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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오래 오지 않고

터널 끝이 보이지 않아도

by 노월

세상 밝은 표정에 해맑은 얼굴

잘 지냈어. 물음인지 본인 상태인지


머리털도 빠지고 주름도 많이 늘었다

과묵한 입술에 살이 좀 빠져도 건강해 보인다

눈빛의 형형함은 여전하다


장인이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처갓집 가세가 몰락하고

잘 나가던 집안이 무너지면 예전과 달라 견디기 힘들지

처남은 시험에 연거푸 떨어지면서 술이 밥인지 뼈만 앙상해

모친의 치매증상은 심해

딸이 이혼하면서 손주와 같이 집에 들어오고

아들은 느닷없이 성정체성을 선언하고

집사람은 신경이 날카로워 화살이 나를 향하고


풀기 힘든 일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또 다른 일이 겹치고 쌓인다


하나도 해결할 수 있는 쉬운 방법들이 없어

처음엔 애도 쓰고 이리저리 노력도 했지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

누굴 만난 들 헛도는 얘기만 늘어놓을까 싫고

풀리지도 않을 일에 들어주는 이도 쉽지 않겠지

은둔과 회피로 고립은 저절로 이뤄지고

뭘 할 수 있단 건가


날은 저물고 비는 추적추적 어깨를 더 겁게 르고

갈 길은 멀어 갔다 다시 돌아올 길은 더 멀고

앉아서 운다고 달라질 게 있나 변하길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이 없어

내 갈 길을 계속 걸어가는 밖에


언제 벌써 이렇게 세월이 갔나 싶다가도

짧다면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일들이 스쳤어

안 아프게 안 다치고 몸맘 잘 간수하면서 가야지

그나마 내게 큰 병 없는 걸 감사해

새벽 경전 읽고 자기 전 몸풀기는 계속해


원했든 원치 않았든 누구든 주어진 삶을 살아

각자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의 상황이지


정신 차리고 산다는 게 다 뭔가

내 할 일이라곤 할 수 있는 일을 매일매일 하는 거

복잡하다면 한없이 꼬여있다고 볼 수 있고

해결하려 분주히 바쁘게 뛰어도 답이 보이지 않아

생각해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극히 단순해

밥 먹고 일하고 혹 도울 수 있으면 가보고

아니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고개 숙이고


그러는 와중에 이 모든 게 꿈같기도 하거든

다 쥘 수도 없고 다 끌고 갈 수도 없지만

굳이 그럴 것 까지도 없

그런다고 또 내 맘처럼 되지도 않고

자책이 아닌 감내의 몫이기도 하고

괜스레 헛 일에 진빼지 말


자신을 잘 보존하다 보니

우리 이렇게 또 만나기도 하고

좋지 않은가

나를 나만으로 구속 말아

나라도 우선 서야

나중 내가 내 손이나마 내밀수 있거든


바람이 언제 정해진 방향이 있던가

부는 대로 부대끼지만 흔들리지는 말자고

남은 국밥을 들이켜고 먼저 나선다

탁자에 이만 원을 두고


떠난 자리에 나만 남아

감정 전이가 일어났는지

막걸리에 국물이 말라간다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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