고를 붙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넷째 날, 라온 CC는 조금 심심한, 마치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골프장에서 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주도 골프장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더군요. 빠르지 않은 그린 덕분에 코스는 더 심심하게 여겨졌지만 후반이 되면서 불기 시작한 바람과 먹구름에 한기가 덮쳐왔고, 비옷을 꺼내 입었는데도 추위를 느끼며 라운드를 마쳤습니다. 역시 제주도의 날씨는 남달랐습니다.


다섯째 날, 롯데스카이힐제주 CC. 아침 일찍 조인 호스트분의 카톡이 왔습니다. 어제부터 초속 8미터로 불던 바람이 오늘은 12-14까지 거세 진다며 라운드를 취소하는 게 좋다는 톡이었습니다. 호스트의 의견을 존중해 드리는 게 조인된 도리라 저도 취소하는 게 좋겠다고 답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제주에서의 마지막 골프여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그냥 하루를 보내는 게 아쉬웠습니다. 그러다 에코랜드 CC에 전화를 하게 되었고 결국 2부 막팀 노캐디 2인 라운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하지만 에코랜드 CC는 환상적이었습니다. 코스는 태풍급 바람이 부니 그 아름다움이 더 돋보였고, 2인승 카트를 타고 페어웨이로 들어가는,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자유로움 때문인지 바람에 공이 뒤로 후진을 하는데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라운드를 마치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에코랜드 정도 골프장이라면 제주도 골프여행 올만하네." 

"에코랜드는 꼭 다시 와보고 싶다." 


여행 마지막 날, 서귀포 숙소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한 후 다시 6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올림픽 대로 교통정체도 한몫을 했고 다시 서울에 온 걸 환영하는 매캐한 매연 냄새 덕분인지 운전하는 내내 과연 12시간을 들여 제주도로 골프여행을 갈 이유와 동기, 필요가 있었는지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애써 비행기까지 타고 골프 여행을 다녀왔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제 마음은 운전과 주차, 택시. 공항, 그리고 골프장에서의 스트레스가 가득 찬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 대는 것 같았습니다. 


참다못해 마음 바닥에 있는 마개를 뽑았습니다. 마음이 콸콸 흘러내리더군요.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제주도는 가지 말자. 그래 맞아. 굳이 공치러 제주를 왜가? 그런데 뉴스와는 달리 여전히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착하고, 귤꽃 향기는 또 어떻고! 제주도가 참 좋긴 좋아~! 지금 이대로라면 제주도는 이젠 그냥 여행으로만 가는 게 맞아. 아... 근데 비행기까지 타며 골프 없는 여행을 내가 과연 가고 싶어 질까? 그게 어디건 말이야." 


https://youtu.be/AOOfviv27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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