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인간
뭐 그럴 수도 있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어찌 보면 평소 사람 좋고 물렁해 보이는 그가 어떤 일에 대해서는 단호함을 지나 절대적이라 할 만큼 물러서지 않는다.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면,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나서 결론이 내려지면 바로 행동에 나선다. 가끔 너무 즉각적이라 불같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행동엔 거침이 없다. 일단 저지른다. 평가는 나중이다. 혹 섣부르고 미숙한 판단일지라도 그건 그 후의 일이다. 앞뒤를 재고 따지고 계산하다 보면 해야 할 때를 미루다 놓치고, 결국 해보지도 못하고 손 놓게 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러다 자신의 불찰로 또는 오판으로 결론이 나면 그는 여지없이 사과를 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다. 기꺼이 무릎을 꿇는다. 내 죄가 그러하다면 죗값을 피하지 않겠다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뿐, 그 상황에서의 절실함과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은 그냥 품고 삼킨다.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거들면 그는 그건 그냥 본인이 안고 넘어갈 부분이라고 한다. 구차하다며.
그가 용납하지 못하고 물러서지 않는 일이란 지위나 권력으로 사적 전용을 일삼는 류의 일들이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에겐 그러려니 하고 단순히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럴 수 있음에 충분히 감싸고돈다. 그러나 정도를 넘어서고 기만하고 사익을 추구하고 자기만 살고자 하는 짓으로 타인들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이는 것들엔 알레르기 반응처럼 몸이 건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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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아직 입학도 하기 전의 미취학 때였다. 얼마 전 이사 온,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동네 형들도 눈치를 보며 피하는 이가 있었다. 한 번은 그에게 그 덩치가 와서 시비를 건 일이 있었다. 사실 시비라고 하기에도 같잖은 행동이 그에겐 기분 나빴던가 보다.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억울해서 씩씩거리다 다음날 아침 그는 덩치의 집 근처로 갔다.
덩치의 집 앞 담벼락에 숨어 덩치가 나오길 기다렸다. 점점 날이 더워지는 늦은 오전까지 그는 꼼짝 않고 덩치를 기다렸다. 그러다 엄마에게 들켰다. 너 뭐 하나? 손에는 또 뭘 들고? 돌멩이는 뭐에 쓰려고? 빨리 가자며 손에 끌려 집으로 갔다. 그날 덩치는 하필 새벽에 버스를 타고 어딜 갔다나? 그 일이 있고부터 그의 별명이 짱돌이 됐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축구가 너무 좋아 축구부에 들어가서 운동할 때다. 축구에 미쳐 새벽에 혼자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드리블을 하고, 다른 부원들이 올 때까지 공을 차고 또 찼다. 그렇게 축구에 푹 빠져 삼사 년을 보내다 어느 날 축구부를 탈퇴할 결심을 한다. 축구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선수가 되기엔 아버지도 그렇고 형들도 그렇고 본인도 키가 작았다. 물론 아직 사춘기 전이지만, 싹이 안됨을 스스로 알았고, 축구 선수를 계속하기엔 결함을 극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던가 보다.
학교에서 맞춰준 유니폼과 운동화를 반납하는 날. 선배와 코치에게 불려 체육관으로 갔다. 문이 닫히고 선배는 손짓으로 그를 부르고, 달려가서 옆에선 코치는 어이없다는 듯 그의 머리를 툭툭 친다. 너 왜 그만두려고 하냐? 너한테 들어간 게 얼만데, 네 멋대로 그만두냐? 엎드려! 밀대봉이 부러질 만큼 선배와 코치가 허벅지를 때렸지만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참는다. 햐 이 놈 봐라. 그래 오늘 너 한번 죽어봐라. 이 악물고 참았단다. 그게 벌이라면 아무 소리 않고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겨우 열세 살에.
군대에서 활동화 신고 작업하다 녹슨 못을 밟아 파상풍을 예방한다고 불에 달군 쇠로 발바닥을 지진 일, 마취 없이 발치한 일, 등산하다 아킬레스 건 파열을 참고 견뎌 나중 약하긴 해도 평생 보행장애 절뚝발이 된 일 등등 그 생에 무식하다 싶을 만큼 버티고 견디는 일들이 많았다.
그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듣다 보면 참을성이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의리가 있기도 하고, 자존심이 세기도 하고, 옳고 바름에 대한 신념도 있지만, 그 기준이 당연함은 담담히 받아들이고, 부당함에는 저항의 일관성이다. 그래도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다.
좁은 촌동네가 그렇지만 그 동네 친구들이 거기서 자라 근처 학교를 가니 학창 시절 내내 붙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커가면서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 살고, 간간이 연락이 닿기도 하고, 건너 건너 소식이 넘어오기도 하다. 그러다 한때 가까이 놀던 연락이 끊긴 친구의 안타까운 일을 접한다. 간경화로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동생이 기증을 해줄 의향을 밝혀 준비는 다 됐는데 수술비가 모자란다고. 신혼 초에 전셋집을 살던 그는 전세를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고, 그의 뜻을 전해 들은 다른 친구들의 모금으로 무사히 수술을 한 일이 있었다.
친한 친구였냐고 물었다. 그 친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키웠는데 고생을 많이 했지. 그래도 그놈은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잘 지내서 내가 기억을 하던 놈 중 하나였어. 나중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이혼하고 나름 상심이 컸어. 한 번은 술을 같이 먹는데 인생 참 생각대로 안된다면서 울더라. 그리고 소식이 끊겼는데 그런 상황이 온 거지. 그 후로 그 친구는 어찌 사느냐 물으니, 수술 잘 받고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하더니 그 후 2년 정도 살다 그만 갔다. 그게 걔 복인 가봐.
전세 담보대출금은 어떻게 잘 해결했어요? 결혼하고 얼마 안 된 때에 내가 그런 일을 벌였으니, 애 엄마가 그래도 별 말이 없었는데, 그게 더 미안하데. 그래서 열심히 일했지 뭐. 별 수 있냐. 또 다른 그의 방식이다.
나이 들면 다들 보수화 되던데 어찌 아직도 어찌 그런 열정을 간직할까? 뭘 지킬 게 있어야 보수保守가 되지. 난 비겁하게 사는 건 싫어.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고, 있으면 나누며 사는 게 좋아.
그럼 진보였다가 보수로 이념을 바꾸는 자들은 뭐지? 내가 그런 이들의 이면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 왜 그럴까. 원래 그런 놈이었는데 잠시 다른 길을 가다 다시 제자리로 간 건지, 아님 변한 건지. 답은 없지만 그들에겐 뭔가 가지고 싶은 이득이 있으리라 짐작해. 문제는 보수, 진보가 아니라 자기 득실에 빠져 단물을 빨며 한없이 누리려는 놈들이지. 그래서 난 사람을 안 믿어. 심지어는 나 자신도 한 번씩 안 믿어.
그런데 그냥 말 그대로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고, 고쳐야 할 악습을 고쳐나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둘을 따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냐. 복잡하게 나눌게 뭐야. 개과천선이 개과改過자체가 천선遷善이지 따로가 아니듯이. 좌익이니 우익이니 그게 뭐가 중요한데. 양 날개로 열심히 퍼덕이며 앞을 향해 날아가는 거지. 단순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