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과 연애의 경계에서
요즘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보다가, 유독 눈에 밟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한 출연자가 자신의 남사친과 여전히 자주 만나고 있다고 말하며,
그의 아내가 불편해하더라도 계속 만날 거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상대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사친이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즉각 논란이 일었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이 말에서 흔히 ‘내로남불’을 떠올릴 수 있겠다.
연애에서 특히 예민한 이중잣대의 전형이다.
누군가는 불쾌감을 드러냈고, 누군가는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불편함이 아니라, 묘한 공감 때문이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감정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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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시작하면 우리는 ‘전용선’을 꿈꾼다.
나만 듣는 고백, 나에게만 쓰는 시간.
감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중심’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러다 보니 이성 친구의 존재는 흔들림의 요소가 된다.
물론 우정은 우정일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심으로 아무 감정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연인 입장에서는
그 관계의 ‘감정의 밀도’를 가늠할 수 없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고민을 털어놓고, 일상을 공유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행위는
연애가 독점하고 싶은 정서적 친밀감과 겹친다.
단지 ‘사람과 사람’으로만 여길 수 없는 순간들이 생긴다.
경계가 흐릿할수록 사랑의 독점 욕망은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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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고, 너는 안 돼.’
이 말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나의 자유는 지켜지길 바라면서, 상대의 자유는 견디기 어려워하는 마음.
이중잣대는, 알고 보면 인간의 이기심이 드러나는 방식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세련된 교양의 얼굴로 감춘다.
어떤 사람은 거칠게, 그러나 솔직하게 내뱉는다.
그래서 그 말이 불편한 것이다. 그 솔직함이,
때로는 숨기고 싶은 나의 이기심을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느 정도의 독점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나만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그 바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독점을 권리로 착각할 때,
관계는 금세 폭력의 언저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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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연인과 함께 보내는 관계를 이상적으로 여긴다.
내 생각과 체온,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오른다.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내 성향 때문인지, 관계에 대한 몰입도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독점욕이 생긴다.
상대도 나처럼, 나를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그런 감정은 ‘내’ 욕망일 뿐이고, 연인이 꼭 그렇게 행동해 줄 의무는 없다는 걸.
상대방은 나와는 다른 리듬과 욕구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점차 나만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연인이 다른 일정을 가지거나 연락이 뜸한 날에도 괜히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
결국 다시 사람을 찾게 된다.
아무리 혼자 시간을 보내더라도, 나에게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교류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모임에 나갔고,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남자와도, 여자와도 마음을 나누는 일이 생겼다.
내게 그건 단순한 관계 이상의 것이었다.
내 삶에 필요한 감정의 자극이었고, 공허함을 메우는 교류였다.
문제는, 그런 내가 연인에게는 감정의 독점과 전념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스스로 다른 교류의 기회를 열어두면서도, 연인에게는 나만을 바라봐 주기를 원한다.
그 지점에서 나는 딱, 그 ‘나는 되고 너는 안 돼’의 구조 안에 서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위선은 아니지만, 분명한 모순이었다.
그리고 그 모순의 정체는, 나의 이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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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순을 인식한 뒤, 나는 나름대로 감정의 균형을 맞추려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연인의 인간관계에 간섭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통제하지 않아도, 불필요한 불안감과 불쾌감은 나도 모르는 새 행동이나 분위기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건 내가 상대에게 들이미는 또 다른 이중잣대가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 중 하나는, 연인의 인간관계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누굴 만나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모르는 게 편해.”
겉으로는 쿨한 태도지만, 그 안에는 내 감정을 지키려는 방어심리가 있었다.
이기심이 나를 충동질하지 않도록, 자극을 애초에 차단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욕망이 많은 사람이다.
사랑받고 싶고, 온전히 연결되고 싶고, 누군가의 중심에 있고 싶다.
그 욕망이 내 안의 이기심과 맞닿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 욕망이 불편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감정을 관리하고,
무엇보다 그런 욕망을 내가 가졌다면, 상대도 마땅히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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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욕망의 감정이다.
하지만 연애는 욕망을 그대로 쏟아내는 일이 아니다.
연애는 두 사람의 감정을 조율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내 욕망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느껴져도,
그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관계는 달라진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돼’라는 말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 말은 결국, 사랑을 감정의 독점이 아니라 소유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하면서, 상대를 지배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마주친다.
그 욕망을 알아차리고, 조금씩 거리를 두는 일이 어쩌면 성숙의 첫걸음일지 모른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혼자일 때 더 평화로울 수 있다.
그건 단지 자신에게 맞는 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내 감정을 배우고,
나의 이기심을 조율하며,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한다.
그렇게 덜 완벽해도, 더 진심인 사랑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