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척박한 땅이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깻잎이 자라지 않는다. 아니, 이곳 원주민들은 깻잎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깻잎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바람결에 날아오는 소문에 의하면 프랑크푸르트 부족이 사는 곳에 오리와 같은 케이부족 사람들이 제법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서 그곳에서는 케이 물건을 사고파는 장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운이 좋은 날 깻잎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그곳에 갔다 왔는데, 운이 그리 좋은 날이 아니었는지 깻잎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리도 그곳에 가 볼까 생각을 하다가 그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
오리는 몇 년 동안 깻잎씨앗을 공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엔 아는 지인들에게 깻잎씨앗을 구한다는 연통을 넣어 두었다. 그중에 도르트문트 부족과 사는 지인에게서 몇 년 묵은 씨앗이 있다는 답이 왔다. 발아가 될지는 미지수라는 글과 함께 깻잎씨앗을 보내왔다. 오리는 깻잎 심을 화분과 흙을 사고 씨앗의 일부를 심었다. 그 후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리는 애지중지하며 싹을 틔우기에 흙의 상태가 적당한지 매일 살폈다. 한 달이 지나도록 화분에선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리는 남겨 두었던 깻잎 씨앗을 모아 분무기로 적신 키친타월로 씨앗을 발아시키기로 했다. 깻잎씨앗 키친타월이 든 락앤락 통을 따뜻한 하이쭝, 즉 라디에이터 옆에 두었다. 오리는 키친타월이 마를까 봐 하루에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깻잎 씨앗이 좀 커진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오리의 마음은 콩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깻잎씨앗에서 도통 그 한쪽 모퉁이가 도톰한 하얀 뾰족한 싹이 보이지 않았다. 삼 사일이 지나자 오리는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키친타월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해 오리는 깻잎씨앗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2월이 채 가기도 전에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아마존장을 분주히 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몇 가게에서 케이 깻잎 씨앗을 취급했다. 오리는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기웃거렸다. 이 가게들에서 깻잎을 산 사람들의 품평도 들었다. 깻잎씨앗 1000 립을 근 15유로에 구입했다. 씨앗이 도착하는데 이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깻잎은 한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아마존장에 들려 깻잎을 산 가게에 물어봐도 오고 있는 중이라는 대답뿐이었다. 이제나 저제자 오려나 기다리다 오리도 깻잎씨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깻잎씨앗을 주문하고 3개월이 지나 4개월이 다되어 갈 무렵 오리는 차라리 주문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받기로 생각했다. 어차피 6월 초에 들어서 깻잎 씨앗을 심는다 해도 농사가 잘 될지 미지수였다. 주말에 아마존장을 들르기로 했다. 그러나 웬걸... 거짓말같이 깻잎씨앗은 다음날 도착한 게 아닌가.
깻잎 씨앗은 조그만 봉투에 잘 포장되어 있었다. 물을 건너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보낸 이를 보니 한자다. 한자? 한국어가 아니고? 포장지를 뜯어보니 조그만 비닐봉지에 깻잎씨앗이 들어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다. 아무리 봐도 1000 립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오리가 알던 통통하고 뽀얀 깻잎씨앗과는 사뭇 다르다. 이 씨앗은 아주 작고 모양이 또렷하지 않다. 거기다 거무퇴퇴하다. 깻잎농사 갈무리 찌꺼기 마냥 작은 돌조각이며 마른 잎사기 그리고 마른 식물 가지들이 섞여 있다. 무엇보다... 씨앗 사이사이로 아주 가늘고 하얀 애벌레 같은 것들이 죽어 말라비틀어져 있다. 아... 오리는 나직한 탄식을 자아내었다. 오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앗을 이물질과 분리해 낸 후 동시에 일부는 화분에 직접 파종하고 일부는 치킨타월에 발아를 시도했다. 몇 주를 기다려도 씨앗은 발아하지 않았다.
그 이듬해 오리는 씨앗을 그의 나라에서 직접 공수해 오기로 했다. 아는 지인이 흔쾌히 씨앗 한 봉지와 책 두 권을 보내 주었다. 보내오는 값이 씨앗과 책값보다 더 들었지만 괜찮았다. 오리는 드디어 여름에 깻잎을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원주민인 그녀의 남편이 깻잎에 싼 삼겹살을 먹게 될 것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삼겹살을 좋아하던 그는 한국에서 깻잎에 싼 삼겹살을 맛본 후 깻잎 없는 삼겹살에 시큰둥해졌다. 오리와 그녀의 남편 대화는 어느 순간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오리남편: 깻잎 없는 삼겹살은 진짜 삼겹살이 아니야.
오리: 상추에 싸 먹어도 돼
오리남편: 깻잎에 싸 먹어야 더 맛있어. 저번에 한국 갔을 때 보니까 다들 깻잎에 삼겹살 싸 먹었어.
오리: ...
오리는 키친타월에 씨앗을 올린 후 정성스레 분무기로 물을 뿌린 후 기다렸다. 2주가 지나자 서서히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발아가 늦었다. 그래도 어떤가? 발아가 되었는데... 발아된 씨앗을 조그만 화분에 심은 후 어느 정도 커지자 본격적으로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다. 오리남편과 오리는 매일매일 깻잎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무언가 이상했다. 깻잎이 스스로 가지도 치고 잎도 달렸지만, 키가 크지 않았다. 오리의 손바닥보다 작았다. 꼭 미니어처 같았다. 영양분이 작아 그러는 것인가 싶어 영양제를 주고 거름을 주었지만 깻잎은 키가 크지 않았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서 알아봤지만, 어느 누구도 왜 깻잎 키가 크지 아는지 알지 못했다. 그해 오리남편은 깻잎에 싼 삼겹살을 맛보지 못했다.
2024년 오리의 남편은 드디어 깻잎에 싼 삼겹살을 먹을 수 있었다. 한 해 전에 오리와 그의 남편은 한국에 가서 두 가지 종류의 깻잎 씨앗을 가져왔다. 너무 애지중지하며 키우지 말라는 말이 있어 그냥 흙에 뿌려 두었더니 이번에는 도리어 발아가 너무 잘 되었다. 여기저기 나눠주고 6 포기를 골라 키웠다. 깻잎 농사가 잘 되어 삼겹살에 싸 먹기도 하고, 화분에 심은 상추, 풋고추와 함께 쌈을 해서 먹기도 했다. 장아찌도 만들고 김치도 담궜다. 어릴 적 하던 소꿉장난마냥 즐거운 우리들의 여름이었다.
여담: 2023년 프랑크푸르트 부족 마을에 사는 네오라는 케이부족 사람이 깻잎방을 열었다. 그곳에서 깻잎씨앗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