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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Jun 01. 2024

그린피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안녕하세요. 류캉입니다.


오늘은 또래보다 10년이나 일찍 은퇴를 시작한 후배 Q 이야기입니다. 누구도 Q가 그렇게 일찍 은퇴할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일중독자였으니까요. 이른 은퇴 전 일중독에 빠져있을 때도 며칠 동안 밤을 새우는 한이 있어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시간을 짜내 해외여행을 갔지만 그건 일중독에서 벗어나려는 Q의 노력이었습니다. 골프도 쳤지만 그것 또한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의 의미가 더 컸습니다. 


그런데 Q가 은퇴를 하고 난 후 Q부부와의 골프가 오히려 점점 드물어지더니 이제는 일 년에 잘해야 서너 번에 그치고 있습니다. 난이가 쏘아 올린 공을 맞은 걸까요? 이유는 일본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가 일본에서 돌아오면 Q 부부가 일본으로 떠나고 설사 국내에 머무는 시간이어도 여행 후와 다음 여행 전에 처리해야 할 스케줄 때문에 하루를 내야 하는 골프 스케줄을 맞추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Q는 애국이나 매국 이런 것과 전혀 상관없이 골퍼로서 점점 더 일본 골프장에 빠져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일본 골프장의 퀄리티와 아름다움, 그리고 극강의 가성비와 그에 비해 점점 더 열악해지는 한국 골프장의 그린피와 관리상태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처음 일본 골프여행을 갔을 때 이미 느꼈지만 '그래도'와 '혹시나'를 버리지 못하다 2023년에 접어들며 미련을 훌훌 털어냈다고 합니다. 결국 일본 골프 여행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로 했고 일중독이었던 Q답게 일본 골프 여행의 효율성과 편안함을 개선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년부터 Q 부부는 큐슈로 갈 때면 버릇처럼 이용하던 후쿠오카 공항 대신 기타큐슈 공항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계단만 내려가면 입국 심사대가 있고 국제선은 진에어 하나만 뜨는 건지 승객도 모두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뿐이라 수속도 무척 빠르다네요. 입국 수속을 하고 나면 또 바로 앞에 짐 찾는 컨베이어가 돌고 있고, Q는 마치 VIP 입국 수속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이제 기타큐슈 공항과 셔틀로 2분도 걸리지 않는 도요타 렌터카라는 황금 콤비 덕분에 착륙 후 30분 안에 렌터카를 몰고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Q 부부가 올해부터는 괴나리봇짐 하나 메고 일본 골프 여행을 떠납니다. 기타큐슈 공항에서 멀지 않은 대형 골프 레인지에 있는 락카를 임대해서 골프백과 골프화, 골프복 두세 벌을 락카에 넣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일본에서 3주째 일본 골프를 즐기고 또 다음 일본 골프여행 스케줄이 있는 Q 부부. Q 부부는 왜 일본 골프에 빠진 걸까요? 단순히 그린피가 비싸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회원권을 사도 몇 개를 살 수 있는 재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골프를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인의 추천으로 갔던 첫 일본 골프여행 때 느꼈던 여러 가지가 한국 골프에서는 가져보지 못한 만족감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사업을 해 온 Q부부라서 그랬을까요? 가성비를 떠나 이제는 한국 골프장의 비합리적인 행태가 눈에 거슬리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한번 가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3주 정도를 가는 Q 부부의 일본 골프 여행. 일본 골프장도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관리 상태가 조금 차이는 있지만 Q 부부가 가본 50여 군데 골프장중 관리 상태가 거슬렸던 곳은 3군데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몇 군데 더 있었지만 점심과 카트피까지 포함해 6만 원의 그린피를 내고 타박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절반 이상은 너무나 훌륭했고 대부분은 즐기기에 충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Q에게도 고민은 있더군요. 두세 번 플레이를 해 보았고 그런데도 또 가고 싶은 골프장이 많아서 언젠가는 그간 다녔던 골프장 중에서 유별나게 좋았던 골프장 위주로 여행을 가고 싶은데, 한 번도 가지 못한 골프장 중에도 워낙 좋은 골프장들이 많다 보니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행복한 고민이었습니다.


Q가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형님, 한국에서 그냥 그런 골프장에서 한번 라운드 하는 비용이면 비행기 타고 일본으로 가서 깨끗하고 환한 호텔에서 자고 이국적인 음식도 맛보고 렌터카 빌려 누구나 인스타 사진에 올리는 관광지 대신 소도시나 자연풍광이 좋은 장소도 찾아다니는 해외여행 하루 경비가 나와요. 형님은 골프를 치실래요? 일본 여행을 가실래요? 근데 웃긴 건 거기에 6만 원만 더 내면 골프도 치고 점심도 먹는다는 거예요~! 너무 웃프지 않아요?"


일본 골프 여행을 경험한 분 중에는 국내 회원제를 뺨치다 못해 마음까지 부신 골프장에서 2인플레이를 만끽하고, 캐디를 써야 하는 부담도 없이 골프 티타임을 조정하며 근처 멋진 자연 풍광을 만끽하는 일본 골프 여행의 장점에 공감하는 분도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제가 생각해도 일본 골프는 미국을 제외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불가능한 가성비와 만족도를 가 것 같습니다. 


Q는 올해 골프 라운드의 최소 60%는 일본 골프장에서 이루어질 것 같다고 합니다. 


Q처럼 시간을 마음껏 배분할 수 없는 골퍼에게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Q의 이야기를 하는 건 Q를 통해 비친 한국 골프장과 골퍼의 모습이 안타까워서입니다. 


골프장에 대고 무조건 '싸게 더 싸게'를 외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골프장이 망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Q 같은 골퍼가 많아지는데도 '배 들어올 때 노 젓는다'라는 단 한 가지 목표에만 매달리는 골프장이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랄 뿐입니다. 물론 제가 이런 글을 쓴다고 어느 골프장이 깊은 사유의 시간을 보내겠습니까? 보이는 걸 안 보이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게 속 편하겠지만 그렇다고 만족한 골퍼가 넘쳐 골프가 건강해지고 그래서 그 혜택을 골프장의 안정적이고 지속성 높은 사업성으로 거두는 방법이 한국 골프장들의 수준 높은 경영방침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팽개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https://youtu.be/OZrCwICVv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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