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됐다는 생각이 들고 이젠 한숨 돌려도 되겠다고 안심하는 순간, 드디어 해냈구나 하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웃게 되는 그때가 위험하다. 노력의 결과물에 대한 감사함보다 내가 나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할 때 함부로 한다. 속에서 지금까지 참고 눌러왔던 욕망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경계심에 기한은 없다. 그렇다고 긴장의 연속은 아니다. 스스로 정한 범위(물론 유동적일 수 있지만)를 지키려는 주의력을 상실하지 않으려 자주 돌아봐야 한다. 인생은 돌고 도는 과장의 연속임을, 오르내리막의 널뛰기임을 아니까. 큰 틀에서 본다면 지금의 기쁨이나 괴로움은 곧 지나갈 잠시의 감정들. 깊이 빠지지 않으려 주의하는 게 아니라 오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가볍게 여긴다.
노력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다하는 것 외에 달리 더 할 것이 없다. 절실하고 간절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그렇게 산다. 할 일을 다 했으면 기다림 밖에. 더는 할 수 있는 것도 할 것도 없다. 그게 남아있다면 다 쏟은 게 아니다. 그렇게 포기와 받아들임으로 만족이 된다.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또는 의도치 않게 하지도 않은 일이 절로 이뤄지는 경우는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니 기다릴 수밖에. 더 이상 할 게 없을 만큼 다 쏟아부은 다음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되건 받아 들게 된다.
그러나 결과를 본인의 노력으로 인한 인과의 결과물로 착각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내가 했다는, 나라서 가능했다는 자신감은 자부심을 넘어 자만심이 된다. 그러한 우월감에 거만해진다. 그때 무너진다.
이제 다됐다는 생각이 들어도 노력의 결과라고 자부하기엔 자칫 부끄럽다.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 결과물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있을지라도 결과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노력이라는 말에도 모자람이 있다. 정말 최선을 다했냐고 다그친다면 완전히 그렇다고 말하기 머뭇거려진다. 그러나 나름 할 수 있는 정도면 열심히 한 것이다. 다행으로 운 좋게 잘된 일들이 있다면 감사하게 받아 들지만 나에게서 거리를 둬야 한다. 일은 내가 이루고말고 할 게 아니다. 결과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승패에 너무 집착하면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다. 결과는 결과다.
목표가 목표인 사람. 불안하고 위태하다. 지난한 희생을 감수하고 얻은 목표라면 그 목표를 이룬 후엔 덧없는 목표 유지 욕구만 남는다. 빈 껍데기의 날들로 허무해진다. 남는 건 자랑 같은 영웅담과 과시욕. 나 이런 사람이야. 그 자리에 올라서서 뭘 하겠다는 게 없이 그 자리를 버티듯 엉덩이를 떼지 않고 아래에서 올라오려는 자를 밟고만 있다면 같이 망하는 거다.
사람의 인정욕구는 강하다. 인정 욕구가 죄절되거나 채워지지 않아 분노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무리하게 요구하다 험한 일이 벌어지고 좌절감이 쌓이다 억지 관철로 해나가려 애쓸 때 과정은 왜곡된다.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했는지 잊게 된다. 운 좋게 인정을 받았다면, 인정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조차 더 많은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끝없는 갈증처럼 해소되지 않으면 독毒이 되고 해害가 되어 본인을 겨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야 잘못 없다. 인정받으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발전도 이뤄진다. 그렇지만 상대가 인정할지 아닐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상대의 몫이다. 인정받음으로 돌아올 뿌듯함은 내가 제대로 잘 살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이 되어 세상을 가진 기분이다. 그러나 그 만족감이 행여 또 다른 주변인에 대한 과시로 과잉이 되어 득의양양하고 고개를 들고 어깨를 뻣뻣하게 잰 체하며 폼을 낼 때 판단력은 흐려진다.
만족이 지족을 넘어 누군가의 우위에 섰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렇게나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 애쓴 억지의 긴장이 풀리는 순간, 감춰둔 본능이 쑥 올라온다. 말에서 행동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심코 터져 나온다. 보고 듣는 이에게 상처가 되는 줄 모른다. 그게 뭐 어떼서라고, 내가 이 정도도 말 못 하냐며 생각 없이 행동한다. 정작 그런 언행으로 불편해하는 이들을 아래로 보고 무시한다. 그러려고 만족을 찾았던 거다.
슬픔은 꼭 상실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 바뀌지 않는 본성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을 때도 슬프다. 도무지 방법이 없다. 자기도 모르게 나온 행위를 지적받아도 전혀 인지가 안되어 이로 인해 틀어질 일들을 알고 있음에도 막을 도리가 없음을 아는 슬픔. 무기력하게 감당해야 하는, 알면서도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그래서 괴롭게 받아들이지만 슬프다.
잘나고 싶은 마음이야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더 많이 가지고 싶고, 군림하고 싶고, 모든 이에 인정받고 싶은 갈증은 그 추구함을 외부에서 찾는 한 우린 영원히 부족하다 느낀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바늘처럼 좁은 목으로 삼킨 음식이 거대한 뱃속을 채울 수 없는 아귀처럼.
세상을 다 가지고 싶은가. 자신이 세상의 전부임을 자각해야 그 갈망이 쉬어진다. 이미 가득 얻어 가지고 있는데 뭘 더 가지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까. 더구나 그 얻음은 처음부터 주어진 거다. 이것을 모른다. 아님 알아도 뭔가 다른 게 더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노력을 해서 빼앗아서 성취로 얻어진다면 얼마나 더 눈을 휘동거리며 먹잇감을 찾아야 하겠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가지고 있음을 향유하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