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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와 세로

맞상대와 결과물만 남겨두고

by 노월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검도 관장과 마주 앉았다

검술이 스포츠의 일부로 들어가면서 그 본연을 잃었지만

칼의 속성은 베고 찔러 상대를 이기는 것

현실을 수용하여 도장을 열지만

마음속엔 무예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노라며


서로 칼을 겨누고 서있다

눈빛으로 기세 싸움을 하고

칼 끝으로 전해지는 미동이 감지된다

정중동의 발동작에 부러 툭툭 반응을 살피다

흔들기로 허점을 찾아 그 틈을 치고 들어간다

공수 어느 하나에만 치중할 수 없다

공격이 수비요, 수비로 공격을 막아낸 순간이 공격 타이밍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자고 만났으니

일합의 결과로 살아있거나 죽거나

말없이 누운 가로와 헐떡이며 살아 서 있는 세로

시비 승부 모두 무의미하다

서로 세로로 만나 하나의 가로와 하나의 세로가 남는다


그의 세계관으로 본 나의 직업은

상대로 만나는 대상과의 첫 대면 자체가 비대칭이다

가로로 누운 자와 세로로 선 자에서 시작이다

무장해제되었을 뿐 아니라 맨살까지 드러낸 가로

온갖 권위와 치료라는 이름으로 가공의 무기를 든 세로


죽여주시오 하듯 누워있는 가로에게

세로는 어떻게 하든 가로를 세로이게 하려 한다나

이미 가로로 누운 자에게 차마 부활을 시도하는가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더 어려워 보이긴 하는데

이게 무슨 유치한 흑백 논리도 아닌

툭 뱉으려다 삼킨다, 재밌는 발상이네


그도 오죽 답답했으면 가로를 자청했겠나

그런 가로를 세로 이게끔 도와줄 뿐

차를 권하며 한마디 보탠다

그럼 앉은 우리는 살은 건가 죽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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