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백수가 되는 이유

우리에겐 주저앉을 시간이 필요하다.

by staynwriter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취업시키기 힘든 분들이 회사에서 관리직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분들이다. 우선 급여나 복지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상담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리직을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어떤 분들은 초면인 상담사에게 자신의 부하직원을 대하듯 "내 일자리를 알아보고 연락해라!"며 명령하기도 한다. 그런 태도로 상담이 잘 진행될리는 없고 일자리를 안내해도 급여가 그거밖에 안 주냐, 출퇴근 시간이 안 맞는다, 밥은 왜 안 주냐 등등 불평불만을 늘어놓다가 끝이 난다. 퇴직한 이후에 새로운 일을 하면 그전처럼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장기간 실업상태에 놓이게 된다. 상담사로 오랫동안 일해보니 이런 분들은 어떤 말로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 오직 시간이 답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실업상태로 지내면서 회사의 이름도 직책의 권력에서도 멀어지면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누구나 아는 회사’를 오랫동안 다니면서 인생의 타이틀이 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 한 일을 끊임없이 늘어놓으시는데 슬프게도 그 일을 그만둔 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할 열정도 유연성도 부족해 보인다. 평생 출근하던 직장이 사라졌다는 상실감과 우울감이 그들을 지배하고 평생 일하다 보니 늘어난 여유 시간을 보내는 법도 모른다. 오랫동안 입고 있던 사회적인 이름도 벗어내고 지금껏 잃어버리고 살던 나를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평생 출근하던 남편이 집에 있으면 그 생활을 못 견뎌서 일을 구하러 오는 중년 여성분들이 많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기도 힘들고, 평소에 챙기지 않던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게 버거워서 ‘일’이라는 합리적인 이유로 집을 나오고 싶어 한다. 그녀들의 남편이 집을 나오는 데는 적어도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정년퇴직 후 10년이 지나서 일자리 알아봐 달라고 오는 분도 계셨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도 불편하고 어색하며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그녀들도 남편의 모습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 해결이 안 될 것 같은지 평생 가정주부로 살았는데도 일자리를 구하러 나온다. 그런데 이런 적극적인 태도가 그녀들의 취업의 문을 열게 한다. 나는 나를 찾아온 그녀들을 거의 다 취업시켜 드렸는데 취업에 임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묻곤 했다. 연금도 나오고 집에서 여유롭게 쉬면 좋지 않냐고. 그랬더니 그녀들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에요. 정말 하루 종일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요. 평생 이렇게 같이 있던 적이 없었는데 하루 종일 같이 있고, 밥도 세끼 다 차려야 하고, 운동까지 같이 하자니 너무 답답해요. 그래서 이제는 운동도 따로 할 정도라니까요.”


사는 게 참 애달프다. 평생 일에 매몰되어 살면서 일이 전부가 되어버리고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지면서 공허해지는 삶. 평생 돌봄 노동을 하다가 조금 더 얹어지면 버티기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은 삶. 그 우울과 그 절박함을 바라보며 삶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답답한 그녀들에게 수십 년을 쉬지 않고 일하셨는데 조금 더 시간을 주시면 어떻겠냐고 말하곤 했다. 집에서 가사 일를 하는 것도 힘들지만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안 맞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일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말이다.


인사담당자들은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퇴직한 분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이력서를 보면 성실함과 책임감이 있다고 쓰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종일 이력서를 보면서 무언가를 반복하는 능력이 누구나 가진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어떤 분들은 1년이 넘는 경력을 찾아보기 힘든 분도 계신다. 다양한 경력으로 채워진 이력서가 두 장을 넘어가지만 어떤 일을 맡겼을 때 계속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죽하면 1년 이하의 경력은 쓰지 말라고 하던가.


비록 시간이 걸려도 그들은 다시 일터로 나와 삶의 균형을 찾는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 계속 일만 하고 살 수 없다. 휴식이 찾아오면 이제는 쉴 때라고 받아들이고 잘 쉬고 잘 충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쉬시고 다시 힘내서 세상 밖으로 나오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