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든 나뭇잎을 스친 빗물이 맺혀
방울로 손바닥을 붉게 적신다
힘찬 푸름에 묻혀있던 단풍이
가을비에 초록물 씻겨 붉다
네 잎은 본디 무슨 색이었던고
나무는 답으로 바람 따라 낙엽을 떨군다
이것이 나다 저것이 나다 규정하지 마라
못 박듯 틀에 박으면 그 순간 구속된다
알 수 없는 알 수가 없는 나는
그런 사소한 빛깔 넘어 합쳐진 화려한 회색
지어진 이름도 타고난 생김도
온전 나로는 채워지지 않고
겨우내 잎눈에 감춰둔 이력 따라
햇살에 싹 터 비바람에 키워지고
약속 없이 어김도 없이 돌고도니
어쩔 수 없단 말은 마라
그냥 그러해서 그러하니
그런 정도면 그 정도면 그럭저럭 한평생
깊은 밤 가을비가 오락가락
어둠을 벗겨 밝힐 여명이 저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