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하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길
“투정이 심한 어린아이에게 투정이 왜 나쁜 건지 자상하고 끈기 있게 설명해 준다면 그것은 어린아이를 ‘상대하는’거요.
하지만 어린아이의 머리를 돌로 내려찍으면 그건 그냥 어린애를 ‘죽이는’거요.“
— 김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케이건 드라카의 말
책에서 상대하는 것과 죽이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순간 움찔했다.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문장이 끝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왜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가 관계를 맺는 방식,
그리고 사고하는 방식과 깊게 얽혀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상대하기를 멈추고, 조용히 없애 버리는 쪽을 택해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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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상대하던 사람’이던 시절
20대 시절, 나는 학생 상담을 자주 맡았다.
수백 명의 학생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말이 어눌한 학생 앞에서도 기다렸고, 감정이 폭주한 긴 문장도 끝까지 들었다.
비판보다는 경청을, 처방보다는 동행을 택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라도 누군가 곁에 있으며 받아낸다면 결국 풀리는 법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허투루 넘기지 않기 위해,
한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 두세 시간이라도 비워두는 건 내게 당연했다.
감정이 반복되거나 안 맞아도 흐름을 따라가려 애썼다.
“그래, 계속 말해봐.” 나는 자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간이 비효율적이라도, 함께 있어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때의 나는 확실히 ‘상대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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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효율이 우선된 삶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 역할은 상담자에서 관리자, 결정자로 바뀌었다.
효율은 감정보다 중요했고, 판단은 빠를수록 좋았다.
조직은 단기 목표와 수치로 사람을 평가했고, 나도 그 질서에 익숙해졌다.
“답이 없는 고민에 오래 머물 여유는 없다.”
이 문장은 어느새 내 머릿속 좌우명이 되었다.
문제 해결이 공감보다 앞섰고, 긴 대화보다 빠른 정리를 선호하게 됐다.
예전엔 그런 태도를 차갑고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비슷한 시선으로 사람을 보고 있었다.
감정보다 결과를, 여유보다 효율을 먼저 떠올리는 내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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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중간을 포기한 사고방식
변화는 점점 일상으로 번져 나갔다.
사소한 결정 앞에서도 나는 중간을 찾는 노력이 귀찮아졌다.
예를 들어, 살은 찌고 싶지 않고, 맛있는 건 먹고 싶고, 운동은 하고 싶지 않다면—
‘간헐적 단식’ 같은 절충안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먹고 살쪄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점점 양극단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쪽을 포기하면 다른 쪽을 택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딘가에서 머물러 본 기억은 오래전 일이 되었다.
선택지는 모 아니면 도로 축소됐고,
‘할 것’ 아니면 ‘접을 것’으로 즉시 결정을 내리려 했다.
귀찮음과 피로, 판단의 효율성 뒤에 감정과 여유를 슬그머니 숨겨버리는 것.
그게 익숙해질수록 나는 점점 ‘상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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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경종을 울린 문장
그렇게 변한 나를 돌아보면 마음 한구석이 자꾸 불편하다.
“원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 생각이 자주 발목을 잡는다.
무심코 내뱉은 말과 지나쳐온 표정들,
그 안에 묻혀 있던 감정들이 문득 떠오르면,
나는 속으로 작게 경종을 울린다.
혹시 나는 겉으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미 판단을 마쳐버린 상태는 아니었을까.
투정을 멈추게 하고 싶은 마음에, 설명 없이 감정을 없애버린 건 아니었을까.
‘상대하는’ 대신, 조용히 ‘사라지게 만드는’ 태도.
그 책의 문장은 결국, 나를 향한 경고이자 알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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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남겨두는 용기’로 돌아가기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두 시간을 내어 누군가를 온전히 마주할 여유는 없다.
하지만 그와 다르다고 해서, 다시는 상대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모든 이야기에 해답을 줄 필요는 없다.
중간에 머무는 법, 결론을 유예하는 법,
그리고 감정을 너무 빨리 정리하지 않는 법을 나는 다시 배우고 싶다.
우리는 때로 너무 쉽게 감정을 ‘죽여버린다.’
듣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남겨둘 여백 없이 서둘러 정리한다.
하지만 감정이란,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천천히 가라앉는 물 같은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감정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사라지게 만들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상대한다는 것은, 결국 ‘남겨두는 태도’가 아닐까.
말이 끝나지 않아도, 답이 보이지 않아도,
잠시 그 곁에 머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함께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