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11년 동안 상담을 하면서 잊히지 않는 구직자가 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들의 사연은 잊을 수가 없다.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선한 인상의 중년 여성분이 급하게 일이 필요하다며 센터를 방문했다. 사연을 듣자 하니 남편이 바람이 났고 두 집 살림을 하다가 걸렸는데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한다고 했다. 마음 떠난 남편을 붙잡을 생각이 없어서 이혼을 해줄 건데 그러려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빨리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나는 원치 않은 남의 일기장을 읽은 것처럼 당황해서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일자리를 검색했다.
그녀는 이야기의 물꼬를 텄는지 남편에 대해 더 말했다. 남편은 평생 다정하고 애처가였다고 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맞벌이를 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일을 더 하면 된다고 말렸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도 세상 다정한 아빠였는데 두 집 살림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에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녀의 태도였다.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없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상태로 덤덤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며칠 뒤에 다시 만난 그녀는 훨씬 표정이 편해 보였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동행 면접을 진행한 것이다. (직업상담사는 구직자의 요청에 의해 함께 면접장소에 가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녀는 적극적인 의지로 회사에 채용되었고 면접을 끝나고 가는 길에는 한결 편해 보였다. 삶의 안정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나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당황스럽고 힘드실 텐데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시는 게 대단하세요. 저라면 울고불고 난리 치느라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거 같아요.”
그녀는 덤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딸아이를 봐서라도 살 길을 찾아야죠. 붙잡는다고 잡힐 거 같지도 않고... 집 주고 이혼해 달라는 거 보니까 말 다했죠 뭐...”
내 입에서 쓴맛이 나는 것 같았다. 평생 애처가였던 남편의 변심 앞에서 저렇게 단념을 하기까지 그녀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릴 수 없었다. 평생 일하지 않았던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앞으로 그녀가 느껴야 할 낯선 피로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 손으로 쥐어지는 월급은 그녀에게 삶의 안정장치가 되어줄 것이었다.
상담사로 일하면서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법한 사연들을 많이 듣게 된다. 어떤 가정은 돈을 버는 사람이 권력자이고, 어떤 가정은 벌어온 돈을 쓰는 사람이 권력자가 된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오는 행위를 타인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돈을 벌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후자는 응당 당연하게 돈을 벌어와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돈을 버는 행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돈을 벌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을 때 사람은 좀 더 안정감을 느낀다.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심적 여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수록 죽을 때까지 돈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게 인간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는 일이 평범한 일이라면 평범한 불행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비상구를 찾는 것이 평범한 일이리라.