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나이에 몸은 무겁고 체중이 는다. 잦은 회식과 쌓인 피로는 만성적으로 누적되어 뱃살이 늘어나고 머리털은 듬성듬성 흩어지고 흰 터럭을 늘린다. 늙어가는 중이다. 대리에서 과장, 차장, 부장까지 무난하게 진급했다. 스스로도 자부심이었던가 보다. 후배들에게 조직의 생리를 말하고, 위아래 조직원 사이의 적절한 조절과 처세 등등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말라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의 얘기를 자주 하던 그에게도 계속될 것 같았던 승진이 멈춘다.
부장까지 오르고서는 더 이상의 승진 소식이 없다. 팀장으로 멈춘 것 같다. 그가 있는 자리 앞에 선이 그어지고 벽이 와닿는 느낌이다. 여기까진가 하는 생각이 많아질 무렵 인사발표에 후배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밑이라고 생각했던 후배가 같은 급의 부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무이사 자리에 오른다. 나름 조직에서 인정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사직 임원되는 후배들이 생기면서 인생의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이다. 뒤에 있어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한 후배들이 앞자리로 치고 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입장이란 두려움이다. 낙오자처럼 자신을 무가치한 인격체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숨고 싶고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에 거울 비춤도 싫다.
꼼꼼하고 성실함으로는 부족한가 보다. 위치가 바뀐 후배들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퇴직을 해야 하나 염두에 두길 벌써 몇 년이다. 충성을 다해도 별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퇴직 후 제2의 인생 설계를 궁리하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대안이 없다. 그렇게 회사를 다닌다. 나름의 불안을 안고. 어쩌면 버티기를 하고 있는지도. 속 모르는 남들은 그래도 대기업 부장직을 부러워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월급 꼬박 나오고 학자금 지원이며 쌓이는 퇴직금이며, 임원 못 달아도 그게 어디냐며.
어느 날 내게 연락을 한다. 친하게 지내왔지만 그냥 밥 같이 먹고 가끔 술 한잔 하는 정도에서 헤어졌다. 친하다는 정도를 잘 모르겠다. 얼굴 알고 이름 안다고 친하달 순 없으니. 깊은 대화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공대생 특유의 수학공식 같은 냄새가 짙고,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가 확립되지 않으면 넘어가지 못하고, 나름의 규정에 엇나는 것에 대한 인정이 쉽지 않았다. 일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정리정돈에 뛰어나고, 공간은 공간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정해진 길을 벗어난 경우를 난처해했다. 사는데 꼭 그러해야 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고 흐트러지면 무의미하다는 답이었다. 어찌 보면 적확하고 어찌 보면 막혔다.
그런 그에게 건강에 대한 염려였을까. 요즘 운동 뭐 하세요? 수영해요. 얼마나 하셨죠? 십여 년 됐습니다. 수영장은 어디가 좋은가요?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는데 추천부탁합니다. 시나 구청에서 운영하는 곳은 싸고 시설도 좋은데 임의 추첨식이라 경쟁이 있어 신청이 늦으면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어린애들이 많은 곳은 수질이 좀 안 좋고요, 제가 다니는 곳은 청결하고 수강하긴 쉬운데 약간 비싼 편이며 주말엔 문을 닫습니다.
질문이 많다. 즉각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느낌이다. 조직 생리에 맞춰 적응한 모양이 질문에 드러난다. 조직 내에서의 일처리처럼 질문도 그 모양새다. 이렇게 저렇게 해 보다 아니면 돌아가는 생활습관을 가진 내게 뭔가 집요하고 자잘한 것까지 들추는 느낌이다. 본인에겐 현실적이고 내겐 사소한 질문 끝에 그는 물음 아닌 궁금증 해소처럼 한마디 넘긴다. 그럼 오래 했으니 수영 잘하시겠네요?
운동은 하고 싶은데 몸치임을 벌써 인정한 아님 포기한 나는 게으른 나를 바꿀 마음도 의지도 약했다. 다만 어렵지 않은 걸로 꾸준히 한 가지를 하면 하다 보면 최소 그 운동에 맞춰 몸이 적응하리란 기대 정도만 있었다. 해서 씻기도 하고 물에서 노는 게 좋을 것 같아 수영을 택했다. 잘하고 싶은 또는 대회에 나가고 싶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렇다고 젊은 나이에 달목욕을 끊어 온수에 몸만 담그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십여 년 수영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멋지고 화려한 수영과는 거리 멀다. 다만 욕심이 있다면 물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좀 우아한 유영 같은 수영이길 바랐다.
그의 마지막 물음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수영 잘하진 못해요. 그냥저냥 정도입니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수영을 한 사람에게서의 답변이 생각과 달랐는지 고개를 기울인다. 혹 수영을 오래 해도 수영은 잘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하는 인상을 준 것 같아 약간 그랬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의 생각에 덧붙임을 하려다 말았다.
그렇게 그도 수영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문자가 온다. 평영 발차기가 쉽지 않습니다. 답변이 궁했다. 수영을 배운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수강생이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죠, 원래 평영이 어려워요. 수영대회에서도 개인혼영 종목의 선수는 원래 평영 잘하는 사람 중에서 발탁돼요. 그만큼 평영에서 실력차가 벌어지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잘하던데 저는 잘 안되네요. 그렇죠, 처음엔 다들 어려워합니다.
질문에서 뭔가 급하고 바쁘다. 벌써 이러면 지칠 텐데 생각하다 그가 나름 끈기 있는 어쩌면 집요함이 있음을 봐왔다. 잘하고 싶구나. 남들보다는 잘해야지에 지칠 나이 아닌가?
발차기를 해도 잘 안 나간다, 호흡이 너무 딸린다, 발에 발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힘 빼고 팔 돌리기 하라는데 감이 안 온다, 호흡법이 쉽지 않다 등등 그의 질문에 대응이 쉽지 않다. 매뉴얼이 있고 시스템적으로 돌아가야 안심인가 보다. 수영에 교정반이 있는 이유가 있을터.
뭉뚱거려 답해본다. 뭔가 해보려 시도하고 애쓰는 때가 참 좋은 시절이지요라고. 내 문자가 속 시원하지 않음을 잘 안다. 그는 다시 호흡법을 물어오고 좀 더 구체적인 답변을 보내지만 몸으로 체득하고 몸에 익어져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말로 하기가 그렇다. 공식처럼 정해진 방법을 찾는 그에게 그냥 하다 보면 알게 된다는 말이 무책임하고 어려울까.
수강 시간에 뒤에서 앞쪽 사람들의 제각각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것도 좋다는 말이 그에게 닿지 않을 것 같다. 수영선수가 될 것도,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 그냥 물놀이하듯 물장난 치듯 재밌길 바라본다.
수영은 물타기다. 수면의 부드러움을 손바닥으로 팔로 물 잡기를 하면서 발로 균형 잡아 물 차기를 하면서 물을 타고 가는 운동이다. 물에는 고등어도 있지만 해파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