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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Jun 14. 2024

삼국 CC 하후돈

안녕하세요. 류캉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100% 픽션 소설의 한 장면입니다.

https://youtu.be/MX0yiG6tb7E?si=UqLBe19YTn1rUjhs


껍질에 기름기가 많아 불이 잘 붙고 오래 타서 촛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자작나무의 노란 잎에 불을 붙이려 돋보기를 들고 있는 아이처럼 시선을 고정했던 남자가 엄지와 검지 중지로 삼각형을 만든 왼손으로 아래턱을 두어 번 문지른 후 마침내 돌아섰다.


헤어젤로 세워 올린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더 길어 보이는 하후돈이 직원들이 기다리는 회의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다. 

"미안합니다. 첫 회의인데. 기다리게 해서. 자 이제 시작합시다."

창밖을 향해 서있는 하후돈의 등만 바라보던 직원들이 마음에 낀 살얼음을 깨려 자세를 추스르고 주섬주섬 보고 자료를 챙기거나 메모할 준비를 하다 멈췄다. 하후돈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 회원권 시세가 얼마죠?"


하후돈이 지목한 사람은 회의탁자 제일 끝에 있는 식음료부 이 대리였다. 

깜짝 놀란 이 대리의 목이 자라처럼 쭈그러들었다.

"네? 아... 저는 식음료 관리 파트라..."

하후돈이 창밖을 보며 턱을 문지르던 왼손을 얼굴로 가져와 입을 감싸더니 엄지와 검지로 왼쪽 콧구멍을 막고 숨을 뱉었다. 한쪽이 막힌 콧바람 소리는 길고 컸다. 손을 내리고 한번 더 숨을 쉰 하후돈이 입꼬리 한쪽만 올라가는 미소를 지으며 낮고 작게 말했다.


"여러분! 우린 회원제예요. 그게 무슨 뜻이 일까요? 회원권의 시세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삼국 CC의 직원이 아니라 회원권이 10억짜리인 골프장의 직원이 돼야 합니다!"


지난달 시세가 3억 원대에 불과했다는 걸 아는 재무팀장의 눈에 흰자가 많아졌고 지배인은 살짝 찡그려지는 미간을 감출 수 없었다. 하후돈이 직원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이번에는 조금 목소리를 키웠다. 


"회원제 골프장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누굴까요? 회원이죠? 맞습니까?"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하후돈의 입과 눈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중요하죠? 회원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한번 이유를 말해 보세요."


한 달 정도 공석이었던 대표자리에 누군가 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새 대표가 새벽 6시에 첫 출근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직원들에게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전염되어 있었다. 그러니 직원들이 쉽게 말문을 열 수 없었고 뻔한 대답을 해봤자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물론 하후돈도 직원들의 대답을 원해서 물은 건 아니었다. 


"회원들은 채권자고 우리는 채무자입니다. 회원들이 낸 보증금 혹은 위탁금은 일종의 사채죠. 사채를 쓰고 이자 대신 그린피 할인을 주는 겁니다. 회원들이 라운드를 많이 할수록 골프장 경영은 어려워집니다. 회원권이 비싸져도 그로 인한 이익도 회원들이 모두 가져갑니다. 어때요 지금 제 말이 사실인가요?"


용기를 낸 이대리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회원권이 가격이 높아져도 골프장에 들어오는 이익은 없다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대답이 가상하다는 듯 하후돈이 씩 웃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틀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회원제일수록 비회원의 역할이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비회원들은 없고 회원들만 골프를 친다면 우린 바로 경영난에 봉착하고 파산하게 될 겁니다. 우리의 목숨줄은 비회원이 내는 그린피에 달려있고 성공도 비회원이 내는 그린피를 어디까지 올릴 수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코스관리도 음식도 진행도 남달라야 할 이유가 뭘까요? 회원들이 채권자이니까? 아닙니다. 채권자에 대한 이자는 이미 그린피 할인으로 충분히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지만 결국 회원권 가격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회원권 가격이 높다는 건 희소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골프 회원권의 희소성은 결국 회원권을 살 수 있는 사람의 희소성과 비례합니다. 30억짜리 차는 여러모로 남다르지만 가장 큰 차이는 희소성입니다. 30억을 주고 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흔하다면 그 차의 가치는 아무리 잘해도 30억에 불과하지만 오직 100명뿐이라면 그 차의 가치는 300억 원도 될 수 있습니다."


허리를 앞으로 숙인 하후돈이 마치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회사의 영업기밀을 공유해 주는 것처럼 한층 작은 소리로 말했다.


"10억짜리 회원권을 만들기 위해 우린 회원권을 사들여 소각처리 할 것입니다. 회원의 수를 10% 정도 줄이는 거죠. 그리고 그 후에 2인 플레이도 가능하고 회원들의 그린피는 무료로 만들어 세금만 부담하게 할 겁니다. 물론 비회원의 그린피는 그에 맞춰 올릴 것이고요. 그린피가 얼마 건 회원의 초대를 받고 싶어 하는 골프장은 관리상태와 빼어난 식음료 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회원권이 비싸서 아무나 회원이 될 수 없는 골프장. 그래서 희소성이 보장된 골프장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고 유일한 방법입니다. 미국처럼 회원들이 골프장 운영비 전체를 1/n 하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 같은 회원제가 살아남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러니하지만 대중, 아니 비회원의 인식과 지갑에 달려 있습니다. 비회원 대중 골퍼들이 내는 돈이 우리 삼국 CC의 실질적인 수입원이란 걸 잊지 마세요. 비회원이 화수분이 돼야 골프장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재무팀장과 총지배인을 붙잡은 하후돈이 다시 1인극을 시작했다.

"재무팀장님, 아까 제가 10% 소각 이야기를 했을 때 무슨 돈으로 10%를 소각할 건지 머릿속이 바빴을 겁니다. 그렇죠? 걱정 마세요. 그리고 총지배인님도 마찬가지입니다. 2인플레이 확대나 그린피 무료..."


하후돈이 처음으로 소리 내서 웃고 말을 이었다.

"오늘 회의실에서 했던 말들은 자연스럽게 회원권 거래소로 퍼질 겁니다. 물론 우리도 기회가 된다면 한 두 구좌는 소각을 할 겁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회원들의 마음에 회원권이 오를 거라는 기대입니다. 그 기대만 생기면 회원권 매물은 사라질 거고 그럼 회원권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심리입니다. 왜 오르는지 보다는 얼마나 더 오를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그럼 회원권은 혼자 알아서 오를 겁니다. 손 안 대고 코푸는 거죠. 물론 이제 그런 소문이 돌게 회원들에 대해 더 차별화되고 공식적으로 눈에 띄는 혜택과 대접을 드려야 합니다. 뭐, 그건 총지배인님이 직원들의 자세를 맡아 주시고 필요한 자금은 재무팀장님과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총지배인 한경우가 물었다.

"그럼 정말 10억 원이 목표신가요?"


하후돈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10억. 그리고 0.03프로까지 끌어올릴 겁니다."

"네? 0.03프로요?"

"네, 회원권이 10억이 되면 주말 그린피 기준으로 그린피는 30만 원을 받아도 비회원들이 오고 싶어 목이 빠지는 골프장이 되는 거죠. 회원의 초대가 고마워 캐디피를 쏘는 골프장. 회원이 1/n을 안 해도 고맙기만 한 골프장. 최고가 골프장에서 치는 것만으로 영광인 비회원의 마음이 우리의 성패를 좌우할겁니다. 회원도 비회원도 골프장도 모두가 승리하는 윈윈윈(win-win-win)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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